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의 피를 지불하고도 전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어. 양쪽에서 이만한 실패작을 만들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그렇다. 방대한 헛수고다. 3백만의 피를 지불하고도 이 전쟁은 승리는커녕 최소한의 화해조차 얻어내지 못했다. 3년을 끌어온 방대한 헛수고 끝에 그들은 겨우 잠정적인 전투 중지만을 이 전쟁에서 끌어내었을 뿐이다. "앞으로가 문제군. 이 나라는 장차 어떤 모양새로 될까?" "탄약 연기가 사라졌으니 당분간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이럭저럭 살아가겠지. 허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은 잠시고 전쟁이 남긴 상처는 꽤 오랫동안 우리들을 괴롭힐 거야. 문제는 우리가 이 고통을 어떻게 우리 것으로 수납하는가 하는 걸세." "주어진 것이니 수납이야 하겠지. 동의할 수 없는 고통이라 소화하기가 힘들 뿐이지." "우린 운전 부주의로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진 버스의 승객들일세. 팔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깨진 채 우린 지금 병원에 실려와 신음들을 토해내고 있어. 운전사가 잘못한 것은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 운전사를 탓해본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운전사를 힐난하고 욕해봤자 우리들의 부러진 다리가 원래대로 복구되는 건 아니잖나?"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니 고통의 원인은 규명해야지. 우리가 왜 타인의 실수로 고통을 받고 체념해야 되나?" "그건 체념과는 성질이 달라. 내 말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더 실제적인 대응 태돈가 하는 거야. 다리를 분지른 건 운전사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 자신일세. 그리고 우린 지금 운전사를 욕하기보다 상처의 치료가 몇 배나 더 절실하고 시급해. 상처는 그대로 방치해둔 채 언제까지 운전사의 잘못만 따질 건가?" "만일 자네 같은 논리라면 우리는 언젠가 또 한번 벼랑 밑으로 내던져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럴지도 모르지.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그런 위험은 얼마든지 다시 오네. 허지만 지금 당장은 사고의 수습이 무엇보다 우선이야. 내 팔이 부러져서 내가 아프다면 그 사고는 바로 내가 당한 사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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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만의 피를 지불하고도 전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어. 양쪽에서 이만한 실패작을 만들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그렇다. 방대한 헛수고다. 3백만의 피를 지불하고도 이 전쟁은 승리는커녕 최소한의 화해조차 얻어내지 못했다. 3년을 끌어온 방대한 헛수고 끝에 그들은 겨우 잠정적인 전투 중지만을 이 전쟁에서 끌어내었을 뿐이다. "앞으로가 문제군. 이 나라는 장차 어떤 모양새로 될까?" "탄약 연기가 사라졌으니 당분간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이럭저럭 살아가겠지. 허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은 잠시고 전쟁이 남긴 상처는 꽤 오랫동안 우리들을 괴롭힐 거야. 문제는 우리가 이 고통을 어떻게 우리 것으로 수납하는가 하는 걸세." "주어진 것이니 수납이야 하겠지. 동의할 수 없는 고통이라 소화하기가 힘들 뿐이지." "우린 운전 부주의로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진 버스의 승객들일세. 팔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깨진 채 우린 지금 병원에 실려와 신음들을 토해내고 있어. 운전사가 잘못한 것은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 운전사를 탓해본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운전사를 힐난하고 욕해봤자 우리들의 부러진 다리가 원래대로 복구되는 건 아니잖나?"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니 고통의 원인은 규명해야지. 우리가 왜 타인의 실수로 고통을 받고 체념해야 되나?" "그건 체념과는 성질이 달라. 내 말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더 실제적인 대응 태돈가 하는 거야. 다리를 분지른 건 운전사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 자신일세. 그리고 우린 지금 운전사를 욕하기보다 상처의 치료가 몇 배나 더 절실하고 시급해. 상처는 그대로 방치해둔 채 언제까지 운전사의 잘못만 따질 건가?" "만일 자네 같은 논리라면 우리는 언젠가 또 한번 벼랑 밑으로 내던져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럴지도 모르지.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그런 위험은 얼마든지 다시 오네. 허지만 지금 당장은 사고의 수습이 무엇보다 우선이야. 내 팔이 부러져서 내가 아프다면 그 사고는 바로 내가 당한 사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