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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모

두 번째 유모

[ 양장 ] FoP 시리즈이동
듀나 | 알마 | 2019년 07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5 리뷰 6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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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0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368g | 114*189*30mm
ISBN13 9791159922596
ISBN10 1159922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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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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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은 끔찍했어. 사방이 피투성이였고 바닥엔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어. 시체들은 모두 두개골 뒤가 부서져 있었고 마치 커다란 짐승의 손톱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척추에 긴 상처 자국이 나 있었어. 몇몇 사람들은 눈도 뜯겨져 나가고 없었어. 난 얼어붙은 듯 문가에서 서서 시체들을 세어봤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부천에 거주하며 외계인들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들은 나까지 포함해서 여덟이야. 그런데 그중 여섯 명이 시체가 되어 쌓여 있었던 거야. _「대리전」
--- p.21

“4월 중순이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여름처럼 더워져서 산책 나갔다가 입고 있었던 코트를 벗어야 했지요. 사촌언니랑 동네 할인점에서 장을 보고 나오려는데,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청각장애를 가졌다고 제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던 건 아니에요. 늘 작고 둔탁하고 흐릿한 진동이 이명 속에 섞여 울렸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절대적이고 완벽한 침묵이었지요. 어리둥절해서 사촌언니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그 소리가 들렸어요.
생각해보면 그건 소리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소리의 흉내를 낸 무언가 다른 것이었겠죠. 그렇지 않다면 제가 그 말을 그렇게 잘 알아들었을 리가 없거든요. 사람들의 말소리가 무엇인지 거의 모르고 지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전 그 소리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뇌의 일부분이 갑자기 반짝거리면서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뭐라고 그랬는데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체험은 또렷했지만 그걸 기억하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니겠어요? 첫 부분은 기억나요. ‘조상들이여, 우리는 미래에서 온 후손들입니다.’ 그리고 한참 연설이 이어진 뒤에 이렇게 끝났죠. ‘더 이상 당신들은 역사의 무게를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이미 이루었습니다.’” _「미래관리부」
--- p.82~83

김지나는 지난 하루 동안 이 아파트의 주인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LK생물공학연구소의 정신 나간 연구원들이 실험하고 있던 액체가 쏟아졌다. 그 액체를 마시고 흡입한 그녀는 한동안 멀쩡해보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남편을 살해했고, 그날 밤 철통같은 보안망을 뚫고 연구실로 들어가 BC-2098라는 별 의미 없는 번호가 붙어 있는 샘플과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모두 파괴한 뒤 연구실에 불을 지르고 귀신처럼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그 액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몰라요.”
LK생물공학연구소의 소장이라는 작자는 무책임하게 내뱉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원래 모르는 게 정상이지요. 도킨스 탱크라는 건 그런 걸 만들라고 있는 거니까.”
“그 도킨스 탱크라는 건 도대체 뭐죠?”
김지나가 물었다.
“무작위적으로 진화압을 주는 기계입니다. 안에 미생물을 넣고 극단의 환경을 조성해줍니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놈들에게는 다른 극단의 환경을 주어 또 괴롭히는 겁니다. 계속 이러다보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놈들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지요.”
“그런 연구를 하고 계셨나요?”
“아뇨. 그건 연구원들의 취미 생활이지요. 일종의 재활용 연구라고 할까. 진짜 거기에서 뭔가 대단한 게 나올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까지는요.”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그건 그냥 더러운 구정물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소독된 구정물요. 길거리 매점에서 파는 어묵 국물이 더 위험하죠.” _「수련의 아이들」
--- p.132~133

평형추의 내부는 짓다 만 건물처럼 보였다. 크고 작은 금속 상자들이 금속 뼈대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쌓아올린 것처럼 보였다. 뼈대 사이사이로 별과 인공위성이 보였다. 지구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지구는 그의 머리 위에 있었고 수천 겹의 금속 천장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김재인의 유령이 그의 옆에 나타났다. 그녀는 지네 로봇 옆에서 날고 있었다. 머리칼과 스카프가 바람에 휘날렸다. 주변에는 바람도, 바람을 만들어내는 공기도 없었지만 그녀는 그 효과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신호를 했고 최강우는 그 신호에 맞추어 컨테이너에서 뛰어내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가 물었다. _「평형추」
--- p.212~213

미나가 가본 가장 먼 미래는 서기 3549년이었다. 1982년에 핵전쟁이 나 인류가 멸망한 시간선이었다. 주변엔 이끼와 쥐며느리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있었다. 인간이 없으니 신도 없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미래로 계속 갈 수 있었다. 계속 가다보면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집어삼킬 때까지 갈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미래는 미나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다. 미나가 보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미래였다. 그녀가 갇혀 있던 21세기 초의 갑갑한 현재가 아닌 다른 시대. 더 개선되고 더 계몽되고 더 나은 시대.
그런 미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시간여행 기술과,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의식대통합은 하나의 물리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시간여행 기술만 발명되고 의식대통합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 이 사태를 막으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가 결국 신을 만들었고 인간들은 그 속으로 사라졌다. 신들은 과거 인간들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늘 벽에 막힐 수밖에 없었다. _「각자의 시간 속에서」
--- p.236~237

“어느 정도. 너희들은 이상한 믿음을 쉽게 버릴 수 있도록 설계됐어. 지구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러니까 아주 특별하지는 않아. 하지만 너희들에겐 생물학적인 안전장치가 있어. 여러 심리학적 요인들이 묶여 이상한 믿음을 향해 폭주할 가능성이 있을 때 그걸 끊어주지. 너희들은 종교적 믿음이나 집착에 대해 면역력이 있어. 아마 너희들 중 어느 누구도 고리오 영감이나 리어왕처럼 죽지는 않을 거야. 그건 너희들의 몸이 방사능과 무중력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전한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목표는 모두 더 높은 생존률이지.”
잠시 말을 끊고 하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트리톤을 올려다보던 가을 이모는 느릿느릿 이야기를 이었다.
“아직 세상엔 인간들이 필요해. 더 많은 시드들이, 생물학적 개별자들이 필요해. 우주엔 더 많은 의지들, 욕망들이 필요해. 우린 살아남아서 그걸 어머니들에게 보여주어야 해.”
“그것도 깨질 수 있는 믿음이지?” _「두 번째 유모」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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