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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

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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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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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62g | 140*225*20mm
ISBN13 9788960901438
ISBN10 896090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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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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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실에 들어서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현명한 행동이었다. 나는 딱 보면 표정이 드러나는 얼굴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를 보기만 해도 냉기를 느끼기에 충분했을 거라는 얘기다. 악한 진영에도 있듯이 이 ‘착한 진영’에도 상황을 이용하는 자들과 개자식들이 있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 p.44

나는 진 세버그의 재정 문제에 코를 디밀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곳에 온 뒤로는 여섯 명의 협잡꾼들과 영원한 악한들이 그녀의 두 가지 죄책감, 즉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기 때문에 가장 멸시당하는 존재임에 틀림없는 영화계 스타라는 죄책감과 원죄를 신격화한 루터파 교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놀며 최대한 이용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 --- p.53

나는 녀석에게 러시아어로 말했다. 다른 누구도 우리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도록.
“내 말 잘 들어봐, 친구. 흑인을 물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어. 흑인만 물지는 말라는 거야.”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개들은 피를 나눈 형제를 알아볼 줄 안다. --- p.66

나는 ‘감정 제거’라는 현대적 흐름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감정의 인플레이션을 빌미로 감정을 평가절하하길 거부하고, 100프랑의 고통이 1프랑의 가치밖에 없다고 받아들이기를, 다시 말해 어제는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충분했던 곳에 백 명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 p.75

그녀는 스물세 살의 젊은 여자였는데,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원예학 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식인에게는 소르본대학이나 그와 맞먹는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창녀를 만나는 것보다 충격적인 일이 없기에 나는 정말이지 은총의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전채 요리로 멜론을 먹을 때 이미 우리는 문학을 얘기하고 있었고, 디저트에 이르러서는 ‘실존주의’까지 나왔다. 미국 창녀들은 20년쯤 늦었다. 우리 나라의 창녀들은 구조주의와 미셸 푸코를 얘기한다. --- p.85

미국의 성인 지성들이 자기 성기에 쏟는 이 지대한 관심에서 나는 거대한 거세를 떠올렸다. 가장 비극적이면서 안타까운 예는 헤밍웨이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스콧 피츠제럴드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있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작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워했던 모양이다. 헤밍웨이는 그의 물건을 보고 나서 그가 완벽히 정상이라고 안심시키며 의혹을 말끔히 없애주려고 친구를 루브르로 데려가 그리스 조각상의 성기 크기를 보여주었다. --- p.86

불타는 게토에서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탈취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옷을 벗겨 간 벌거숭이 마네킹을 팔에 끼고 가는 흑인 청년이 그걸로 뭘 할지 내게 이야기를 좀 해줄 수 있을까? 휴지
통을 일곱 개나 들고 가는 사람은 또 어떤가. 저기 화장지를 잔뜩 들고 걸어가는 사람은 차라리 이해하겠다. 저 사람은 적어도 제 엉덩이 닦을 일만큼은 확실히 대비했잖은가. --- p.127

애버내시 박사, 입 닥치시오. 당신은 마틴 루터 킹이 살해당하기 몇 분 전에 사용한 면도 크림의 상표까지도 말하더군요. 깜빡 잊고 면도 크림을 안 가져온 당신에게 킹 목사가 그 크림을 건네며 당신더러 사용해보라고 했다죠. 당신 마음을 알고 이해도 합니다. 그 면도 크림은 성물이 되겠죠. 성스러움의 향기를 갖게 될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성경에 더는 자리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었군요. 성경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장담하건대 하나님은 당신네 검은 약속에 오지 않을 겁니다. 그분은 이미 많은 약속을 바람맞혔습니다. --- p.178

분명히 말하지만 그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목소리가 드러내는 느닷없는 격정과 마비된 얼굴 근육은 의지에서 나온 것이고 의도적으로 야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약간의 진실성이 있다면 영원한 응석받이 아이의 진실성이었다.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서 당장 꺼지시오.”
어떤 인간이 망나니처럼 행동할 때마다 나는 내 낯을 잃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말론 브란도가 그런 식으로 ‘배수진을 친’ 블랙팬서들의 태도를 흉내 내려 했던 것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엉덩이에 발길질을 당할 위험조차 없는 이 백만장자는 이 행위로 ‘화이트팬서’는커녕 거실 양탄자에 오줌을 누는 강아지 꼴밖에 되지 못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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