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동창은 딱 잘라 말했다.
“두 사람을 똑같이 정육품으로 승급시키며 그에 해당하는 동창 직급으로 임시발령 하는 바이다. 이후 임무를 마치고 금의위로 복귀할 때도 그와 같거나 공적에 따라 그 이상 가는 품계를 받을 것이다.”
두 사람은 벼락 진급을 하게 되자 화색이 만면해졌다. 그러자 제독동창은 다시 온화한 어조로 돌아가 말했다.
“그리고…… 자네 둘. 지금 급히 갈 곳이 있네.”
“무, 무슨 일이온지…….”
엽호가 또 머뭇거리자 남궁수가 급히 말했다.
“명이 있으시다면 불속이라도 뛰어들어야겠사오나 사정을 제대로 알고 가지 못하면 실수가 있을까 두렵사옵니다.”
그러자 제독동창은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가면서 들으면 된다. 자네들은 시랑을 살해하고, 연달아 대신들을 암살하는 조직의 흉수를 쫓는 거야. 중요한 건 그것뿐이지.”
“예? 난데없이 흉, 흉수라면…….”
제독은 수수께끼라도 내듯 두 사람에게 말했다.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네들 입으로 증거를 찾아내지 않았는가.”
그러자 남궁수가 머리를 굴렸다. 제독이 공연히 이런 일을 벌일 이유는 없다. 흉수가 자신들이 추정한 대로 시랑과도 아는 사이였다면, 시랑과 모종의 관계가 있던 자이거나 흑막이 있는 자이리라. 또 자신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대신들의 연속살해가 한 사람이나 한 조직의 손에서 저질러졌다면 제독도 뭔가 꼬투리를 쥐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엽호가 밝혀낸 대로 흑록 가죽으로 된 옷을 입은 자라면……. 남궁수는 불쑥 기쁜 듯 외쳤다.
“북으로 가는 것입니까?” ---「[서장] 탈문의 변(奪門之變)후 33년」 중에서
“종희야!”
문 밖에서 낮지만 날카롭고 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술냄새를 풍기며 이불을 뒤집어쓴 채 코를 골던 지종희(池鐘熙)의 눈이 번쩍 떠졌다. 눈만 떠진 것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려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아직 술기운에 눌린 팔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아 서탁에 머리를 부딪히고 촛대를 엎고, 또 그 서슬에 버둥거리다가 짚은 손이 머리맡에 세워두었던 육모방망이를 튕겼다. 눕혀둔 괭이를 잘못 밟아 솟구친 괭이자루에 코가 찍히듯, 지종희도 튀어오른 육모방망이에 왼쪽 눈께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눈에서 별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
“무엇 하느냐, 종희야!”
다시 한 번 엄한 목소리가 들리자, 지종희는 그야말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손을 놀려 매무새를 대강이라도 바로잡고 비뚜름하던 전립을 똑바로 얹었다. 세 번 부르는 소리가 나오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대충 걸친 쾌자 자락을 바람이 일도록 급히 어루만지며 다급히 문을 열고 나서다가 지종희는 다시 한 번 윗 문틀에 머리를 호되게 부딪혔다.
“어이쿠.” ---「[1] 위화 고을의 건달 포졸」 중에서
지종희는 많이 놀랐다. 자기가 난전에 가서 설친 것은 사실이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조선 사람들 편을 들고 조선 자랑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때문에 조세가 걷혀? 이건 뭔 소리여?
“하여, 변방 방비에 쓰일 예산이 그로 인해 다소나마 넉넉하게 되었으니…….”
지종희는 말을 끊고 되물었다.
“아니아니, 누가 조세를 냈다는 거요? 여진족이?”
“공식적인 세금은 아니지요. 허나 그들이 자발적으로 진상을 올리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잖소. 여진만이 아니라 조선 상인들도 으레 세를 내고 명국 상인이나 왜국, 유구국 상인들에 서역상인까지 으레 조세를 바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소. 비록 비공식적이고 세율도 아주 낮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지종희는 성질이 솟았다. 아니, 그 미친놈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세금 없는 난전까지 왔다는 놈들이 뭔 조세를 내? 난전은 조세 없는 곳 아닌가? 더구나 조세를 낼 거면 나한테 내야지 무슨 의주 부윤한테 내냐고! 그걸 다 걷으면 팔자 확 피는데…… 어이구…….
지종희는 성질이 무럭무럭 솟는데 최 천호장은 여전히 실실 웃으며 은덩이를 내민다.
“그러니 이것은 뇌물도 아니고, 당당한 포상금이니 지 형이 넣어두시오.”
지종희의 표정이 굳었다가 다시 피시식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
“못 받소.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속으로는 이 망할 놈들아, 조세 명목으로 조직적으로 바친다면 못 잡아도 수천 냥일 텐데 정작 당사자는 열 냥 먹고 떨어지라는 거냐, 더러워서 안 먹는다고 외쳐댔다. 그러나 속마음을 굳이 내보이면 가뜩이나 손해 본 것을 또 손해 보게 되는 셈이다. 참자. 참아야 나중을 기약할 수 있느니라.
“허허. 지 형은 역시 호걸이시오. 이렇게 마음가짐이 호탕하고 청렴하니…… 허나 이건 정말…….”
“아, 나 호걸 아니오. 그런 말 절대 마시구려.” ---「[2] 압록강 나루터에서」 중에서
이제 슬슬 기회가 무르익었다 생각한 지종희는 너스레를 떨었다.
“허. 허나 나도 조선의 녹을 먹는 일종의 관리라서, 난전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그렇고, 난전 잡놈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쉽지 않단 말이오. 뭐랄까…….”
“아니, 지 형 같은 호걸께서도 난전을 꺼리신단 말씀이오?”
지종희는 속으로 웃었다.
‘아, 아주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려 하네. 물론 나야 난전의 왕이시지. 허지만 그걸 처음부터 말해서야 생색이 안 나지 않겠어?’
지종희는 다시 호걸답게 허허 웃으며 말했다.
“나야 난전을 꺼릴 이유가 없지만, 형장들은 다르지 않소. 형장들은 나와 오늘 처음 만난 명국 사람일 뿐이고…… 뭔가 그럴듯한 이유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럴듯한 이유라면요?”
남궁수가 되묻자 지종희는 천연스럽게 말한다.
“그쪽이 나와 뭔가 인연이라도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말이오, 뭐랄까. 여진족들은 안다라고 하고, 중원인들은 의형제를 맺는다 하지 않소? 왜 거 유비 관우 장비가 뽕나무 아래서 했다는 것 같은…….”
그러자 남궁수가 살짝 웃었다. (……)
“역시 안 되겠지요?”
지종희가 은근히 눈치를 주자 갑자기 남궁수가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저는 지 공이 마음에 듭니다.”
“어허, 남궁수 군. 지 형이라 하라니까.”
지종희가 아예 하대를 하고, 엽호가 연신 눈짓을 보내는데도 남궁수는 일단 소년다운 혈기가 들끓는 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 형께서는 비록 조선인이고, 저는 명국 사람이지만 지 형은 협기도 넘치시고 식견도 높으시니 불초 남궁수, 지 형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 「[5] 난전의 왕」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