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들어간 [그]는 부엌을 지나 시즈에가 있을 침실로 향했다. 천천히 침실 미닫이를 열었다. 잠이 들었을 줄 알았는데 침대에 누운 시즈에는 눈을 뜨고 있었다. 인지증 때문에 밤낮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자세히 보니 시즈에는 벨트로 침대에 묶여 있었다. [그]의 파우치에는 손발을 묶기 위한 수건도 있지만 오늘은 그걸 사용할 필요는 없겠다. 시즈에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여보?” 시즈에가 [그]에게 말했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 닮았나? 어쩌면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백발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그분은 벌써 돌아가셨죠.” [그]가 천천히 말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시즈에의 안색이 바뀌었다. 남편이 벌써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누군지 혼란스러운 걸까? “누구죠?” 시즈에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 p.65쪽
시바가 보기에 감정노동에 맞는 사람이 있고 전혀 아닌 사람이 있다.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은 반드시 유키처럼 성실한 사람들이다. 개호 현장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한 교류나 감동적인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폭언과 폭력, 성희롱 같은 불상사도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개호 대상 노인은 틀림없이 약자다. 지켜줘야 할, 배려해야 할, 친절하게 대해야 할 약자. --- p.122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때리는 소리와 용서를 비는 시어머니의 목소리. 잠시 후, 며느리가 흐느끼는 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흑흑…… 왜. 어째서…….] 울면서 때리는 건가. 가족 개호에서 학대는 늘 있기 마련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다. 하지만 몸이 자유롭지 못한 가족을 재미로 때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실이 사람을 조종하는 것이다. 이 며느리도 분명 그러하리라. ‘어째서’라고 묻는 대상은 가즈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며느리는 매일 시어머니를 돌보러 다니는 생활이 한계에 이르렀을 것이다. [미안하구나. 내가 이런 꼴이 되어서. 아예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며느리의 목소리에 비해 가즈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 p.153
“[……] 그렇지만 일주일 뒤의 날씨를 예측하기는 상당히 어렵죠. 1년 뒤가 되면 거의 점을 치는 거나 매한가지일 겁니다.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고. 이건 날씨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주가나 경마, 프로야구 우승팀도 그렇듯이 미래에 관해서는 대개의 경우 어떤 고등수학을 쓰더라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거든요. 그야말로 도박의 대상이 될 정도죠. 다만 예외적으로 꽤 먼 미래까지 안정된 예측을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숫자에 강한 시나 사무관은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인구예요. 인구 추계라는 것은 10년, 20년 정도는 대략 어긋나는 일이 거의 없죠. 지금 고령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은 20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겁니다.” --- p.163~164
분명히 포레스트는 부정을 저질렀고, 회장은 청렴결백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하지만 조금만 조사해보면 개호 업계 전체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걸 무시하고 한 기업과 개인을 목매달아 그 모습을 전파에 실어 전국에 내보내고 있다. 미쳤다. 돈을 벌다니, 언어도단이라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어? 저 사람들이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저러고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돈을 받지 않고 사심 없이 다른 사람의 밑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무서울 정도의 상상력 부족. 시바는 포레스트에서 일하는 동안 지겨울 정도로 보아온 개호에 쫓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 p.171~172
“역시 고급 실버타운이라 안심이 되겠군요. 우리야 복권이라도 당첨되기 전에는 어머니를 그런 곳에 모실 수 있으려나?” 형사는 자조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안심……? 오토모는 생각했다. 분명히 포레스트 가든은 마음 놓을 수 있는 안전지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주하려면 억 단위의 돈이 든다. 형사 말대로 일반인은 복권이 당첨되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아버지를 그곳에 모시기는 했지만 나중에 오토모 자신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경제 거품이 꺼진 도시 X현의 야가 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노인들이 살해당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그들의 죽음은 모두 자연사로 판정된다……. 2006년 11월 4일, 검사 오토모 히데키는 친구 사쿠마의 소개로 개호가 필요한 아버지를 억대의 고급 유료 실버타운인 [포레스트 가든]에 모신다. 개호 업계 1위인 포레스트사의 영업부장 사쿠마는 오토모에게 ‘개호 비즈니스’의 밝은 전망과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이듬해 여름 포레스트는 부정행위가 감사에 걸리면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고, 수많은 개호 난민이 발생할 위기가 닥쳐온다. 포레스트 사태가 악화되는 사이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를 벌이던 사쿠마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오토모가 근무하는 X현의 고객 데이터를 팔아넘긴다. 한편 오토모가 백발 남자와 스쳐 간 날, 포레스트 계열 야가 케어센터 직원 시바 무네노리는 개호 사무소에서 어떤 ‘변화’를 알아채는데…… 그날도 또 한 명의 개호 노인이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