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비평에서 ‘본문’은 본문이고 ‘부록’은 부록이다. 오탁번의 「굴뚝과 천장」은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문예비평의 본문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사실에서 연유한다. 그 하나는 예술작품이 본질적으로 내포하는 가장 곤란한 패러독스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며, 사회적 변혁과 문학이 역사 자체가 될 때의 역비례 관계에 대한 성찰을 최초로 형상화시켰다는 점을 그 다른 하나로 들 수 있다. 그 패러독스란 예술 작품이 자족적 존재의 모습을 띠면서도 동시에 비자족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 관계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잠적은 1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흔적도 없이 그곳에 있었다. 누워있는 게 아니라 흩어져 있었다. 흩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있다 없다를 초월한 상태로’ 나와, 우리와를 대면케 하는 것이다. 이 대면 속에 전율을 감지케 한 그 힘의 포착이야말로 이 작가의 예술가로 서의 정신의 높이일 것이다.
- 김윤식 (중앙일보, 1973)
오탁번의 투명한 세계, 이른바 지적인 세계는 우리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보아왔던 것들이다. 비록 『달맞이꽃』의 아름다운 영상들이 밤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지만, 소설의 의미는 대낮처럼 밝다. ‘칼’에 대한 언더 플롯, ‘겁쟁이는 필요없어’라는 말의 되풀이 등, 비록 어린 아이의 행동이지만 작가는 그 행동에 뚜렷한 동기, 합리적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자연히 작품 전체가 한 가지 울림을 갖게 된다.
- 이어령 (문학사상, 1985)
「새와 십자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각 문장의 서술형 종결어미를 현재형으로 처리하고 있다. 게다가 각 문장은 대개 단문이면서 미문으로 다듬어져 있다. 각 인물의 복잡한 행동 양식과 사고 구조가 단문 혹은 미문 세례를 받으면서 명징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작품은 군데군데 요의 형태를 끼워 넣고 있다. 이러한 요들은 기존의 노래에서 암시받아 작가가 만들어낸 창작 민요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 주로 성(性)과 가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소설 중간중간에 시를 삽입하는 방법은 이미 고대소설에서부터 있어왔거니와 일단 이 방법은 작중의 분위기를 심화시키거나 일전시키는 데는 아주 안성맞춤인 것으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비유를 써서 말하자면 소설 속에 시나 요를 끼워 넣는 것은 환풍기를 돌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작품 「새와 십자가」는 이러한 환풍 장치를 자주 사용하고 있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음습하면서도 원시적인 곳으로 이끌어 가 버린다. 특히 이 작품의 거의 마지막 부분인 장례식의 대목에서는 집단 가무로 자주 나타나고 있어 독자의 공감대를 한층 더 넓혀주고 있다.
- 조남현 (『한국현대문학전집』 29(삼성출판사, 1984))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 같은 작품은 순수낭만과 현실적 절망 사이의 변증법적 균형이 어떻게 유지되면서 건강성을 확보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현실적 절망은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대학 캠퍼스, 김소월 같은 시인이 형편없이 매도당하는 강의실,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교수들의 분위기, 암담한 정치상황 등으로 열거된다. 그리고 이런 현실 상황은 아내의 임신중절로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는데, 그것은 생명이 파괴되는 죽음의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절망 사이사이에 순수낭만이 대위법적으로 열거되는데, 그것은 학생들의 순박한 생각, 아내와의 연애시절, 꾸밈없이 웃고 즐기는 학생수련회 모습, 첫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과 그 산의 이름이 그냥 큰 산이라고 말하는 시골 소년 등등이다. 이 두 가지는 작품 속에서 서로 삼투되어 이리저리 엉키면서 주인공의 의식을 형성한다. 전반적으로 죽음의 현실상황이 훨씬 주도적이고 지배적이지만, 이 절망과 낭만의 대위법은 마지막에 가서 건강한 균형을 획득하게 된다. 즉 최루탄 때문에 벌레들이 다 죽게 되었지만 혹시 살아있을지 모르는 익충의 알이나 유충을 보호하기 위하여 인부들이 고생스럽게 벌레 잠복소섶을 만드는 희망의 장면으로 작품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현실의 절망과 순수 낭만 어느 쪽으로도 손쉽게 기울어지지 않고 그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갈등하며 그 변증법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아마 이것이 오탁번 문학의 가장 중요한 가치요 의미일 것이다.
- 이남호 (나남문학선 31 『순은의 아침』(나남,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