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을 성(性)이라 이르고, 솔성을 도(道)라 이르고, 수도를 교(敎)라 이른다.”(天천命명謂위性성率솔性성之지謂위道도修수道도之지謂위敎교([제1장 1절]. 먼저 “천명을 성이라 이른다”라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天)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을 창조한 주재자다. 명(命)이란 목숨이나 운명 같은 것을 말할 때도 있고, 명령과 같은 의미도 갖고있다. 따라서 명은 이러한 세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천의 명령에 따라 사람의 본질적인 성품이 이루어지고, 생명이 탄생했으며, 일정한 주기와 순환을 이루고 살아가는 운명까지도 정해진다는 것이다.
《논어(論語)》 〈요왈(堯曰)〉 편에서 공자는 “명(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천이 우리에게 내린 명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천이 우리에게 내린 명이 바로 성(性)이다. 천은 변하지 않는 원리에 의해서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 생명들은 특성까지 천을 닮는다. 이와 같은 원리가 그대로 인간에게 전달된 것이 바로 성이다.
--- p.25-26
인간관계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중이 유지되어야만 평화가 찾아온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의견이 중을 이루지 못하면 극한 대립을 이루어 투쟁과 폭력으로 변하게 된다. 중은 한쪽으로 편벽되거나 치우치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람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한편 용(庸)이란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중을 잡아 변하지 않게 일상에서 유지하는 것이 용이다. 따라서 중용이란 ‘원래 인간에게 천도의 섭리에 따른 중이 있는데, 그 중이 제자리를 잡도록 일상생활에서 항상 성실하게 중화(中和)를 유지하고자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 p.50-51
유학적 인격체를 완성한 사람이란 다음과 같다.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인의예지로 대변되는 성(性)을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 등을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을 성에 맞추어 중화를 이루기 위한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러한 도를 행하면서 자신이 깨우친 내용을 사회에 전파하고, 이것을 후대에 전하는 임무도 맡은 학문적?도덕적 인격체이다. 《중용》에서 군자라는 지칭이 나오면 군자는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고 질서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했던 인격자임을 이해하고, 군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중용》을 우리 일상생활에 접목할 수 있다.
--- p.67-68
“화이불류하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중립하여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다 꿋꿋함이여”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앞에서 ‘화(和)는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성(性)에 맞춰 그 시점과 그 위치에서 천도의 중(中)에 가장 근접하게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에 맞춘다는 것은 한 집단만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중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 흐르는 류(流)일 뿐이다. 한 집단을 넘어서 전 사회에서 상생하는 질서가 유지되도록 중용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화인 것이다. 따라서 한 집단만을 위한 화합은 화가 아니라 동(同)일 뿐이다.
그래서 《논어》 〈자로 제23장〉에서는 “군자는 화(和)하고 동(同)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하고 화하지 않는다”라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했다. 화이불류는 화합하지만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화이부동은 화합을 하지만 정의로움과 상관없는 일에 무조건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개인과 조직과 사회와 국가, 인류 등 모든 상황에 맞추어 중절해 전 사회의 상생을 위해 성에 맞추어 나가는 것을 중립이라고 한다. 이러한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강함을 위한 중도이며, 선한 것이다.
--- p.102
공자 시대에 위령공(衛靈公)이라는 잔인하고 흉포한 제후가 있었다. 공자가 이것에 대해 말하자, 강자(康子)가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하여 그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중숙어(仲叔?)란 인물이 외교를 맡고 있고, 축타(祝駝)가 종묘를 다스리며, 왕손고(王孫賈)가 군대를 담당하고 있으니 어찌 망하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왕권 시대에는 도가 없어도 훌륭한 인물이 보좌하면 희망이 있었다. 현재 곳곳에 퍼져 있는 무도한 관습과 관행들을 특별한 인재에 의해 고쳐나갈 수 있지만, 한편으로 사회의 시스템에 의거해 고쳐 나가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이 있고, 올바른 인성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부와 명예를 소유하는 것은 당연한도다. 왕권이 아닌 선거에 의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사회에서 명예를 얻는 것은 당연한 도다. 단지 남을 속이고, 짓밟고, 자신의 능력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이것은 대다수 시민이 감시해야 할 일이다. 부귀는 과거와 현재 어느 시기에나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반드시 추구해야 되는 필연적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19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