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비롯하여 최근의 언어 교육 이론에서 소개되고 있는 다양한 교수 방식이 적용되고 있음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어 교육이 그만큼 발전해 왔음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한국어 교육의 현실에서는 어떤 특정한 이론이나 방법만이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고 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열린 읽기(extensive reading)도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적 접근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읽기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해 처리 과정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읽기에서는 어휘와 구조와 같은 언어 지식뿐만 아니라 독자의 배경 지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읽기는 선택적인 이해 활동으로, 독자가 읽는 목적에 따라 적절한 자료를 선택하여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외국어 교육에서 읽기는 여러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열린 읽기는 학습자의 동기와 관심을 자극하여, 다양한 입력 자료를 내용의 이해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빠르고 유창하게 읽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열린 읽기에서는 학습자가 스스로 자료를 선택하여 읽기 활동을 함으로써 학습자의 자발적 참여가 강조된다.
열린 읽기는 ‘extensive reading’을 한국어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이미 이에 대해서는 ‘다독(多讀)’이라는 용어로 소개된 바도 있고, ’intensive reading'을 ‘집중형 읽기’라 하고 그에 대응하여 ‘확장형 읽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는 ‘열린 읽기’로 지칭하였는데, 그것은 수요자 중심을 표방하는 열린 교육의 특징을 빌려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학습자 중심의 열린 교육 활동이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열린 읽기가 학습자의 자율적 참여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의 열린 읽기에 대한 관심은 2007년에 미국의 시애틀에 있는 University of Washington에 방문교수로 갔을 때 그곳 지역 사회에서 시행하는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곳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 중에는 당시 한국에서 시행되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과 달리 읽기 자료의 선정과 읽기 활동에서 학습자들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학과 지역 사회의 도서관에는 ESL 학습자를 위한 읽기 자료가 주제와 등급에 따라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것들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를 계기로 그러한 읽기 활동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이며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관련 문헌들을 찾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앞선 연구들을 통해 이 연구의 바탕이 되는 정보들을 얻게 되었다.
열린 읽기를 실제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바탕도 필요하지만, 읽기 자료를 구입하고 그것을 관리해야 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개인적인 관심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일이었데, 마침 2010년도에 한국어 교육에 열린 읽기를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한국연구재단에 신청하여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여기서는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열린 읽기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개발하여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였다. 그리하여 열린 읽기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열린 읽기를 위한 읽기 자료를 선정하여 구입하였으며, 실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한국어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이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보완된 형식의 열린 읽기 프로그램의 모형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일련의 연구 과정에서 이룬 결과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는 읽기 자료를 선정하고 등급을 구분하는 문제에서,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읽기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활동의 다양성에서, 그리고 시행 결과를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부분의 적절성에서 문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필자의 읽기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아직은 한국어 교육의 현실이 현장 연구를 시행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한국어 교육에서 열린 읽기가 그리 활발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연구 결과는 앞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확대되는 데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