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들을 때, 우리는 말하는 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 지식 수준, 사회적 위치 같은 것은 물론이고 말을 하는 때와 장소, 의도, 그와 나 사이의 관계 등까지 두루 참고하여 듣는다. 그래야만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데 이롭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을 할 떄도 마찬가지이다. 그 경우에는 입장이 바뀌므로 말을 하는 쪽보다 듣는 사람 쪽에 관심이 더 쏠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 한마디로 언어 활동이 벌어지는 '상황'과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관점(觀點)'은 언제나 중요하게 고려된다.
말을 잘 하고 또 듣는 사람이란 상대방의 처지에 잘 설 줄 아는 사람이다. 글을 잘 읽는 사람 역시 필자의 상황과 관점을 옳게 파악하여 자기 것으로 삼는 데 능한 사람이다. 독자는 일단 필자의 상황과 관점을 알고 거기에 서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필자가 그런 말을 왜, 어떤 뜻으로 하였는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과 논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음성 언어 활동(입말살이)과 문자 언어 활동(글말살이)은 같지 않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음성 언어 활동은 어떤 실제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상대방의 억양·표정·몸짓 등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문자 언어 활동의 경우는 다르다. 필자와 독자는 별도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상대방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의사를 주고 받는다. 독자가 보는 것은 필자가 아니라 종이 위에 기록된 문자 언어들, 곧 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