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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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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선비들

: 광기와 극단의 시대를 살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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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35g | 153*225*20mm
ISBN13 9788959064595
ISBN10 895906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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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바람은 갈수록 빠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불어댔다. 1876년, 유배에서 풀려나 있던 최익현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일본 군함이 강화도와 제물포를 공격해 분탕질을 했고, 이에 놀란 고종과 조정 대신들이 일본과 수교하는 조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스승 이항로가 죽음으로라도 막고자 했던 상황이 아닌가? 최익현은 바로 궐문 앞으로 달려가 상소를 올린 다음, 옛 중국의 고사에 따라 도끼를 짊어지고 궐문 앞에서 노숙하며 하회(下回)를 기다렸다. ‘제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이 도끼로 저를 죽이소서’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최익현: 개화를 용서할 수 없던 선비, ‘최후의 최초’가 되다」--- p. 23

전우는 함께 의병을 일으키자는 최익현의 제안은 거절했다. 이는 그로서도 고뇌에 찬 결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병을 일으킨다고 한들 성공할 가망은 없다. 최익현도 성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망국을 앞두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선비들이 조선왕조와 더불어 모두 순국한다면 도(道)를 전할 사람도 없어진다. 그것은 죽어서 조선왕조의 신하로 남는 대신, 공자의 가르침을 영영 끊는 일이 아닌가? 그는 결국 고통스럽게 말했다. “500년의 종사를 저버릴지언정, 3,000년의 가르침을 폐지할 수는 없다.” “굴욕적으로 구차히 살기”를 스스로 택한 것이다. 「전우: 500년 대신 3,000년에 충성하다」--- p. 59

생애 두 번째 유배지에서, 40대가 된 이건창은 수심에 휩싸였다. 나라꼴은 갈수록 말이 아닌데 나아질 기미는 없고, 청나라와 일본은 급기야 전쟁을 일으켜 남의 나라에서 패권을 다툰다. 이 난국을 타개할 실심의 소유자는 누구인가? 보이지 않았다. 고종도, 흥선대원군도, 민영익도, 김옥균도, 전봉준도 이건창이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지쳤으며, 우울했다. 아마도 이즈음에 쓴 듯한 『녹언(鹿言)』은 파리해지고 피로해지는 병에 걸려 녹용을 얻으려고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에게 훈계를 들었다는 이야기다. 「이건창: 천하에 마음을 둘 곳이 없다」--- p. 97

유길준은 후쿠자와 유키치를 마냥 곧이곧대로 추종하지만은 않았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국권을 민권에 앞세우며 개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국법은 위에서 정하는 것일 뿐 개인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것이라 하며,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 파시즘을 연상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 유길준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법의 테두리 내에 묶어두되 그 국법은 ‘현명한 국민들의 뜻에 따라’ 제정되고 개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길준: 머리 깎고, 양복 입고, 충의를 부르짖다」--- p. 125

‘친일파’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이완용일 것이다. 그러면 이완용이 친일파의 대명사처럼 된 까닭은? 다른 일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을사조약 또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기도록 하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때 이완용을 비롯해 조약에 찬성한 대신들을 ‘을사오적’이라 불렀고, 당시나 지금이나 최악의 민족반역자라는 멍에를 씌우고 있다. 그런데 그 다섯 사람 가운데 조약문에 대한제국 대표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외부대신이었던 평재(平齋) 박제순이다. 그에게는 사실 더 많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가 오랫동안 대한제국의 외교를 담당하며 추구해왔던 노선의 끝에 그 조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제순: 고독한 변절자의 초상」--- p. 154~155

이인직이 도쿄정치학교에 재학하면서 신문사에 입사한 것은 학교가 본래 언론인 양성 목적을 갖고 있어서였기도 했지만, 스스로 ‘무지한 동포를 계몽하려면 언론이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그가 들어간 『미야코신문』은 이른바 정론지를 표방하는 신문은 아니었고, 오늘날로 말하면 스포츠신문과 흡사한 대중 오락지 였다. 이인직은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의 눈과 귀를 열려면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입사한 직후 기고한 「입사설(入社說)」에서 “신문지를 통해 세계문명의 사진 기계(寫眞機械)가 되고, 전어 기계(傳語機械)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한편 고국에도 『황성신문』 같은 언론이 일부 있으나 그 부수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지나치게 어려운 논설만 고집하다 보니 소수 지식인에게만 통하는 언론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인직: ‘헬조선’ 앞에 ‘피의 눈물’을 흘리다」--- p. 196

그는 ‘일반 서민의 민덕이 낮을 뿐 아니라, 지도자층에 속한다는 사람들조차 고루하지 않으면 교활하다. 그리고 뭘 하려고만 하면 파벌을 지어서 싸움을 벌이느라 정작 사업은 뒷전이다. 모든 이의 영혼을 깨우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무엇으로 영혼을 깨울 것인가? 종교다! 서양의 기독교나 동양의 불교 같은 ‘시민 종교’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병헌은 당시 박은식, 장지연을 비롯한 일부 개신유교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유교의 종교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이병헌만큼 그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아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사람은 없었다. 「이병헌: ‘미제’와 ‘중부’ 사이에서」--- p. 229

신채호가 유교에서 완전히 이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박은식·김창숙 등 유교의 맥을 살려보려는 인물들과 평생 잘 지냈으며, “허위 대신 실학을, 소강(小康) 대신 대동(大同)을” 가르치는 유교라면 “우주에 빛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생애 후기에 쓴 「이해(利害)」라는 글에서는 “개신(個身)의 생존만 구하다가 전체의 사멸을 이루면 개신도 따라 사멸하나니,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개신을 희생해서라도 전체를 살려야 하며……열사(烈士)는 적국과 싸우다가……멸망을 할지언정 노예로 구차히 살지는 않는다”고 하며 유교의 군자와 열사 관념을 아와 비아의 투쟁에서 중요하다고 적시했다. 말하자면 근대(서양)의 충격에 따라 유교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병헌은 인(仁)과 화(和)를 중심으로 종교로서 유교를 구축하려고 했던 반면 신채호는 의(義)와 절(節)의 정신을 한껏 강조한 셈이다. 「신채호: 나의 투쟁, 나 여기에 서다」--- p. 269

안인식이 친일 유학자로 특별히 ‘공헌’한 점은 그보다 ‘황도유학’의 이론적 기반을 닦았다는 데 있다. 황도유학이라는 말은 일찍이 유교망국론을 두고 장지연과 논쟁하기도 했던 다카하시 도루가 경성제국대학 교수 시절인 1939년에 처음 내놓은 말이다. 그는 “지나(중국) 유교에서는 왕도(王道)를 말하는데, 임금이 임금 노릇을 하지 못하면 혁명으로 왕조를 갈아치운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본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신이 세우신 나라로, 그 현묘(玄妙)한 보살핌은 모자람이 없고, 신민의 한결같은 충성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아득한 옛날부터 만세일계(萬世一係)로 이어져옴으로써 혁명이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우리의 유교는 왕도 아닌 황도유교인 것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안인식: 눈 먼 예언자, 독과 피가 흐르는 땅을 가리키다」--- p. 301~302

그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사의 기질도 문사의 재능도 변변치 않은 자신이 마침내 선비답게 죽을 길을 찾았음을. 한 개인의 파멸을 담보로, ‘최후까지 비타협적으로 적과 맞섰던 위대한 영혼’이라는 불멸의 신화를 쓰는 것이야말로, 그가 세상에 남길 유일한 걸작이 될 것임을. 그렇게 말이 아닌 생명으로 쓴 시를 젊은이들의 가슴에 뿌림으로써, 언젠가 그 시가 불꽃으로 피어나고, 들불로 번져나가, 마침내 짙고 짙은 어둠을 살라먹도록 돕는 일! 그것이야말로 언젠가 네게 비취 인재(印材)를 주려마, 했던 할아버지의 기다림에 부응하는 일이겠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찾는 일이겠지! 그것이 숨이 넘어가는 순간 그의 뇌리에 스쳐간 생각들, 말들이 아니었을까? 「이육사: 초인,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 초인을 기다리며」
--- p. 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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