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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익는 마을

앵두 익는 마을

: 〈마중물〉시인 임의진 참수필집

임의진 노래 | 웅진뜰 | 2012년 07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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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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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428g | 153*224*20mm
ISBN13 9788901148489
ISBN10 89011484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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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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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시간에 느닷없이 “저그요!” 하고 누가 손을 높이 들어서 보았더니 진동댁 할매였다.
“왜요?”
“조퇴할라는디 나 잔 시켜주쇼.”
“무슨 일이신데요.”
“밖에 잔 보시란 말이요. 소낙비가 안 내리능가요. 마당에 빨래도 널어놨고 고추도 뽀슬라고(빻으려고) 팽상에 널어놨당게요.”
설교의 절정부였는데 이하 내용은 죄다 까먹을밖에. 할머니는 말씀과 동시에 조퇴해 밖으로 나가셨다. 학교에서 조퇴는 봤어도 교회에서 조퇴는 처음 보았다. 내가 이 시〈마중물〉을 처음 낭송했던 날 예배 풍경이 그랬다.
햇살 쨍쨍한 날, 빨래가 보송보송 잘 마를 법한 날에도 할매는 또다시 조퇴를 감행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이런 귀여운 분들이 주눅 들지 않고 큰 소리 높이며 떵떵거리는 재미난 시골 교회를 꿈꿨다. ---p.256

남녘교회에도 하루에 한 차례씩 우체부 아저씨가 오신다. 남프랑스 프로방스 못지않게 이곳도 햇살이 부시고 날이 따뜻하며 꽃과 청보리가 출렁거리는 남녘 땅이다. 나는 우체부에게〈폴 고갱의 안락의자〉에 나오는 듯한 의자 하나를 앉으시라 권한다. 고흐가 고갱을 추억하며 그린 그 그림 속 의자엔 책 한 권과 촛대가 나란히 있었지. 우체부가 보통 내게 가져다주는 건 소포로 배달되어오는 책과 편지들이다. 가끔 촛불 아래에서 나는 책을 찬찬히 읽기도 한다. ---p.10

밖으로 나다니느라 꽃들과 교인들에게 충실하지 못한 잘못을 반성할 겸 교회 아래 마당을 비질하고 변소 청소도 했다. 아직 재래식 변소. 수세식을 놓자는 청도 있지만 불편한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렸다. 다음번 목사님은 아마도 수세식으로 바꿀 것이라고, 내가 머무는 동안은 이대로 살자고 했더니 협박으로들 아셨나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젊은 목사가 행여 도회지로 떠나버릴까 늘 노심초사하시는 어르신들……. ---p.17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다가오자 걱정이 하나 생겼다. 학교에 자전거를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그냥 집에 놔두면 형이 종일 타고 놀 테고. 나는 형에게 자전거를 타지 말라며 수차례 으름장을 놓고서야 학교로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첫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왔다. 하나 둘 셋, 대문을 확 열고 들어서는데 형이 글쎄 마당에서 세발자전거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런데 형은 자전거를 올라타지 않고, 하루 종일 밀면서 놀았던 것이다. 순간 내 가슴 저 깊은 데서 평생 들어보지 못한 신비한 음성이 들려왔다.
“형에게 자전거를 양보해라!”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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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꼬치꼬치 쓰면서
더디게 천천히 살펴가면서
항상 이웃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깨춤 임의진 목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권정생 (아동문학가)
임의진의 글 속에는 토착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순박한 음식을 나눠먹는 지인들로 가득하다.
그 사람들과 구별 없이 지내는 순례자.
그를 가끔 주막에서 만나면 노방 전도사처럼 달달 말하다가도
문득 선승처럼 침묵하며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대지에 발을 딛고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먼 곳을 떠돌면서 여기를 하염없이 그리는 사람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이제 나와 당신은 그를 알든 모르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그는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신비가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 발화자는 임의진, 바로 그다!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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