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의 감정이 타인을 하나의 육체와 언어, 사유와 욕망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면서 시작된다면, 반대로 이러한 인식이 균열되거나 자취를 감추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 도래하는 것이 바로 비극이다… 시와 문학은 어떻게 이 비극의 심장 속에서도 파괴의 열병과 투쟁하며 타인의 고통을 향한 시선으로부터 당신을 되찾는 것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동정은 파멸의 연기로부터 이 당신의 실루엣이 피어오르는 공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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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말 속에서는 감정의 강렬함이 분산되기 마련이다. 감정은 말을 통해 전달될 때 ‘이해’라는 불안정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혹은 허구와 거짓을 베일 삼아 진실을 감싸는 수사적인 표현을 통해서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반면에 눈물 속에서 감정의 강렬함은 고스란히 보전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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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체계적인 파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전쟁의 주도자들은 전쟁 그 자체가 비극이라는 사실을 항상 정치적인 이유로 은폐해왔다. 전쟁은 살해당하거나 부상당한 인간의 이미지를 불투명하게 만들면서 인간을 공포의 무감각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것이 바로 전쟁을 통해 인간이 피해자 개개인의 특성을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이제껏 저질러왔고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만행이다. 한 개인의 숨소리와 욕망과 감정은 다름 아닌 그의 이름 밖으로 내팽개쳐진다. 타자의 정체는 적이라는 말에 접수되고 그 안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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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권력과 프로메테우스의 고통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토대로 이 신화의 다양한 변형이, 때로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주제로, 혹은 그의 반항 또는 해방을 주제로 이루어졌다. 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쪼아대던 독수리를 죽임으로써 그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고 제우스의 동의를 얻어 그를 풀어준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 역시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의 문학적 재창조 과정을 거치게 된다.
--- p.74
열정(passione)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가 ‘동정(compassione)’이라고 부르는 감정도 포함되어 있다. 사랑의 경우에 고통이 타자의 부재와 연관되고 타자의 어두움, 혹은 욕망과 사랑 사이의 경계나 타자와의 관계에 얽매이는 욕망의 고통스러운 한계와 연관되는 반면, 동정의 경우에는 고통이 타자의 현존, 타자의 상처와 연관된다. 동정은 타자의 고통을 나누어 갖고 타자와 함께 겪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 p.84
하나의 감정이 동정으로 발전하는 방식과 양상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관찰하는 이의 방식과 일치한다. 그런 식으로 관찰자는 일종의 현기증에 사로잡히고, 이 현기증이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면의 울타리 밖으로 내던지면서 타자의 몸과 정신이 머무는 곳으로 데려간다. 이 전이 속에서 그는 일종의 소속감과 고통의 대체 가능성, 입장 교환의 가능성을 경험한다. 바로 ‘생명’에 타자와 ‘함께’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의 발견, 생명뿐만 아니라 생명의 유한성과 비참한 현실에도 ‘함께’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던지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 p.137
독자와 관찰자에게 동정의 형태와 방식을 점차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변신의 본능이다. 동정의 형태는 놀라움에서 침묵으로, 침묵에서 눈물로 이어진다. 이 모두가 동정의 다양한 얼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카프카가 위대한 문학 작품의 냉철한 구도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변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 속에 잠들어 있는 잔인함의 냉기를 폭발시킬 수 있다.
--- p.142
벵골 만의 칼링가를 정복하는 도중에 벌어진 대학살 사건에 대한 뼈저린 죄책감에서 시작된 왕의 깨달음이 이 가르침의 토대를 이룬다. 가르침의 본질은 흔히 ‘동정의 의례’라는 표현으로 함축되는 친절, 관대, 관용 같은 몇몇 덕목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있다. 가장 많이 권고되는 것들 중 하나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심’이다.
--- p.158
유한성이라는 폐쇄된 영역에서 멀리 하늘나라라는 하나의 신기루가 떠오른다. 이 하늘나라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동정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빛의 형상이거나, 아니면 감정이 메마른 인간, 혹은 타자의 상처를 감싸 안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을 방문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바람이다. 동정이란 감정도 이 바람과 함께 솟아난다. 그러나 이 바람은 이름과 형체를 가진 신이거나, 땅을 감싸는 대기와 우리의 생각 속에서 돌아다니는 한낱 유령일 뿐이다. 인간의 말은 기도의 형태로 높은 곳을 향해 솟아오른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을 열린 채로 유지해온 것이 바로 종교와 신화라고 할 수 있다.
--- p.167
“동정은 우리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일어난 불행에 대한 생각이 동반되는 슬픔이다.” ‘우리’는 우리와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우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내면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할 수 있다. ‘유사성’의 영역에 사실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불행은 우리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상상하는 누군가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구, 연인 같은 누군가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 p.188
인간의 본성을 구축하는 동시에 동정의 기초가 되면서 동정을 어떤 식으로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조건들이 존재한다. 이 조건들을 우리는 ‘공감’, ‘유사성’,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우리가 동정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숨쉬기 시작하는 공간을 구축하는 요소들이다.
--- p.202
식물들의 세계로 확장된 고통의 이미지 속에서 레오파르디가 발견하는 것은 바로 동정이라는 감정의 기초와 긴장감이다. 그것은 곧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 간의 근접성에 대한 인식, 우리 모두가 삶인 동시에 죽음인 자연에, 개화인 동시에 노화, 아름다움인 동시에 고통인 자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 p.268
동정의 의미는 동정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의미에 의해 구축될 뿐, 동정의 개념은 동정의 주체가 타자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과 과정 밖에서 모든 형이상학적 구도와 가치를 상실한다. 공감되는 고통의 영역 바깥에서 동정은‘나’의 것도, ‘타자’의 것도, ‘신’의 것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정을 둘러싼 모든 모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정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결정하는 ‘나’의 정제된 판단력이다.
--- p.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