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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자의 대지 2

걷는 자의 대지 2

: 길과 글 사이에서

하창수 | 전망 | 2019년 05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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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592쪽 | 1152g | 170*225*35mm
ISBN13 9788979735031
ISBN10 897973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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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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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합천행 버스를 탄다. 홍류동계곡 농산정 맞은편에 있는 치원대 또는 제시석이라 불리는 석벽에 새겨진, 최치원의 둔세시 ‘제가야산독서당’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오래 전 두 차례나 답사를 한 적이 있어, 사진이 있을 것이라 여기며 사진첩을 뒤져 봤으나 없다. 왜 꼭 필요한 것은 찾으면 보이지 않을까.
차창 밖 풍경에도 지쳐 최치원에 대한 상념에 젖는다. ‘멀리 이른다’는 그의 이름 ‘치원’처럼, 그는 12살의 나이에 ‘당나라’를 향해 ‘먼’ 길을 떠난다. 장삿배에 오르는 그에게 아버지는 그의 앞길이 원대함에 있음을 일깨우듯, “10년 이내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가서 힘쓰라.”라고 당부한다.
치원은 아버지의 여망을 저버리지 않고 18살에 빈공과(외국인 응시 과거)에 단번에 급제한 뒤, 황소의 난 때에는 토벌대장 고병의 종사관으로 따라가 [토황소격문]을 지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28세에 귀국한 뒤 ‘장지’ 곧 장대한 포부를 펼치려 했으나, 골품제의 한계와 토착 세력의 시기에 가로막혀, 태인, 서산, 함양의 변두리 태수로 떠돈다. 그러면서도 기울어가는 나라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왕에게 시무책 10여조를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체제 정비 능력을 상실한 왕실이 그것을 실행할 여력은 없다. 당과 신라의 쇠망기에 어느 한쪽에도 제대로 안착하여 뜻을 펼치지 못한 그는 작은 벼슬마저 버리고, 경주 남산, 의성 빙산, 합천 청량산, 지리산 쌍계사, 창원 별서, 부산 해운대 등의 산천을 유랑한다.
그의 ‘자’(관례 이후 또는 장가든 뒤 본이름 대신 부르던 이름)가 ‘고운’이라면, 이처럼 떠도는 삶이 예정된 것일 터이고, 그의 ‘호’가 ‘고운’이라면, 그의 삶에 걸맞은 이름으로 덧붙여진 것일 터이다.
신라 말의 ‘3최’ 중 나머지 두 사람은 그와 다른 길을 걷는다. 최승우는 견훤에게로 가고, 최언위는 왕건에게로 간다. 최치원도 왕건의 흥기를 ‘계림황엽 곡령청송’(신라는 누런 잎이요, 고려는 푸른 솔이다)이라는 말로 예견했다고 전해지지만, 세속 권력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더 멀리 나아가 가야산 자락에 은거하는 삶을 택한다. 석벽에 새겨진 시구처럼, 흐르는 물로 ‘산을 감싸’(농산) 세속의 소리가 귀에 닿지 않도록 차단해 버린다.
버스가 합천 시외버스터미널로 들어서면서 상념에서 빠져나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터미널과 장터의 경계가 모호해져 있는 곳에는 빨갛게 익어 마른 고추가 담긴, 커다란 투명 비닐 부대를 가운데 두고 흥정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흥정이 늘 그렇듯이, 파는 이는 자기 물건이 좋다고 내세우고, 사는 이는 물건이 흠결이 있다고 트집 잡는다.
그곳을 얼쩡거리며 구경하다가 해인사로 가는 군내버스에 오른다. 승객 대부분은 장을 봐 가는 노인네들이다. 좌석 곁에 몇 개의 짐들을 대동하고 있다. 북적거리던 읍내를 벗어나자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린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들자 바닥에 놓여 있던 장짐 하나가 기울어지는 바닥을 쓸고 가며 반대편 버스 벽에 부딪힌다.
짐의 주인인 할머니가 조금 당황하며 기사의 눈치를 살핀다. 룸미러로 버스 안을 살피는 기사의 눈과 할머니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기사가 말한다. “괜찮습니다. 짐이 버스 밖으로 나가지는 않으니까요,” 짐을 단단히 챙기지 못한 할머니를 탓하기보다는, 눈치 보는 마음을 다독거리는 헤아림이 감지되는 순간이다. 기사의 반응이 조금 염려되는 듯하던 노인네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조금 더 달리니, 내리겠다고 하는 한 노인네가, 두 손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짐 때문에 답답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 모습을 보던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버스 밖으로 건네주며, “멀리는 못 나갑니다.”라고 뒤통수에 인사말까지 붙여 배웅한다. 다시 승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결정적인 것은 그 다음. 정류소에 내리면 짐을 들고 집까지 가는 것이 힘들어서일까. 노인네 한 분이 기사에게 부탁한다. 정류소가 아닌 집 가까이 좀 세워달라고. 이번에는 시원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집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버스가 커서.” 버스 안에 파안대소가 퍼진다. 뒤를 이어 기사를 칭찬하는 쑥덕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소릿길을 걸으려 가는 듯한 중년의 두 여자는 미담으로 어디 방송에라도 소개해야겠다고 덧붙인다.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재작년에 목격한 그 일을 지금 지상에 옮기고 있다. 젊은 나이인데도 그런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기사를 보면서, 그것을 단순히 그의 천성에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주위의 어떤 인간에게서도 쉽사리 발견할 수 없는 ‘품성’으로 느껴졌다.
좌절된 포부를 상념하며 갔던 길, 그 흔적을 시구 대신 그것을 뒤덮은 담쟁이덩굴만 잔뜩 카메라에 담아 돌아왔지만, 그에 못지않은 훈훈하고 빛나는 ‘일상’을 가슴에 담고 와 전혀 허전하지 않았다.
--- 「최치원과 버스기사, 장지壯志와 일상」 중에서


사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에 오른다. 광명에서 내려오는 친구 정상규를 구례에서 만나 하동까지 섬진강 벚꽃 길을 함께 걷기 위해서다. 구례에서 화개에 이르는 벚꽃 길은 오탁의 세상을 지우며, 이 세상을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만들고 있다.
화개에서 하룻밤을 자고 근처 식당에 들러 재첩국으로 아침을 먹으며, 친구는 재첩의 출처를 묻는다.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식당 주인의 입으로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냉동된 재첩이 든 팩을 구입해서 쓴다는 답이 돌아온다. 강원도의 어느 식당에서는 도루묵이 그런 처지에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많은 식당에, 그 많은 나날에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만으로, 동해안에서 잡은 도루묵만으로 감당이 되겠는가. ‘싹쓸이’를 넘어 양식이나 수입을 도모하는 길밖에 더 있겠는가. 이제 고대구리=싹쓸이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쓸어 담을 것이 없도록 싹 쓸어버렸으니까.
치어를 방류하거나 어초를 설치하거나 종패를 뿌리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닐까.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자원을 너무 황폐화시켜 복원을 어렵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는 사토브리앙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고, 건물과 도로의 확장으로 사라지는 자연,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위협, 세계 각국 수반의 저렴해지는 수준을 보면, 어쩌다 보게 되는 화성의 헐벗은 모습이 지구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싹쓸이의 맞은편에 있는 말이 ‘석과불식’이 아닐까. “큰 과실/씨 과실은 먹지 않고 종자로 남긴다”는 말이니, 지금의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고, 내일이나 자손을 염두에 둔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싹쓸이와 대비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의 근원을 찾아가면, 『주역』 64괘의 23번째 ‘박괘’의 여섯 번째 효 곧 상효 또는 상구의 효사에 이르게 된다. “씨 과실은 먹지/먹히지 않는다. 군자는 가마를 얻고, 소인은 거처를 앗긴다”가 그것이다. 이 짧은 구절에서 덤으로 두 가지를 읽어낼 수 있다. 주역이 농경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과, 군자와 소인의 행태를 명확히 구분하여 군자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박괘 앞의 ‘비괘’의, “외면적인 허식은 버리고 내면의 충실을 꾀해야 한다”는 풀이를 접하면, 꽃과 잎을 다 떨고 열매만 남아 있는 과일나무를 떠올릴 수 있고, 박괘 뒤의 ‘복괘’의, ‘봄이 돌아왔으나, 급히 나가면 위험하다’는 풀이를 읽으면, 땅 속에 묻혀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씨앗을 떠올릴 수 있다. 박괘는 그 두 괘 사이에서 씨앗이 들어 있는 과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어지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씨앗은 인간 세상으로 옮겨지면 소인과 다른 군자가 된다. 논어에도 나오듯이, 소인은 이에 예민하고 군자는 의에 민첩하다. 온 세상이 소인배들의 이에 만연되어도 의에 민첩한 군자가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씨앗이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마침내 다시 수많은 열매를 달게 되듯이. 실제로 중국이나 우리 왕조의 책사나 경세가들 중에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자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왕조든 전반기를 넘어서면 의로움이 이로움에 축출되기 마련이다. 소인배들 곧 권세가들이나 세도가들이 득세하고 탐관오리가 만연하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군자는 제 길을 잃고 은거하게 된다. 그러면 군자가 하던 씨앗의 역할, 의가 이에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보여줄까. 왕조의 쇠망기를 살피면 답이 나온다. 군자가 지닌 씨앗 역할의 신분적, 계급적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진나라 말기 진승과 오광이 왕후장상을 겨냥하고, 당나라 후반기 10년을 끌었던 황소의 난에 토벌대로 나선 유거용이 그 안을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황소가 양양을 습격했을 때, 유거용은 복병을 대기시켜 이를 대파한다. 황소는 패잔병을 거두어 달아났으나 거용은 추격을 하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적을 추격하여 잔멸해야 할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환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라고 부하가 충고하지만, 거용은 “조정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백성의 반란뿐이다. 뿌리를 뽑아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한다. 곧 싹쓸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로움은 군자의 독점물이 아니었던 것. 그 씨앗을 간직한 존재는 왕조 통치의 최대 피해자이자 왕조 정치력/창조력의 고갈을 행동으로 지적하고 쇄신을 요구하는 농민들이었던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 식으로 말하면, 체제는 ‘창조적 개인→창조적 소수→지배적 소수→저항적 다수’로 진행된다. 마지막 단계는 그 체제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표지다.
창조력과 지배력은 반비례한다. 창조력은 다수의 삶을 위해 고민하고, 지배력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집결한다. 소수의 지배가 창조를 내세우는 것은 자신들의 지배 야욕을 포장하기 위해서다. 촛불집회는 소수의 지배집단-정권, 재벌, 언론-이 우리 사회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는, 의로움을 상실한 이익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농민 저항의 현대적 버전이다.

--- 「황소와 유거용, 싹쓸이와 석과불식碩果不食」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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