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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기와의 만신

푸른 기와의 만신

이윤미 | 가하 | 2019년 07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6 리뷰 11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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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670g | 148*200*26mm
ISBN13 9791130038407
ISBN10 113003840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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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연.”

상황이 일단락되자 그제야 우진은 무연을 나직이 불렀다. 그와 눈을 맞춘 여자는 임무연이 맞으면서 아니기도 했다. 무연을 빤히 내려다보던 우진은 설명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꼈다. 무연의 검은 동공에 섬뜩한 푸른빛이 이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넌? 임무연 맞아?”

무연은 입꼬리를 스산하게 휘며 마치 찌를 것 같은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이놈 보게나? 클클클, 그러는 너는 누구냐?”

무연이 묻는다. 아니, 무연이 아닌 것이 묻는다. 문득 그의 뇌리를 ‘신’이라는 단어가 때리고 스쳐갔다.

“씨는 있는데 본데가 없구나. 사람의 인연이란 인연, 실이란 실은 모두 끊고 보는 어리석은 것이구나. 쯧쯧쯧.”

우진은 무연이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누구냐고. 임무연은 어디 있어.”
“클클클, 웃긴 놈일세.”

그것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임무연이 아니면 꺼져라.”

그가 뇌까리자 그것이 박장대소했다. 클클거리며 한참을 웃어대던 것이 문득 웃음을 지우고 그를 향해 까치발로 뛰어 가까이 다가왔다.

“네 아비는 걸물이로구나!”

우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놈도 뜻만 먹는다면 네 아비보다 더할 수 있을 텐데, 생겨먹은 만큼이나 제멋대로구나. 너 같은 놈은 골치지.”
“정신 차려, 임무연.”

우진은 무연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러나 무연이 아닌 사특한 눈초리를 한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아비, 그것이 너를 말아먹고 이 아이를 말아먹겠구나. 쯧쯧쯧쯧, 네 아비는 사람이더냐?”
“……꺼지라고.”

우진은 낮게 이를 사리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색스런 미소를 짓곤 그의 손에서 어렵지 않게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남자 앞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네놈 참 마음에 드는구나? 저놈은 고집이 영 쇠심줄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데 말이다.”

지나가다 갑자기 팔을 잡힌 남자가 당황하며 무연을 보았다. 그러나 평균치를 웃도는 예쁘장한 외모에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무연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저렇게 능숙하게 남자에게 달라붙을 재주도 못 된다, 그 여자는.

기분을 잡쳤다. 남자의 팔을 잡고 배시시 웃는 모습이 희한할 정도로 불쾌하게 다가왔다. 정말 저 안에 든 게 그 ‘신’이라는 것이라면 어떻게 돌려놓아야 하나.

우진은 자꾸만 몸을 남자에게 밀착하는 무연을 잡아 자신에게 당기곤 남자를 험상궂게 보았다.

“이 여자 미쳤습니다. 그러니까 가던 길 가십시오.”

눈치는 있는 놈인지 어리둥절해하던 남자가 이내 몸을 돌렸다. 우진은 짜증이 났다. 그는 아랑곳 않는 무연의 태도에 진심으로 성질이 났다.

“임무연 데려다 놔, 너.”

검푸른 눈동자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듯이 짓궂게 반짝인다.

“클클클, 이 애가 정신이 나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러는 거냐? 이 아이가 좋으니?”
“웃기고 있네. 꺼지라고.”
“이 아이가 좋은 게로구나? 이 몸뚱이가 여자로 보이는 게지?”

그것이 웃으며 또다시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해서 그는 무연의 손목을 더 세게 쥐었다. 손자국이 남을 만큼 강한 힘이었는데도 무연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가 없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가슴 언저리가 불안하게 타들어갔다.

“내가 어떻게 하면 꺼질래?”
“이 아이에게 관여하지 말아라. 이 아이에게서 멀리 떨어져라. 네가 모든 이유가 될 것이니.”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째야 꺼질래? 난 신 같은 거 안 믿거든. 그러니까 네가 뭐라고 지껄이든 안 들어.”

헛소리를 들어줄 인내심은 더는 없었다. 우진은 무연의 얼굴 위로 자신의 얼굴을 내렸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

“알아서 꺼질 거 아니면 실력행사 들어간다. 경고했다.”

우진은 그대로 무연의 얼굴을 쥐고 동그랗게 솟은 코를 왈칵 깨물었다. 봐주는 것 따윈 없었다. 잇자국이 나지 않을까 싶게 세게 문 채, 무연의 눈을 직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 깊은 곳에 일렁이던 푸른빛이 꺼져버리면서 무연의 몸이 축 늘어졌다. 우진은 그런 무연을 지탱하곤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

찬물을 쏟는다든가, 뺨을 때린다든가 충격요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그는 그를 모른 척하는 여자가 짜증이 나 콱 깨물어버렸다.

“……이게, 네가 사는 세상이냐.”

우진은 무연의 등을 끌어안아 체온을, 숨을 확인했다. 살아 있다. 어디 안 가고 여기 있다.

“한 번만 더 정신줄 놓고 도망가봐라.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하나. 근데, 너 거기 있긴 하냐……?”

미동이 없다. 우진은 한동안 무연의 몸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그들만 그렇게 멈춰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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