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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듯 달 보듬듯 1

꿈꾸듯 달 보듬듯 1

정무늬 | 동아 | 2019년 05월 2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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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612g | 147*201*35mm
ISBN13 9791163021872
ISBN10 116302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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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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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화당에서 50대 고아한 중년 여인이 내려왔다.
“전하. 납시셨습니까.”
조선 최고 무녀라 불렸던 봉천군이 융에게 예를 올렸다. 사대부 여식으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신력 때문에 무당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비운의 여인이었다. 대왕대비의 총애를 받던 그녀는 돌연 국무당에서 물러나 칩거에 들어갔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었다.
“오랜만이네. 자네의 신딸을 만났는데 아주 희한한 아이더군.”
융이 그린을 가리켰다. 봉천군의 시선이 그린에게 향했다.
“신딸이라니요?”
봉천군에게 그린은 괴상망측한 옷차림을 한 낯선 소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식을 잃고 쓰러진 소녀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린에게 서린 기운을 읽던 봉천군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다.
잃어버렸던 자식을 되찾은 어미처럼 봉천군이 그린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고운 눈매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아아, 천지신명이시여…….”
봉천군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융이 물었다.
“그 아이가 정말 자네 신딸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봉천군이 대답했다.
“신딸이 아니라 소인의 수양딸이옵니다.”
하늘같은 군왕에게 거짓을 고하면서도 봉천군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데.”
“큰 혼란을 겪어서 그런 것이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무병이 아니고?”
“이 아이는 무적에 이름을 올릴 아이가 아니옵니다.”
봉천군이 극구 부인했다. 융이 침통하게 말했다.
“자네의 신딸이 내 시름을 덜어 주길 기대했거늘.”
“외람된 말씀이옵니다만…… 곧 방도가 생길 것 같사옵니다.”
“방도가 없다 하질 않았는가? 자네의 신력은 모두 동이 났다면서?”
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따스한 눈으로 그린을 바라보던 봉천군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말씀 올린대로 소인의 보잘것없는 신력은 10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전하를 도울 것이옵니다.”
무당도 아닌 여인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봉천군이 확신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린을 내려다보는 융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이 아이가 날 돕는다고? 그저 철없고 당돌한 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융은 오랫동안 한 줄기 희망을 찾아다녔다. 때론 지쳐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진짜 도움이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실오라기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좋았다. 악귀에서 놓여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베지 않길 잘했군.”
융의 입가가 보일 듯 말 듯 올라갔다. 그린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융이 축 늘어진 그린을 둘러업었다.
“전하! 천한 무녀를 업으시다니요!”
홍희수가 기겁하여 임금을 말렸다. 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녀가 아니라는 말 못 들었느냐?”
“소신이 업겠나이다!”
“됐다. 짚단보다 가볍구나.”
등과 팔로 전해지는 그린의 무게감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젖은 옷의 축축함도 썩 나쁘지 않았다. 봉천군의 말이 사실이라면 융은 제 손으로 마지막 희망을 건져 낸 것이었다. 연못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린을 보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연못이 아니라 파도가 너울거리는 바다였대도 그렇게 했을 거였다.
물에 빠진 소녀를 직접 구하는 상상을 융은 아주 오랫동안 해 왔다.
‘십 년 전 일인데도 잊히지 않는군.’
기억 속에 묻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소녀와 함께했던 날들은 아직도 반짝거렸다. 온기를 잃은 창백한 얼굴도 기억 속에 날카롭게 박혀 있었다. 소녀를 휘감은 물살은 너무나 거셌다. 첫정을 주었던 소녀가 제 눈앞에서 가라앉는 것을 융은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반복해서 그날의 꿈을 꾸었다.
악귀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걸음을 옮기다 말고 융이 연못 앞에 멈춰 섰다.
“봉천군, 이 연못의 이름이 무엇인가.”
“녹수연이옵니다. 흐르지 않는 못이 압록강 강물처럼 푸르고 맑아서 그 이름을 따 녹수연이라 지었사옵니다.”
“녹수. 녹수에서 올라온 소녀라.”
융이 중얼거렸다.
‘내 손으로 건졌으니, 이제부턴 내 것이다.’
융의 입가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가 걸렸다가 사라졌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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