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 이야기의 씨앗을 3등 선실의 어둠 속에 간직한 채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가져왔고,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을 따라 펼쳐진 황금빛 들판을 가로지르는 검은 열차를 타고 오는 내내 이 이야기를 가슴속에 고이 품어왔다. 이 모든 일들과 더한 것들을 겪으면서도 그는 마음속 피난처에 이 이야기의 정신을 간직했고, 그의 내부에 존재하는 전쟁의 상처로부터 어떻게든 이야기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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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통조림 병에 든 자두처럼 우리는 서로를 비집고 뜨거운 기차에 몸을 실은 채 시카고로 향했다. 몸은 비록 짜증이 났지만 우리는 전쟁에 짓밟힌 가족을 찾아서 드디어 집으로 데려온다는 기대와 열망,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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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자신의 인생이 바닥까지 무너졌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았고, 동물들에게 다감했으며, 땅은 그 자체로 희망과 필요와 꿈을 가진 살아 있는 것이라 믿는 사람이었다.
--- p.35
난민이 되었다가 돌아온 어른들은 이 시기 동안 갑자기 무표정한 얼굴로 변해서 차분하게 감자를 깎거나 양말을 뜨거나 나무를 하러 가거나 바닥을 쓸곤 했다. 그 깊은 정적은 자신만의 유령을 꽁꽁 묶어놓았던 밧줄이 느슨하게 풀어져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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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나쁜 기억은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문틀의 달가닥거리는 소리, 한밤중에 갑자기 고양이가 내는 날카로운 소리나 순진한 개가 집에 들어가려고 방충망을 긁어대는 소리, 갑작스런 돌풍에 커튼이 흔들려 탁자 위의 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기억들은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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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오래 사셨는데, 그가 오래 살 수 있었던 건, 그리고 눈부시게 살 수 있었던 건,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모든 인간이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변하지 않는 믿음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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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욱 놀라운 것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새로운 인생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매번 뿌리째 뽑아도 매번 다시 뿌리를 박고 자리를 잡는다. 새로운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와 끊임없이 땅에 내려오고, 마음의 변화, 마음의 회복과 치유, 삶의 선택을 위한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 p.98
사랑과 지혜를 일깨워주고, 내 안의 다듬어지지 못한 가치 있는 것들을 발견하여 갈고 닦도록 해주었다. 무엇보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포함하여 사랑이 필요한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그들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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