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한국어 피동사 구문의 의미적 특징
2장에서 우리는 재귀사가 재귀부터 피동까지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재귀 표지의 의미 분화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Haspelmath(1987)의 주장과 그에 따른 근거가 대부분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가 제시한 의미지도는 재귀사가 재귀, 내적 재귀, 반사동, 가능 피동, 피동의 의미 범주를 모두 표시할 수 있고, 의미지도에 표시된 의미 범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의미지도에 제시된 의미 범주들은 통사적 범주인 태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달리 말하면 재귀 표지가 재귀태, 중동태, 피동태를 모두 표시할 수 있는 표지로 사용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사실은 재귀사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어의 경우 인구어의 재귀 표지가 담당하는 여러 의미를 무엇으로 표시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본고는 의미지도의 제일 왼쪽에 위치한 재귀가 의미 확장을 통해 피동의 의미까지 나타낼 수 있다면,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피동도 의미 확장을 통해 재귀의 의미까지 나타낼 수 있으리라 추측하였다. 재귀 표지의 의미 확장 순서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피동이 한국어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표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위 중동의 의미들을 피동 표지로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재귀 구문들은 피동 구문으로 발달하기까지 다양한 중동 관련 구문들을 양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동 관련 구문들은 모두 비전형적 재귀 구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어에서도 다양하게 실현되는 비전형적 피동 구문들이 비전형적 재귀 구문이 표시하는 여러 의미를 담당할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한, 비전형적 재귀 구문이 목적어의 삭제에 의해 발달한 것처럼, 한국어에서도 비전형적 피동 구문이 다양한 통사적 실현 방법에 의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한국어 피동사 구문을 의미별로 나누어 그 통사?의미적 특징을 살펴보고, 재귀사 구문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또한, 언어 유형론적으로 확인되는 재귀사 구문을 한국어에서는 피동사 구문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을 확증하고자 한다.
4.1. 전형적 피동과 비전형적 피동의 특성
기존 논의에서 한국어의 피동 표지는 크게 전형적 피동 구문과 비전형적 피동 구문으로 실현된다고 보고 있다. 이 절에서는 기존에 다루어졌던 피동에 관한 논의를 전형적 피동과 비전형적 피동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한국어에서 전형적인 피동 구문은 능동 구문으로 전환이 가능하여, 능동 구문에서 파생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구문을 말한다. 즉, 전형적인 피동 구문이란 구문 내에 등장하는 동작주로 인하여, 피동 사건이 벌어졌음을 나타내는 구문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의 전형적인 피동 구문에는 반드시 통사적인 동작주가 존재한다. 이와 다르게 비전형적 피동 구문은 구문 내에 통사적 동작주가 존재하지 않으며, 피동 사건의 원인을 밝히기 어렵거나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구문들이다. 그러므로 비전형적 피동 구문은 능동 구문으로 전환되지 않거나, 전환 가능하더라도 피동과 능동의 진리치가 다르다.
최현배(1937)는 피동을 남의 힘을 입어 되는 움직임이라 하였으나 이는 형식적인 뜻이라고 하였다. 그 실제적 뜻을 살펴보면, 이해 입음(利害被動), 할 수 있는 입음(可能的 被動), 절로 되는 입음(自然的 被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중 동작주의 행위에 의해 피동작주가 영향을 입는 피동을 ‘이해 피동’이라 하고, 피동작주가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동작주가 어떤 행위를 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을 ‘가능적 피동’이라 하며, 동작주가 저절로 그 움직임을 하게 되는 것을 ‘자연적 피동’이라 하였다. 이 세 가지 형식의 피동 구문 중 ‘이해 피동’은 가장 순수하고 진정한 것이라고 하여 전형적 피동으로 분류하고 나머지는 피동작주의 피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비전형적 피동 구문으로 분류하였다.
우인혜(1997:43-67)는 접사에 의한 피동을 크게 진피동(true passive)과 의사 피동(pseudo passive)으로 나누고, 진피동을 다시 전형적인 피동과 비전형적인 피동으로 나누었다.
(1) a. 이 문제가 누구에게나 쉽게 풀렸다.
b. 시중 자금 사정이 얼마쯤 풀렸다.
c. 날씨가 많이 풀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