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성인으로 대표되는 정상적 인간의 사고 양식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그들 밖에 있는 인간의 인습과 종교를 수집하는 것만큼 편한 게 없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매우 이질적이기 때문에 분류가 쉽지 않은 것인데, 우리 서구 문명을 비롯해 다른 문명에서 그들의 모습, 그들의 행동을 바로 인지할 수 있도록 그 이질적 요소들을 전혀 활성적이지 않은 한 덩어리로 뭉쳐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 공격적이지 않은 게 아니다. 토테미즘은 엑소시즘처럼 우선 우리 세계 바깥에 대한 생각을 투영한 것이다. 기독교적 사고의 핵심은 인간과 자연을 불연속적으로 놓는 것이다. 이 불연속성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 ‘두번째 자연’의 특성을 거꾸로 뒤집어놓을 것이 요구된다. 자기 고유의 전개 과정이 있는 ‘원시적primitif’ 혹은 ‘태곳적archa?que’ 상태를 개화해 문명화된 인간을 만들면 불연속성의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가져서 그런 것일까? ---「서문」 중에서
토테미즘이 처음부터 모든 카드 패를 다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동물 혹은 식물 조상과 그 인간 후손 간의 이행 단계를 밝히는 데 유보적인 것은 없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통행은 반드시 불연속적으로 파악된다(동시에 행해지는 같은 형태의 모든 통행). 최초 상태와 최후 상태 간의 모든 감각적 인접성을 배제하는 일종의 ‘막을 내리지 않고 하는 무대 전환’ 같다. 자연물 발생과는 거리가 먼 토템 발생은, 아니 그에 대한 환기는 적용, 투영 혹은 분리로 귀착된다. 그것은 환유 관계로, 그 분석은 ‘인류생물학ethno-biologie이라기보다 ‘인류논리학ethno-logique’에 가깝다. 말하자면 A족은 곰에서 ‘내려왔고,’ B족은 독수리에서 ‘내려왔다’고 할 때, 두 종 사이의 유사점은 A와 B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구체성을 띤 축약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토템 환상」 중에서
엘킨은 토테미즘을 변별적 두 실체로 분해한 후 너무 분리된 느낌이 들자 다시 하나의 단위체로 만들고자 했다. 모든 토테미즘 형태는 이중 기능을 한다. 하나는 자연과 인간의 연관성, 상생을 표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현재와 과거의 연속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형식은 너무나 모호하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왜 시간적 지속성을 인간 최초의 조상은 동물 외양을 가진다는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뿐더러, 사회 집단의 연대가 복수 토템의 숭배 형태 아래 필연적으로 확고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냥 토테미즘이 아니다. 그게 어떤 것이든 그것은 모든 철학, 모든 종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유명론」 중에서
인간이 어떤 상황 속에서 불안감을 느껴 주술 의식에 호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술 의식에 호소를 하니까 불안이 발생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이런 논의는 래드클리프-브라운의 토테미즘에 관한 첫번째 이론과 반대되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은 자신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물 종과 식물 종에 대해 의례 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주는 셈이다. 여기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 관심이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인 관심이라는 것이다. 토템 목록이 다양하고 기이하게 나타나는 것은 인간이 그것들에서 어떤 관심거리를 발견해서라기보다 의례 행위 때문에 도리어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닐까? ---「기능주의적 토테미즘」 중에서
이 원칙은 반대항의 결합 속에 있다. 동물과 식물 항으로 된 특별한 명명법(그리고 그게 유일한 변별적 특성이다)으로 이른바 토테미즘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상응성과 대립성을 표현한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부족에서는 하늘과 땅, 전쟁과 평화, 상류와 하류, 붉은색과 하얀색이다. 이것의 더 일반적인 모델이자 더 체계적인 적용은 중국의 음양 사상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암컷과 수컷, 낮과 밤, 여름과 겨울 등이 하나로 결합하여 조직된 전체, 그러니까 도를 낳는다. 부부라는 한 쌍, 하루 혹은 한 해 역시 그런 음양의 조합이다. 따라서 토테미즘은 일반적인 하나의 문제를 형식화하는 하나의 특별한 방법이 된다. ---「지성을 향하여」 중에서
토테미즘은 관찰자들의 해석을, 이론가들의 공론 과장하면서까지 우리의 제도를 원시인들의 제도로부터 차별화하려는 목적에서, 그 원시적 제도들에 생긴 긴장을 더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것이 특히 종교적 현상이라 더 많은 운이 따랐고, 토템과 종교를 근접시킴으로써 그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토테미즘을 종교 속에 놓은 것은 종교적인 것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위 문명화된 종교가 원시 종교와 접촉하면 녹아 없어질까 두려워 최대한 그것을 문명화된 종교와 멀리 떨어뜨리고 필요하면 풍자하고 비하했다. 뒤르켐의 경험처럼, 종교이면서 토테미즘이라는 원래의 속성이 없는 이상 그 조합은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안’으로부터의 토테미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