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요오꼬의 고독과 황홀을, 그는 짧은 시간에 제대로 느낀 것 같았다.
……요오꼬는 길을 따라오다 갑자기 다른 느낌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멈춰서면 주변의 공기가 맑아져 그녀를 둘러싼 사물의 하나하나가, 주변에서 움직이는 인간들의 표정과 몸짓의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선명해지기 시작하여 부자연스러울 만큼 선명해지고, 흡사 깊은 뿌리에서 끊임없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처럼 끊임없이 새롭게 날카로워져 그녀의 감각을 매혹한다. --- p.84
“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는 입술을 댄 채로 속삭였다.
“이대로는 역시 생활할 수 없어.” 요오꼬는 언니와 똑같은 말을 했다.
“해나갈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이 방에 이렇게 틀어박혀 있으면 그렇지.”
“거리를 걸어다닐 때에도 이 방과 똑같은 어둠을 네 주변에 마련해줄게.” --- p.144
“억지로 헤치고 들어가려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두려는 것도 아니고, 너의 병을 꼭 끌어안으려는 것도 아니고, 너를 병으로부터 끄집어내려는 것도 아니야…… 나 자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중간한 면이 있거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마주 보고 함께 먹으며 있을 수 있는 거야. 난 지금 네 앞에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 --- p.154
땅에 서 있는 모든 것의 한쪽 면이 붉게 타고, 짙은 그림자가 똑같은 방향으로 끈끈하게 흐르며 자연스러움과 괴이함의 경계에서 아주 조용해졌다.
“아아, 아름다워. 지금이 내 정점 같아.” --- p.155
온몸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왠지 혼이, 그보다는 몸의 느낌이 몸에서 퍼져나와 뜰에 가득 차 고통스러워지더니, 쑥 하고 오그라들어 몸속으로 되돌아온다. 밖의 소리를 감싸고 쑥 하고 짙게 되어 들어온다. (…) 몸 전체가 미세하게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무릎을 가만히 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다시 퍼져나오기 시작한다…… --- pp.214~15
거실의 전등은 꺼져 있고 어둠속에 두장의 이불이 정연히 깔려 있다. 그 가운데 남자들의 음란한 노래가 무겁게 들어차 있었다. (…) 그의 감각도 자연히 안으로 갇혀 밖으로 퍼져나갈 힘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인지, 순간적으로 그는 그러한 목소리가 나오는 곳을 종잡을 수 없었다. 주인이 없는 침실에 수많은 목소리만이 짙게 들어차 있었다.
--- pp.221~22
초기 작품부터 시종일관 집요하고 꼼꼼하게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를 심층적으로 접근하여 다양한 가치가 전도하고 상호침투하는 애매한 양상을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낸 후루이 요시끼찌는 197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
―정병호(고려대 일문과 교수)
후루이 요시끼찌는 생(生)의, 성(性)의, 성(聖)의 자의성을 문체의 자의성으로 직조하며 살아가고 있는 작가다. 고로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고 지금이야말로 읽혀야 할 작가며, 나아가 여전히 앞으로 도래해야 할 작가다. 내 생각에 일본어권에서 그와 비견되는 소설가는 오오에 켄자부로오뿐이다. (…) 사랑스러운 들뢰즈=가따리는 일본어를 못 읽기 때문에 후루이 요시끼찌를 모른다. 불쌍한 들뢰즈. 불쌍한 가따리. ―사사끼 아따루(철학자·비평가)
후루이 요시끼찌는 일반 독자들이 존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소설가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소설가로서, 항상 최신작이 기대되고 주목을 받는 존재이다.
히라노 케이이찌로오(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