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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창녀의 죽음

어느 창녀의 죽음

: 김성종 작품집

김성종 | 남도 | 2012년 09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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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490g | 153*224*30mm
ISBN13 9788972655725
ISBN10 897265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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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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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야근을 한 탓인지 그의 몸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요즈음 들어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앉아 있을 때나 서 있을 때나 피로는 항상 그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 뒤뜰로 천천히 걸어갔다. 뒤뜰에는 적어도 매일 한 구(一具) 정도의 변사체가 운반되어 오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는 거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버릇이 있었다. 시체가 들어와 간단한 조사와 검시가 끝나면 이윽고 그것은 시(市) 관리의 시체실로 옮겨져 며칠 동안 주인을 기다리다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곧장 화장터로 가든지 아니면 대학병원에 염가로 팔려 실험대 위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시체를 다루는 사람들의 솜씨는 언제나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들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감정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대개 이러한 일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고, 일이 끝나면 그들은 흡사 먼지를 털듯이 요란스럽게 해장국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시체는 가마니에 덮인 채 뒤뜰의 담 밑에 버려져 있었다. 가마니 끝으로 빠져나온 여자의 두 발을 보자 그는 그것들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두 발은 누가 양말이며 신발을 벗겨 가 버렸는지 모두 맨발이었다. 여기 들어오는 시체들은 언제 보아도 이렇게 하나같이 맨발이었다. 아마 시체를 나르는 인부들의 장난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눈이 아직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마니 위에는 벌써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신문팔이 소년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 온 것은 두 시간쯤 전이었다. 그동안 검시의(檢屍醫)가 다녀갔고, 몇몇 동료가 화장실에 들렀다가 한 번씩 뒤뜰을 거쳐 나오면서 시체 주위에 침을 뱉고, 아침부터 기분을 잡쳤다는 투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기름 바른 머리에 금빛 로이드안경을 끼고 바쁜 듯이 나타나는 검시의라는 작자는 종로 사창가에 산부인과 성병(性病) 전문의 병원을 차리고 있는데 어떤 연유로 그자가 시체 한 구당 5천 원의 검시료를 받는 전문 검시의로 추천되었는지는 몰라도 벌써 오래전부터 이 K 경찰서에 출입하고 있었다. 창녀를 상대로 해서 막대한 돈을 벌고 경찰서 간부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는 그 검시의를 오 형사는 매우 싫어했다.
결국, 그런 의식을 가진 자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증오감마저 일곤 했다.
그는 가마니 끝을 들어 올리고 죽은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반쯤 덮은 숱이 많은 그녀의 머리칼은 죽은 사람 같지 않게 그 결이 곱고 부드러워 보였다.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가라앉은 얼굴은 머리칼에 덮인 탓인지 인형처럼 단순하고 작은 모습이었다. 콧등과 뺨 위에 뿌려져 있는 몇 개의 주근깨가 불현듯 그에게 서글픈 친근감을 안겨 주었다. 온 얼굴에 흡사 해진 피부처럼 눌어붙은 값싼 화장기만 없었더라도 이러한 감정은 좀 덜했을 것이다. 화장은 눈 주위, 특히 눈두덩 위에 가장 많이 몰려 있어서 얼른 보기엔 진보랏빛의 부스럼 딱지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잘못된 눈 수술을 가리기 위하여 거기에 유난히 정성을 들인 것이었다. 그 두터운 화장기 밑에는 양쪽 모두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가져온 상처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아마 소녀는 쌍꺼풀 수술을 했던 것 같았다. 그는 가마니를 더 젖혀 보았다. 소녀는 빨간 털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녀의 몸은 얼굴보다 전체적으로 큰 편이었으나 몹시 말라 있었다. 늙은이처럼 앙상한 손이 각을 이루면서 눈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다른 한쪽 손은 배 위에 놓여 있었는데 흰 눈 때문인지 다섯 개의 긴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 빛이 유난히 빨갛게 돋아 보였다. 그것은 죽은 후에 칠해진 것처럼 매우 생경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죽은 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최후의 감정, 끝없이 굴러 떨어져 버린 고독과 주검의 찌꺼기 같기도 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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