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가 밭에 일을 나가며 두 누이들은 언제나 종이의 차지였다. 환은 언제나 제 볼 일이 먼저여서 어미에게 동생들을 돌보겠다고 대답은 찰떡같이 해놓고도 누가 놀자고 부르면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하긴 환이 집에 붙어 있는 것이 누이들에게 좋을 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나눠 먹으라고 지어둔 밥은 언제든지 환이 먼저 솥을 차고앉아 양껏 퍼먹은 다음에야 아우들 셋이 밥풀 구경이라도 할수 있었다.
고구마나 오이 같은 군입질거리는 아예 싹쓸이해버려, 저녁은 고구마나 삶아서 때워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온 어미가 기함을 하게 했고, 찬장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대개는 오일장에 다녀오던 님이가 주고간 갱엿이나 박하사탕은 그것이 몇 개든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환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도 저도 없는 날이면 쌀을 긁어 쌀이라도 오도록오도록 씹어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환이었다.
--- p.159
님이는 예지와 윤아 둘 다 조금도 덜 소중하거나 더 소중하지 않은 딸들이라고 생각했다. 님이가 그녀의 두 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고 형성될 유대는, 죽은 권개동과 그의 네 아들들 사이에서의 유대보다 질적으로 월등히 견고했다. 이 두가지의 유대가 가부장제 사회의 의미체계에서 가지는 중요성의 정도는 물론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후자가 대를 잇는 유대관계인 반면 전자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를 잇는다는 것의 의미는, 혹은 대를 이음으로써 한 사람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자신의 윗대와 아랫대를 분명히 함으로써 너무나 짧고 허무하고 불확실한 이승의 삶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의미일까. 그래서 씨받이도 하고 씨내리도 하고, 뼈다귀를 따지고 관향을 따지고 적서를 따지는 것일까
--- p.100-101
그녀는 낯선 운명 속에 자신을 방기하고 싶다. 그것이 운명에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윤아의 전략이었다. 운명에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보육원 원장 처럼 신의 섭리를 믿는 것이다. 신은 당신의 쓰임새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 윤아도 시의 쓰임새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다. 윤아의 앞날은 신의 계획에 따라 예정되어 있다. 신의 충실한 종인 윤아는 신의 뜻을 추종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시련도 신의 계획에 합치되는 시험이자 단련일 뿐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 p.38-39
계곡으로 가는 갈 옆 우묵한 자리에 들어선 새집. 이제 얼마있지 않아 저 집에서 늙은 여자와 젊은여자 , 늙지도 젊지도않은 남자가 만날것이다.젊은 여자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남자는 늙은 여자를 이모라고 부르겠지. 이모야, 이모야,이모야.너무 불러 닳아지도록 그 이모를 부르며자랐던 한 시절이 있었지.
윤아는 달밭골 계곡에서 걸음을 멈춘다. 서울서 짐 싸들고 내려와 사흘 남짓, 윤아가 한 일이라고는 달밭골의 계곡에 발을 담그고 나무와 풀벌레와 돌멩이와친해진 것뿐이다. 윤아는 늘앉던 너럭바위 위에 앉는다. 평평하여 앉기 좋은 바위이다. 차고 맑은 물이 윤아의 벗은 발을 간질이며 소왈소왈 말을 건다.
물의말.
윤아는 손바닥 가득물을 떠 달아오른 얼굴에뿌린다.물이 눈 속에도 들어가고 입 속에도 들어간다. 물방울 어린눈으로 보는 천지간은, 온통 물빛이다.
--- p.313-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