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성의 독재’나 ‘습관의 독재’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라면, 문제의 핵심은 무엇에 친숙해지고 무엇을 습관으로 삼느냐일 게다. 행복에 다가서는 감정 습관을 가질 수는 없는 걸까? 행복에서 멀어지는 감정 습관은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습관에서부터 시작해 큰 변화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른바 ‘작은 습관의 힘’이다. --- p.23
한국 특유의 적당주의나 대충주의는 한국을 ‘퍼지 사고력의 천국’이라고 부르는 근거가 되고 있지만, 우리는 일을 처리할 때에만 그럴 뿐 사회적으로 ‘다름’을 대하는 자세에서 적당주의나 대충주의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관용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사실 관용의 핵심은 ‘모호성에 대한 포용력’이 아닌가. 상황에 따라 분명함 을 요구하거나 모호성을 포용하는 분별력을 갖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가 보다. --- p.66
문제는 자아 팽창 그 자체라기보다는 남들과 무엇을 비교하느냐는 기준이 아닐까? ‘협동심’이라거나 ‘겸손’이라는 덕목을 비교하는 법은 없다. 그런 덕목은 오히려 자아 팽창에 방해가 되는 것이니 한사코 피해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자아 팽창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가 큰 몫을 차지한다. 드물게 자수성가(自手成家)를 한 사람은 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아 팽창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소보다 큰 척 자랑하다 배 터져 죽은 맹꽁이 이야기는 우화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크게 성공한 유명 인사들 가운데 자신의 첫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무한대의 자아 팽창을 추구하다가 결국 패가망신(敗家亡身)의 길로 접어든 이가 많다. 그 과정에서 어이없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몸이건 정신이건 그건 무한대의 팽창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 pp.97~98
그간 수많은 연구 결과가 밝혀주었듯이, 우리 인간은 합리적 선택 이론이 가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합리적인 동물은 아니며 ‘이기적 유전자’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감정과 충동에 의해 행동할 때도 많으며, ‘이타적 유전자’도 갖고 있다. ‘이타적 유전자’에 의한 행위도 해석하기에 따라선 어떤 사람들에겐 ‘합리적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즉, ‘합리적 선택’의 범주를 좁게 보거나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하나의 고정된 틀로 묶지는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그 어떤 유형의 중독에 빠져 있다면, 그건 합리적 선택이라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말이다. --- p.124
노력 정당화 효과는 자신이 큰 고생을 했거나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 일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면접이라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애사심도 높아지고 따라서 이직률도 낮아질 게 아니냐는 생각, 이것만으로도 면접을 유지하는 건 물론 더욱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여기에 들어왔는데……”라는 생각은 조직의 불합리함은 물론 범법 수준의 갑질도 견뎌낼 수 있는 멘탈을 형성케 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취준생들 스스로 합격을 위해 모욕을 견뎌내는 연습까지 하는 마당에 학교에서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생활해온 젊은이들을 ‘조직인’으로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이런 소중한 기회를 왜 포기한단 말인가?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기업의 발전이란 것도 개인의 번득이는 창의성보다는 개인을 조직에 종속시키는 의식이 더 크게 기여하는 게 현실이라면, 면접 무용론자들의 생각은 기업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게다. 아닌가? --- p.184
아기의 힘이 그렇게 크다. 여러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모두 다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아기의 등장 하나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아기 사진 하나가 그 누구건 점유물이탈횡령이나 그냥 모른 척하는 방관의 유혹을 뿌리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로, 지갑에 웃는 아기 사진을 넣고 다니시라. 스마트폰이 지갑을 대체했다면 초기 화면을 아기 사진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싸움질이 잦은 국회의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의 벽면을 아기 사진으로 도배하는 건 어떨지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해결이 안 될 땐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클루지를 쓴다고 해서 큰일 날 것 없지 않은가. 최첨단 전자제품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할 때 그냥 손으로 몇 번 두들기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 pp.209~210
핵심은 바로 감수성의 문제다. 앞서 지적되었듯이, 마이크로어그레션 가운데 가장 흔한 유형인 ‘미묘한 모욕’은 많은 사람이 관습적이거나 정상적인 것으로 지각하며, 그래서 눈에 띄지 않거나 문제점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명절이 어떤 사람들에게 ‘끔찍한 고문’의 잔치판이 되기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마이크로어그레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명절 고문’을 비교 설명의 사례로 활용하는 건 어떨까? 마이크로어그레션이 싫어서 명절에 고향을 가지 않는 남자들 중엔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사람이 적잖을 게다. 왜 이들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나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등을 돌리는 걸까? 따지고 보면,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상처를 받는데도 말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같은 문제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명절 고문’을 마이크로어그레션에 포함시켜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겠다. --- p.241
한국은 오랜 세월 누려온 사회문화적 동질성으로 인해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이 강한 나라다. 자민족 중심주의, 자문화 중심주의, 자기집단 중심주의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말은 자신의 문화를 다른 문화에 비해 우월하다고 여기는 걸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것에 대한 편견은 강한 반면 인내심이 약한 성향을 가리킬 때에 쓰이기도 한다. 예컨대, 에스노센트리즘이 강한 사람일수록 강한 동성애 혐오증(homophobia)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동성애자, 미혼모, 외국인 노동자, 혼혈인 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다름’을 ‘틀림’이라고 말하는 언어 습관도 그런 성향과 무관치 않은데, 이게 도덕의 다차원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자면, 도덕 기반 이론은 만만찮은 반론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소통을 위해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 p.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