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국왕 명령의 소통 단계와 절차
조선시대 국왕 명령은 교敎라고 하였다. 이 같은 국왕의 명령은 구두 또는 문서로 전달되었다. 이 중에서도 문서로 전달되는 국왕 명령은 공식적인 명령이었고 그래서 소통 단계와 절차가 중요하였다.
조선시대 국왕 명령을 전달하는 문서에는 교서敎書, 유서諭書, 비답批答과 더불어 윤음綸音 등이 있었다. 이 같은 국왕의 명령문서는 조선시대 하향식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국왕은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 군사권을 가진 최고 권력자였다. 국왕의 명령에 따라 행정조직, 사법조직, 군사조직이 가동되었고, 일반 백성들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국왕 명령의 정확한 소통과 전달은 국정운영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은 공식적인 행정조직을 통하여 전국의 민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국왕 본인으로부터 시작된 명령 즉 교敎는 승정원을 거쳐 8도의 방방곡곡 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전달된 국왕의 명령 결과는 다시 행정조직을 통하여 국왕에게 보고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국왕의 공식 소통 방식을 다루는 문제에서는 국왕의 명령이 어떤 소통 단계와 절차를 거쳐 방방곡곡의 민들에게까지 전달되고 다시 그 결과가 국왕에게 보고되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국왕명령을 전달하는 문서 중에서도 왕의 훈유문인 윤음은 영조 대부터 크게 중요시되어 교서와 함께 국왕의 명령 문서를 대표하게 되었는데, 이는 영조 대에 들어서면서 국왕의 대민 접촉이 중요시된 결과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런 점에서 조선 후기 윤음은 상승하는 민의 위상에 부응하여 국왕이 어떤 방식으로 대민 접촉을 늘려나갔으며, 아울러 국왕의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민에게 설득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윤음은 국왕이 어떤 소통 단계와 절차를 거쳐 민과 공식적으로 소통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다.
1. 윤음
본래 윤음綸音이란 용어는 예기 치의緇衣의 “子曰 王言如絲 其出如綸 王言如綸 其出如 ”란 문장에서 유래되었다. 위의 문장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왕언王言이 가느다란 실絲 같아도 입에서 나오면 그것은 굵은 실綸 처럼 되고, 왕언은 굵은 실綸 같아도 입에서 나오면 그것은 동아줄 처럼 된다.”로 해석되어 왔다. 요컨대 윤음이란 “굵은 실綸 같은 소리” 즉 “왕언王言”이란 뜻으로서, 고대 중국인들이 당시 최고 권력자 왕의 말王言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굵은 실綸이나 동아줄 에서 파악한 결과 윤음이란 용어가 등장했다고 이해된다.
한편 윤발綸 중에서 윤綸의 뜻을 한나라 정연鄭玄은 “질색부秩嗇夫가 허리에 차는 것”이라고 해설하였다. 한나라 때의 질색부는 지방의 옥송獄訟을 담당하던 관리로서, 그가 허리에 차는 것은 결국 포승줄이었다. 아울러 발 은 관을 끌 때 사용하는 동아줄이었다. 요컨대 고대 중국에서는 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근거로 지방의 질색부는 포승줄을 이용해 법을 집행하였고 일반 백성 역시 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근거로 동아줄을 이용해 장례를 치렀다는 뜻으로서, 윤음은 국가 관료의 법 집행과 일반 백성의 풍속 관행이 모두 왕의 말을 근거로 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나라 공영달은 “王言如絲 其出如綸”을 “왕언은 처음 왕의 입에서 나올 때는 마치 가느다란 실絲처럼 미세하지만, 한번 왕의 입 밖으로 나와 밖에서 시행되면 점점 더 확대되는 것이 마치 굵은 실綸과 같다는 뜻이고, 굵은 실綸은 가느다란 실絲보다 더 굵다는 뜻이다.”라고 해설하였고, “王言如綸 其出如 ”을 “또한 점점 커진다는 뜻이니, 왕의 입에서 나온 후 동아줄 처럼 된다는 뜻이다. 동아줄 은 또 굵은 실綸보다 더 굵다.”라고 해설하였다.
조선시대 윤음은 다양한 이유에서 작성되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불특정 다수의 민을 훈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와 같은 윤음에 관해서는 이미 다양한 연구가 축적되었는데, 대체로 하향식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윤음, 영조대의 윤음, 언해본 윤음 등이 주목되었다. 반면 윤음이 어떤 절차를 거쳐 지방의 민에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윤음 작성의 본래 목적이 불특정 다수의 민을 훈유하기 위한 것이라면 윤음의 문서형식이나 내용, 시기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불특정 다수의 민에게 윤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후기 윤음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윤음의 작성배경, 종류, 서식 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만, 윤음의 전달 과정에 대한 이해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최초 왕언으로 시작되는 윤음이 최종적으로 조선팔도의 민에게 전달되는 각각의 과정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하향식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와 절차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