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순환하는 넋이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 오직 물을 가지고 있는 별은 지구뿐이다. 지구를 보듬고 도는 달(月)은 지구의 물과 더불어 밀고 당기는 곡진한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이 바다의 밀물과 썰물로 표현된다.
바다는 증기를 뿜고, 증기는 구름이 되어 떠돌다가 대지와 산에 비를 뿌리고, 비는 지표면을 흐르거나 지하수가 되었다가, 샘으로 흘러나와 강으로 들어간다. 강은 어머니인 바다〔母海〕로 흘러든다.
내 몸속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다. 그 물은 바다의 물과, 강의 물과, 꽃과 나무와 새와 짐승들의 몸에 들어 있는 물과 같은 것이다. 달과 지구의 밀고 당기는 곡진한 사랑으로 인해 바다에 썰물이 질 때 내 몸에도 썰물이 지고, 바다에 밀물이 질 때 내 몸에도 밀물이 진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꽃은 여신의 순환하는 넋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역마살을 가지고 있어서, 시인의 열정으로 배낭을 짊어지거나, 자동차를 몰고 가슴 두근대며, 여신을 만나러 길을 나서곤 한다.
강의 목소리는 여신의 목소리이고, 여신의 목소리는 물의 목소리이다.
---'강 앞에 서면 사람과 역사도 하나하나의 풍경이 된다'
밤골 앞을 지나면서 고 시인은 밤골에서 전우치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전우치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조선 중기의 기인이고 환술가(幻術家)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고 강릉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그는 밥을 뿜어 나비를 만들어 날리고, 하늘에서 천도복숭아를 따오는 등의 여러 가지 기행을 하였다고 책에 전한다. 옥에 갇혀 죽자 그를 땅에 묻었는데, 나중에 이장하려고 파보니 시체가 없어졌다. 조선조 사회를 풍자하는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다. 백성을 괴롭히는 임금과 권세 있는 벼슬아치를 도술로 혼내 주고, 가난하고 박해 받는 자들을 돕는 ‘홍길동’ 같은 멋진 영웅의 이야기인 [전우치전]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용추산 가마골에서 담양읍의 관방제까지'
금성산 자락의 하나인 병풍산 기슭 아래에 있는 노안성당을 뒤로 하면서, 나라에서 금한 천주학을 믿었다는 이유로, 정조 임금이 세상을 뜨자마자 정적인 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배 길에 오른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를 떠올렸다.
천주교 신도들(이승훈, 이가환, 정약종)이 효수를 당하자, 정약전·정약종·정약용의 조카사위인 황사영은 중국의 신부에게 탄원서를 보내려다가 사전에 들통이 나서 능지처참을 당했다. 그 탄원서, 황사영의 백서 사건으로 인해 정적들은 정약전, 정약용 형제를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시켰다. …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절름거리며 나주까지 왔다. 율정점에서 하룻밤(1801년 11월 22일)을 자고 이튿날 헤어져, 형 정약전은 금강진(지금의 나주시청 앞 강변의 포구)에서 흑산도로 가는 배를 타고, 동생 정약용은 강진으로 갔다.
율정점은 나주시 동신대학교 정문에서 삼도면 방향으로 조금 가면 있는 밤남정이라는 마을인데, 지금의 나주시 대호동 지역이다. 정약용은 [율정 이별]이라는 시를 남겨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려오게 한다.
---'승촌보에서 나주까지'
나주에는 ‘샛골나이’가 있다. 예로부터 길쌈이 유명했다. 나주 세목(가는 실로 짠 고운 베)은 영산강 하류 일대에서 나는 고운 무명베를 말한다. ‘샛골나이’는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에 붙여진 이름으로, 샛골의 베 짜는 여자〔織女〕, 또는 무명 짜는 일에 대한 통칭이다. … 그 직녀의 넋이 나주의 샛골나이에 스며 있다.
나주는 볕이 잘 들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목화 재배지로 적합했다. 샛골의 무명베는 다른 지역의 무명베보다 훨씬 고운 ‘보름새’까지 생산한다.
‘보름새’란 무엇인가. 무명베는 날실 사십 올을 ‘한 새베’, 사백 올을 ‘열새베’, 칠백 올을 ‘보름새 베’라고 한다. 보름새 베는 비단보다 더 가늘고 고와서, 바지저고리 같은 평상복이 아닌 두루마기 겉감으로만 쓰일 만큼 고가품이었다. 예전에는 개성, 진주 등지가 세목의 생산지였으나 오늘날은 나주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구진포에서 몽탄까지'
점심때가 되었다. 이곳의 음식은 낙지탕과 짱둥이탕이 대표적인 것이다. 독천의 낙지골목에 가서 낙지탕을 먹을 것인가, 삼호읍에서 짱둥이탕을 먹을 것인가 고민했다.
“영산강 하구 둑이 막힌 다음 영암에는 이제 바다가 없어졌는데 독천에 웬 낙지골목이 있어요?”
나의 물음에 안내를 맡은 문화 해설사는 이제 무안산 낙지를 가져다 쓴다고 한다. 짱둥이탕을 먹기로 했다.
짱뚱이는 망둑어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정약전의 [현산어보(玆山魚譜)]에는 그 고기의 눈이 튀어나온 모양을 두고 철목어(凸目魚)라고 했다. 다 큰 것의 몸길이는 ? 18㎝쯤이고, 몸은 가늘고 길며 뒤로 갈수록 점차 납작해진다. 몸 색깔은 검푸른 색이고 배는 더 연하다. 남녀의 정력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식당에 손님들이 북적거린다. 얼큰한 짱퉁(뚱)이 탕에 흰 밥을 말아서 먹는다. 배가 고파서인지, 맛깔스럽게 잘 끓인 것이어서인지 맛이 좋다.
---'영암 구림의 상대포에서 무안의 멍수바위까지'
2만 5,000분의 1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영산강 줄기는 겨울철의 나목이 된 거대한 노거수의 모양새와 같다. 목포 앞바다에 뿌리를 박은 영산강이라는 노거수는 굵은 줄기 끝에 자잘한 가지를 전라남도 서남 서북권의 무안, 함평, 영암, 나주, 장성, 화순, 광주, 담양을 향해 뻗고 있다.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를 가르는 ‘목’에 위치해 있는 목포는 밖에 두르고 있는 신안의 무수한 섬들과 해남의 끝자락이 외해의 거친 파도를 막아 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항구이다.
영산강물은 목포 앞바다 속에 들어가지만, 나는 영산강물이라는 자긍심을 버리지 않고 세계 각처의 바다 속으로 출렁거리며 흘러 뻗어갈 것이다.
---'영산강과 몸을 섞는 목포 앞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