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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샤라쿠

색, 샤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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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422g | 128*188*21mm
ISBN13 9791189353155
ISBN10 118935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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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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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찻잔을 들어 올렸다. 단원도 작은 백자에 담긴 연녹색 찻물을 음미하였다. 담백하면서도 씁쓰레한, 꼭 지금의 상황과도 같은 맛이 입 속을 감돌았다.
“아마 교서를 가진 자는 왕실과 쇼군 모두에게 불만을 품은 막부의 실력가일걸세. 헌 뿌리 위에 새 뿌리를 접해 예상치 못한 꽃을 피운다……. 단숨에 에도를 뒤흔들 만큼 실력이 출중한, 적들에게 전혀 노출되지 않은 새 간자가 필요해.”
--- p.21

가권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제 자신은 기방에 드나들며 기녀들을 희롱하고 노름질을 하던, 알량한 재주만 믿고 치기 어린 마음으로 잘난 척하던 그 가권이 아니다. 자신은 한 사내의 위대한 꿈을 보았다. 그리고 그 꿈을 동지들과 함께 꾸었다.
‘나는 간자다. 침묵을 지킴으로써 내 사명을 완수하리라.’
--- p.97

에도 최고의 유곽 요시와라는 들어서는 입구부터가 남달랐다. 겨우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드나들 수 있는 크기에, 좌우에 험상궂은 장정 두 명이 문지기로 버티고 서 있었다. 무기가 있는 자는 칼이든 곤봉이든 입구에 늘어서 있는 보관소에 모두 맡겨야 들어갈 수 있었다. 오입하려는 땡중들을 위해 옷을 대여해주는 곳까지 있었다. 가권과 쓰타야, 영재는 무기 검사를 받은 뒤 집집마다 홍등이 걸려 있는 화려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 한가운데는 나무들이 일렬로 서 있어 아름다웠고, 좌우에는 입구를 격자창으로 꾸민 가게가 늘어섰는데, 알록달록한 비단을 묶어 펄럭이게 한 장식 끈이 인상적이었다.
--- p.152~153

기쿠는 현재 에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미남 화가 샤라쿠야말로 자신을 위해 궁극의 초상화를 그려줄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처럼 매력적인 사내 앞이라면 옷을 벗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샤라쿠는 엉뚱한 계집에게 눈이 팔려 있다.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얄미운 계집에게 말이다. 기쿠가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심부름꾼 호이치를 먼저 유혹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원래 가장 맛있는 부분은 나중에 먹는 법이니까.
--- p.227

사유리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권은 사유리의 머리에 꽂힌 장식들을 눈여겨보고 다시 한번 사유리의 눈을 쳐다보았다. 백분을 바른 사유리의 얼굴은 색기가 흐른다기보다 앙증맞은 일본 인형 같았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얼굴을 보듯 사유리를 들여다보던 가권은 웃음을 지으며 붓과 종이를 꺼냈다.
“너를 그리고 싶구나.”
그러자 고분고분 순종적으로 대답하던 사유리가 갑자기 단호해졌다.
“안 됩니다. 그리지 말아주세요.”
--- p.269~270

가권의 숨이 멈췄다.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붓을 들어 그녀의 빈 눈자위에 댔다. 죽기 직전 가권에게 미안함과 사랑과 애타는 심정, 희망과 예술을 갈망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던 눈동자를 그렸다. 아련한 눈빛, 가없는 눈빛, 사랑하는 이를 바라볼 때의 눈빛, 예술혼을 담은 눈빛이다. 사유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가권은 붓을 들어 그림 옆에 시를 적었다.
--- p.39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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