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쪽에서 인도 동쪽 지역을 동남아시아라고 부르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그 범위는 현재의 국명으로 하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타이, 미얀마,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티모르?레스테로, 크게 대륙부와 도서부로도 구분한다.
대륙부의 운남, 티베트 고원을 수원으로 하는 메콩, 짜오프라야, 사루위엔, 에야와디 등의 대하가 상류의 산지와 하류의 연안과의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대륙의 연안부와 도서부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 동남아시아 선사시대의 사람과 문화의 이동은 이러한 강을 따라 내륙부에서 반도부를 경유하여 도서부로 확산한다. 기후는 열대다우림 지대에 속하고 민족적으로도 다양하다. 동남아시아 문화는 인도나 동아시아의 문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남아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제국의 정치와 경제 분야를 제외하면, 동남아시아 각지의 역사나 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현재 동남아시아 역사 연구는 세계사 안에서도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세계 각국의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가 동남아시아에서 경쟁적으로 유적 조사와 복원에 참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관련하는 일본어와 영어의 전문서가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앙코르?와트이나 보로부두르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동남아시아 각지의 사원과 미술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생각하는데 중요한 개념의 하나가 ‘인도화’(Indonization)이다. 서기 4~5세기경 이후부터 인도네시아에 인도문화가 서서히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인도네시아에 힌두교가 전파한 것은 인도문화의 전체적인 확장에 의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신학 교리, 신화 체계, 산스크리트어, 사회와 정치 조직 등과 함께 힌두교와 불교가 전파한다. 중국의 사서에 자바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도 5세기 이후이다. 414년 중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야파제국(자바)에 들렸던 법현의 기록이 자바에 관한 가장 오랜 문헌이다.
그러나 자바에서 인도 기원의 종교를 위한 조형 활동이 명확해지는 것은 6~7세기
이후로 어느 지역에서든 지배층의 열렬한 비호 아래서 활발하게 사원과 신상들이 만들어졌다. 현재 대 순다열도에서는 주로 이슬람교가 신봉되고 있지만, 고대의 자바 사원과 조상 유품에는 대승불교와 힌두교가 우세하여 공존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 자바 섬 및 발리 섬에는 많은 불교 및 힌두교의 고대 사원과 유적이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의 불교 전래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초기에 전해진 불교는 대승불교였다. 또한, 인도네시아에 전래 된 초기의 불교는 힌두교와의 융합(syncretism)이 현저하여, 사원과 종교 미술에는 이 2 종교를 이교로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힌두교와 불교 사원 대부분이 물론 예외는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같은 형태이다.
예를 들어 중부 자바에 남아 있는 고대 사원 건축을 일반적으로 힌두교 사원과 불교사원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교와 힌두교라는 종교에 의한 분류법으로 양자의 건축은 매우 유사하다. 물론 자바 섬에서도 기반을 달리하는 힌두교와 불교의 ‘신상?불상’은 다르지만, 사원의 건축 차이는 거의 없고,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보로부두르는 인도 전래의 불교와 힌두교의 조형 건축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건축 공간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사원과 조각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 중부 자바이다. 중부 자바는 8세기부터 10세기 전반까지 인도네시아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후 이슬람 문화가 우세하는 16세기 전반까지 동부 자바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10세기 중반 이후 잦은 화산 폭발과 질병 때문에 왕조가 중부 자바에서 동부 자바로 이동
한다.
인도네시아의 고전 미술은 서부 자바기(8세기), 중부 자바기(8세기~10세기), 동부 자바기(10세기~16세기)의 3기로 구분된다. 인도네시아 혹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이슬람 이전의 종교 건축을 ‘찬디’(Candi)로 총칭하고 있다. 불교와 힌두교 사원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 건축물을 찬디라고 부른다. 찬디에는 ‘스투파(불탑)형’, ‘사당형’, ‘숭방형’, ‘욕장형’, ‘영묘형’의 찬디가 있다. 또 각각의 종교 건축을 찬디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이들 건축의 복합체인 가람 전체도 ‘찬디’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이 역사적으로 인도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종교 미술은 그 경향이 현저하다. 그러나 자바의 미술은 인도 미술의 일부나 그 아류가 아닌 독자적인 문화이다. 예를 들면 보로부두르 유적은 인도에서는 볼 수 없는 자바의 독자적이고, 또한, 조각도 인도의 관능성을 배제한 자바 특유의 온화하며 청초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는 일본, 미국, 유럽에서도 인도나 중국과 관련해서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도 인도네시아 미술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는 극히 소수로 인도나 중국의 전문가들이 주로 자바 미술사를 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인도나 중국과는 다른 동남아시아 문화의 독자성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G.세데스의 ‘동남아시아 고대 국가가 인도문화를 조직적으로 수용하여 성립했다’는 ‘인도화’(Indianization)라는 주장은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일반적으로 동남아시아 문화(사원과 조상을 포함)는 인도 종교의 영향에 의해서 성립된 것으로 생각해 왔다. 최근까지의 동남아시아 연구는 이 지역 문화가 타율적으로 형성했다고 보는 관점이 주류였다. 일제식민지시대 우리의 모든 문화가 중국 영향에 의해서 성립했다는 일부 일본인 학자의 주장과 같이 동남아시아의 ‘인도화’라는 G.세데스의 개념은 인정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일본인들이 식민지시대에 자행해왔던 문화재 약탈과 문화재 보호법 위반 등의 범법 행위를 동남아시아에서 흉내 내서는 안 된다.
동남아시아의 문화는 기층문화(동손 문화, 수전관개농업)를 기반으로 하여 인도문화 가운데 자신들의 문화에 적합한 요소만을 선택해서 채용했다는 ‘자주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선택?변용?융합의 과정을 인도문화의 ‘지역화’(동남아시아화)라고 부른다. 즉 선택해서 수용한 문화가 어떠한 과정에서 어떻게 동남아시아적으로 변용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동남아시아 문화의 특성을 밝히는데 유효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이다. 우리는 자바의 사원과 조상이 단순한 인도의 영향에 의해서 성립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를 인도네시아의 유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본서는 슈지츠대학 연구비에 의한 인도네시아 현지조사 성과의 일부이고, 인도네시아의 모든 사원과 유적은 국립인도네시아고고학연구소의 허락 아래 조사했음을 명기한다. 흑백 사진은 오가와 세이요(1894~1960년)가 1943년에 촬영한 것으로, 본서에 사진 게재를 허락해 준 아스카엔의 오가와 고타로님께 깊은 사의를 표한다.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