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를 수식하는 언어에는 언제나 ‘대(大)’, ‘최고’, ‘가장’ 등의 형용사가 놓인다. 그의 ‘유명세’는 19세기 러시아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는 사실을 넘어서서 20세기 니체를 비롯하여 카프카, 토마스 만, 프루스트,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오스카 와일드에게 준 영향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감수성과 열정, 통찰력을 자양분으로 해서 성장했던 이들 작가들에게 그는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생명력은 19세기와 20세기를 뛰어 넘어, 21세기 현 시점에서도 강력한 마력을 지닌다. --- pp.3~4
가짜 교수형이 끝나고 몇 시간 뒤에 씌어진 이 편지에는 바로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했다 살아난 인간의 감격이 배어 있다. 재판과 토굴 감옥에서 보낸 고통은 이 고귀한 삶의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삶은 은총이며 행복이라는 생각이 삶의 터전으로 귀환한 작가의 흥분 속에 고동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렬한 체험을 하고 난 후라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슬금슬금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보통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다시 살아나기만 하면 1분의 1초까지도 계산해서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기쁘게 살겠다는 뜨거운 감정을 항상 유지하고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매순간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인생 모토를 자기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내면을 소유한 자들에게 특별히 부여한다. --- p.29
극심한 가난과 죄의 심연, 미칠 듯한 도박의 흥분상태와, 끓어오르는 욕망,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수치심, 사지가 뒤틀리는 간질의 고통, 사랑했던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때문에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 정신질환을 앓는 자와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자, 격렬한 욕정과 욕망에 시달렸던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천재이기 이전에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었던 한 ‘작은 인간’이었기에, 우리는 그에게서 ‘큰 작가’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아닐까.
--- pp.8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