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서울 출생. 본명은 필승이며 아명은 갈범이다. 『금수회의록』을 쓴 안국선의 외아들로 태어나 수송보통학교를 마치고 1924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부친이 죽자 1927년 학교를 그만두고 《개벽》에 입사해 약 10년간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잡지가 폐간된 뒤 ‘상사회사’에서 잠시 일하다가 1944년 9월 일본 규슈 탄광으로 징용 당했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에 가담하고 이후 1946년 8월에 결성된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안회남은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발」이 삼등 당선된 후 신변소설을 활발하게 발표하며 1939년에는 학예사에서 간행한 『안회남단편집』으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1947년 2월 「폭풍의 역사」를 발표하면서 임화로부터 ‘8·15 이후의 역작’이란 고평을 들었고, 또한 「농민의 비애」를 발표하여 김동석으로부터 ‘비약하는 작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월북한 후 6·25 때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이후 《민주조선》의 문화부장이었다는 설, 1954년 남로당 숙청 때 숙청당했다는 설 등등이 분분하나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편집 : 박헌호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근대문학사를 전공헀으며, 고려대학교 BK연구교수,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이태준과 한국근대소설의 성격』, 『한국인의 애독작품-향토적 서정소설의 미학』, 『식민지근대성과 소설의 양식』이 있고, 공저로 『동아시아 서사학의 전통과 근대』, 『근대어, 근대매체, 근대문학』, 『작가의 탄생과 근대문학의 재생산 제도』 등이 있다. 이외에 『나도향-어머니(외)』와 『심훈 장편소설-상록수』를 책임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