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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모:든시 시인선-00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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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50쪽 | 130*210*20mm
ISBN13 9791196117450
ISBN10 119611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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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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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입질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보내는 연서가 속속 배달 중이다
온몸이 간지럽다
배롱나무 붉은 글씨는 화사체라고 하자
작살나무가 왜 작살났는지
내야수는 내야에만 있어야 하는지
계집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작살나게 이쁜 열매가 미끼였다고
의혹은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거야
경자년이 정해년에게 속삭인다
낮은 음들이 질러대는 괴성에 밥숟갈을 놓친 귀들
은해사 자두가 맛있었다고 추억하는
입술을 덮친다
누가 빠앙 크랙션을 누른다
- 당신의 유방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테이프를 갈아끼우는 사이
농염의 판타지가 물컹 섞인다
비탈진 무대에서 마지막 스텝을 밟는다
끼어들고 싶다 소리와 소리 사이
스텝과 스텝 사이, 소문과 소문 사이
납작하게 드러눕고 싶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죽은 나에게 말 걸고 싶다
거시기, 잠깐 뜸들이고 싶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노랑 소인이 찍힌 연서는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도착할 것이다
소멸을 윙크하는 가을 프로젝트
데카당스도 이쯤이면 클래식이다
---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중에서

사람들은 신중한 보폭으로 그곳을 찾는다
푸른 링거병을 든 나무 간호사들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피톤치드를 처방하는 의사의 얼굴은 깊이 아파 본 자에게만 보일 것이다

- 산이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온 순간 먼 슬픔은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 한층 다복한 꽃송이를 달고 선 산벚나무 아래
그곳 어디쯤에 흘렸을 내 눈물의 부스러기들을 더듬으며 산벚나무 하얀 꽃들을 올려다본다
제 살로 초록빛 띠를 두른 리기다소나무 옆
길게 팔을 늘어뜨린 산벚나무 하얀 손이 어깨를 건드린다
마주잡은 손의 감촉이 서늘하다
서늘함 속에 따뜻한 미소를 담고 사는 이들의 방
하얀 꽃잎 다섯 장에 서린 심연의 기둥을 들여다본다
사라져 갈 것이다 그 꽃들, 사라져 영원을 돌볼 것이다

- 나를 괴롭히고 고문하던 모든 것들을 서스펜스라고 하자

그때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노랫소리
홀로 오는 이들은 허리춤에 노래를 달고 오기도 하는데
기댄 사람, 누운 사람, 소리 지르는 사람
마른 소나무 거꾸로 매달려 절벽에 의지하듯*
한순간 몸을 열어 귀 기울이다 보면 아픈 시간도 금세 지나갈 것이다
늘 푸른 응급실
그곳은 따뜻한 밖이며 서늘한 안이다
처방전을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한 잎 나뭇잎을 닮았다

*이백 촉도난
--- 「툰드라 시대의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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