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어서 그것은 인간 욕망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아니다, 그것은 인간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천의 얼굴을 한 인간의 욕망 그 자체이다. 지배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언어를 지배하고 소유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언어는 언제나 욕망하는 구조와 체계로 바뀐다. 그러나 나는 참 ‘나’와 있고 싶다. 지배와 소유라는 이 욕망의 통일천하에서 숨이 막힌다. 그래서 나는 ‘나’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내 욕망의 구조(관념)와 체계(은유)를 비운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했었더라면 어찌 내가 이렇게 했겠는가? 더구나 내가 시인인데, 어찌 그리하겠는가?
--- p.87~88
시와 이미지: 나는 시에게 구원이나 해탈을 요구하지 않았다. 진리나 사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시에게 요구한 것은 인간이 만든 그와 같은 모든 관념의 허구에게 벗어난 세계였다. 궁극적으로 한없이 투명할 수밖에 없을 그 세계는, 물론, 언어 예술에서는 시의 언어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가능성의 우주이다. 그러므로, 내가 시에게 절박하게 요구한 것도 인간이 문화라는 명목으로 덧칠해놓은 지배적 관념이나 허구를 벗기고, 세계의 실체인 ‘頭頭物物’의 말(현상적 사실)을 날것, 즉 ‘날〔生〕이미지’ 그대로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구조와 형식: ‘두두’며 ‘물물’은 관념으로 살거나 종속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도 전체와 부분 또는 상하의 수직 구조로 되어 있지는 않다. 세계는 개체와 집합 또는 상호 수평적 연관 관계의 구조라고 말해야 한다. 숲에 있는 한그루 나무를 보라. 그 나무는 숲의 부분이거나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리며 실체인 완전한 개체이다. 시의 세계 또는 작품과 작품의 세계도 그러하며, 그러므로 그것들은 현상적 사실과 상호 연관 관계의 언어인 ‘개방적 구조’로써 말을 하기도 한다. 나의 시 또한 그러한 개방적 이미지와 구조이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