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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샤 아저씨

빠샤 아저씨

: 한 경영인의 삶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

리뷰 총점9.0 리뷰 32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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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203쪽 | 312g | 135*198*14mm
ISBN13 9788993442540
ISBN10 899344254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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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는 배낭을 비우는 데에서 시작했다. 무엇이든 비워야만 또 다른 세계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지에 가면 명소를 여행하기보다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먹고 노래하며 떠들기를 즐겼다. --- p.6

환부에 수술용 메스를 가져다 댔다. 예상대로 순식간에 고름이 터져 나왔다. 가슴이 고름을 토해냈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옷과 몸을 적실 정도여서 환자가 혼자서 겪었을 고통을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고름이 얼굴에도 튀어 입가에 문채로 치료를 이어갔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고름이 그녀가 견뎌온 전쟁의 고통을 서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술이 끝나자 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 p.16

"따이안 팍시! 내일, 안 돼, 밤, 밤, 나가……" 소녀는 어색한 한국어에 몸짓을 더해 무엇을 말하려 했다. 나는 말과 몸짓을 따라하며 소녀가 전달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일, 밤에, 막사를, 나가면, 안 된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황급히 뛰어갔다. --- p.17

나에게 하늘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그에게 복으로 갚아주고, 좋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그에게 화로 되갚아 준다"는《명심보감》의 문장을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복으로 되받는다" 로 간직했다. --- p.19

이렇게 독학한 음악은 궁핍한 삶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청강수업이 스티브 잡스의 삶에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음악은 나를 삶의 또 다른 길로 인도했다. --- p.38

오지여행에서 음악은 남녀노소를 떠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용한 언어였다. 식당가나 거리에서 악사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그들은 나에게 노래를 권유했다. 여기에 동참해 거리의 악사들과 하나가 되면 누군가는 팁을 주었고, 누군가는 밥을 사기도 했다. 누군가는 앙코르를 외쳤으며, 누군가는 또 숙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 p.42

나는 매일 시간을 정해 빠짐없이 운동했다. 집 앞 성지곡 수원지를 두 바퀴 돌고 공용 헬스장으로 향했다. 조찬강의가 있으면 저녁 혹은 늦은 밤에, 강의가 없는 날에는 새벽에 공원을 찾았다. 운동을 거르지 않는 이유는 그 시간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 p.44

사무엘 울만은〈청춘〉이란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며,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덫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혀질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는다'고 했다. 52세에 고엽제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가 강사로서의 삶을 살게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흔 의 아마추어 음악가가 오페라무대에 서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 p.46

차는 걱정과는 달리 그런대로 잘 굴러갔다. 그래서 안도하는 순간, 멀리서 당나귀 한 마리가 도로 위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운전기사는 당나귀가 가까워져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샤를륵이 기사에게 소리 질러 겨우 당나귀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기사는 나이가 57살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사의 말과는 달리 더 든 것이 분명했다. 시력은 물론 청력도 좋지 않았다. 계속해서 불안이 밀려왔다. --- p.73

여행의 매력은 알 수 없는 미래로 가득 차있다는 점에 있다. 출발지와 목적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그 안에 놓인 과정은 미지에 있었다. 나는 이런 여행의 매력에 흥분을 느꼈다. --- p.75

여행지에서의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가 됐다.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그를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천천히 버스가 출발했다. 그가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끝을 따라 내 마음도 흔들거렸다. 한없이 흘러넘치는 고마움이 눈물로 맺혔다. --- p.79

혼자만의 여행이 이렇게 뜨거운 감정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아니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었다. 샤를륵 그리고 나. 혼자이기에 모든 것들이 내 곁에 머물렀고, 나또한 그들 곁을 걸었다. 꾀 많고 이익을 계산하는 현실 속의 나보다 여행지에서의 바보 같은 내가 훨씬 좋았다. --- p.80

목조 건물에서부터 한 방향으로 꽃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비애하는 어머니'는 그 꽃길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사망한 사람들을 애도하는 상징물로 우울하고 애통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동상을 밝히기 위해 가스로 불을 켜놓았는데, 곁에 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빠샤 아저씨가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해 또박또박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당신은 항상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마음이 엄숙해졌다. 문득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떠올랐다. --- p.111

대부분 그러했듯이, 빠샤 아저씨와도 낭만적인 이별의 말을 나누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욱 스치는 인연이 아니라 스미는 인연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인간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인연을 살아간다면, 이별은 다시 사랑의 무한을 약속할 수 있다는 것을 숱한 여행을 통해 배워왔다. --- p.117

중남미를 여행할 땐 원 없이 신문을 한 장 한 장을 다 본다. 그 뿐인가? 멋진 영화, 멋진 오페라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오늘은《마술피리》를 본다. 정말 아무 방해 없이. 슬픈 사랑도 기쁘게, 힘든 사랑도 쉽게, 모든 것을 마술피리가 다 해결한다. --- p.122

엘살바도르 오후 1시 출발. 4시에 도착. 콜롬비아 시차가 한 시간 빠르다. 시간과 시차가 계속 바뀌고 항공기가 매번 연착하니 이번 여행은 보통 고행이 아니다. 긴장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더 힘들다. 기침이 나고 황열병 예방접종 후유증까지 겹쳐 힘들다. 별일 없기를 기대한다. --- p.129

놀라운 것은 선장과 불 비추는 사람의 교감이 깜깜한 아마존 의 밤을 뚫고 나간다는 점이다. 신기하다. 곳곳에 통나무나 장애물이 떠다니는데 어떻게 피해가는 지. 역시 경험이 많으니 느낌으로, 감으로 간다. 배 밑에선 퉁탕퉁탕 계속 나무토막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어찌된 일인지 나는 여행만 나오면 거의 새우잠을 자는데 피곤함을 모른다. 쓰러질 것 같아도 또 괜찮고. 생각해보니 적은 감동이라도 늘 조금씩 받으니 그것이 잠을 대 처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 p.146

아마존 넓은 강의 한복판에서 극적으로 상봉한다. 이게 웬일 인가? 2년 전에 탔던 배의 선장이 아닌가! 그도 나도 한 눈에 알아본다. 손을 내밀며 자기 배에 오르라는 것이다. 오전 10시 40분. 배에 오른다. 매달리다시피 달려 올라탄다. 힘도 좋지만 전 보다 얼굴이 더 좋다. --- p.156

한참을 들어갔는데 환경은 같으나 현대식 생활을 하고 있다. 태양열로 전기를 생산하는 자가발전시설이 있다. 세속화한 마을이어서 그런지 원주민 춤이라고 보여주는 것이 너무 엉터리여서 보고 듣기가 민망하다. 지루해서 개미집을 건드려 보니 불개미들이 가득 들어 있다. --- p.165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다. 돈이 다 떨어졌으니 이젠 걷기 아니면 대중교통이다. 버스를 이용하며 씁쓸하게 여행한다. 삶도 살아갈수록 두렵듯이 여행도 모르고 다닐 때가 좋았다. 좀 알고부터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가 있다. --- p.180

엘살바도르에서 기다리는 동안 지루해서 흑인 여성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LA로 가며, 고향이 벨리즈(Belize)라고 한다. 벨리즈에 대해 한참 대화하다 보니 친근감이 생긴다. 내가 먼저 하바 나길라를 선창하니 자기도 아티스트라며 답을 한다. 가스펠 가수이며 가족 모두가 뮤지션이라고 한다. --- p.182

다음 코스는 중앙아프리카인데 정말 위험한 곳이라 고민 중이다. 조금 쉬운 여행으로 바꾸고 싶을 때가있다. 그러나 큰 도시를 다녀보니 너무 재미가 없고, 흥미 또한 느낄 수가 없다. 오늘은 몰라도 내일은 미지를 향해 가는 여행이 더 그리울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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