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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마리의 양들이 구름으로 몰려온다면

천 마리의 양들이 구름으로 몰려온다면

파란시선-0036이동
박춘희 | 파란 | 2019년 06월 2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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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6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21쪽 | 192g | 128*208*20mm
ISBN13 9791187756422
ISBN10 118775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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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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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염소가 울 때, 뒤따라 우는 염소들과 울까 말까 망설이는 염소들 사이 나뭇잎의 수다. 그 소리를 듣는 나와 울음을 털어 내는 달팽이 두 관 사이, 탄소동화작용을 하는 잎과 잎 사이의 맥락으로 이어진 울음들은 내 붉은 혓바닥, 가시가 돋친 지느러미 엉겅퀴, 나는 그 결과이다. 내 앞에서 울음의 효과처럼 찍히는 발자국 또렷이 돋아나는 저녁이다.
백양나무 잎이 먹물로 번지는 어둠을 제 이마에 찍어 바르고 천천히 사라진다.
이곳저곳 패인 둠벙으로 검은 짐승 절뚝이며 건너갈 때, 어둠의 경계에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염소와 나무들. 그 사이 나는 펄럭이는 울음 몇 장으로 서 있다. ***
--- 「사이」 중에서

개의 주검을 수습하고
그 손으로

우걱우걱, 사과를 물어뜯을 때
그것은 낯선 공포를 삼키는
식욕의 감정

야음을 틈타 매장을 하고
산을 내려갈 동안
줄기차게 따라오던 개 비린내

죽은 개의 냄새는 개의 나머지

빗줄기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삽날이 들어가지 않던 어둠

헛손질에 엉겨 휘청거리는 손도
삽자루의 당황도

모두 감정의 저항선

숨이 멎을 것 같은 칠흑의 밤도
젖고 젖어
굴참나무 잎눈 못 뜨는

개흙의 밤. ***
--- 「감정의 바깥 1」 중에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생의 바깥

마른 다리를 핥던 고양이 울음
시장기로 풀이 죽는데
날은 저물고

이삿짐을 싸다 말고
꽃을 캔다.

파산을 하고 소식 끊은 딸이 하마나 올까
삽짝이 기울도록 기다리시던 어머니 곁에
토종 국화꽃

흙을 거머쥔 잔발을 떼어 놓는데
반쯤 뭉개진 햇빛들
손 하나 더 얹어 간다.

붉어지다 붉어지다 입술이 터진 꽃
마침내 검붉은 잇몸으로 물크러질 때까지
우리는 비바람을 맞으며 그 저녁을 건너왔다.

옴팡한 꽃자리를 들출 때마다 축축하게 돌아눕던 가족들
시큰거리는 무릎을 세워 빈 젖을 물리고
여기까지 왔다.

열렬한 맘도 없이 꽃 몸살 앓던 그 밤
꼬약 한입 베어 물고 나 함께 물크러졌던가?

시큼한 저녁의 바깥 ***
--- 「저녁의 이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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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희 시인은 교실에서 만났다. 그때 나는 참 건방진 선생이었던 듯하다. 사이비 지혜를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사이비 문학을 고구마 넝쿨처럼 감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 보기 싫고 속상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박춘희 시인은 교실 한켠에서 “펄럭이는 울음 몇 장”(「사이」)처럼 앉아 있던 학생이었다.
그때 나는 박춘희 시인이 이미 등단한 시인이고 언어의 미각을 아니 언어 같은 바람의 미각을 벼르고 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더 나중에 박춘희 시인이 색의 미각을 환하게 밝혀내는 화가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시절, 부끄러워하는 것이 ‘죄’지! 그런 니체의 말을 새삼 깨닫게 해 줬던 사람이 바로 박춘희 시인이었다. 박춘희 시인이 더없이 고상한 영혼을 가진 시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언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알고 있다. 박춘희 시인은 입때까지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겨냥해서 칼도 말도 휘둘러 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박춘희 시인은 여전히 “꽃의 이데아”(「꽃의 이데아」)를 전송하려는지 늘 무엇인가를 ‘동경’하는 자세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 박춘희 시인의 몸을 통해 더 숱한 “날개의 은유”(「명태 보살」)들이 돋아날 것임을 확신한다. 축하드리며, 단단히 부탁한다. ‘타도하시오. 저 선하다는 시를!’
- 김찬기 (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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