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점점 더 줄어들고, 하늘은 돌연한 어둔의 예감에 떨고 있었다.북쪽으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남쪽에서도 똑같이 바람이 일었다. 두 방향에서 불어온 바람은 형장의 기둥에거 서로 부딪치며 화염을 이끌고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불의 기세는 한층 치열해졌다. 불은 끝내 수형자를 완전히 덮었다 육체는 떨며 고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사나운 불길 때문인 것 같지 않았다. 그 열기 때문인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은 무언가 초월의 계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하늘을 향한 저 건너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안드로규수는 갑자기 턱을 앞으로 내밀고 두 눈을 하늘로 향했다. 목줄기를 달리는 핏줄이 머리를 떨어뜨린 뱀처럼 비클려 이마로부터 흐르느 한줄기의 혈흔과 서로 엉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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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드로규노스는 젊음이라는 것이 가지는 어떤 명쾌함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젊음 그 자체는 아마도 몇백년, 몇천년이라는 광물적인, 느릿하기 짝이 없는 성장을 통해 말하자면 '늙음'으로써 얻어진 것이리라. 그것에 드러난 명확함에는 벌써 이면(裏面)으로부터 노회한 회닉(晦匿)이 다가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23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이변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아무 일 없이 빛나고 있었던 태양이 천천히 검은 그림자에 침식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태양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를 가진 검은 그림자, 또하나의 검은 태양. -- 일식이었다.
--- p.162
나중에 알게 되 것이지만, 내가 마을에 머물던 동안 피에르는 소위 알베드[백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이것은 연금술의 대 작업 중에서 니그레드[흑화]라 불리는 최초의 과정에 이어지는 두번째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작업을 끝내고 다음단계인 루베드[적화] 과정에 성공하면,목적하던 현자의 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백화와 적화 사이에 키토리니타스[황화]라 불리던 또하나의 과정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에르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 p.69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인간이 행하는 바 어떤결과가 오직 한가지의 원인에 귀착된다고하는 낙관주의를 점점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하나의 결과가나오는것은 우리기 생각하는것보다 훨신더 많은 미묘한 카오스에의한것이며, 대부분의경우 우리가 찾아낸 원인이라는것은 유기적인 카오스로부터 조금떼어온 한조각에 지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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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드로규노수이며, 안드로규노스는 나였다. 나는 불게 번쩍이는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불기둥이 되어 하늘 끝을 뚫고 올랐다. 빛은 골고루 세계를 비추어, 질료를 초월하여 형상을 현현시키고, 물질을 확실하게 '존재'하게 했다. 그 순간, 세계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던가, 얼마나 생생하게 반짝였던가! 앞으로 일어날 운동은 송두리째 이 순간에 일어나고, 과거의 운동은 이 순간에 무한히 반복되었다.
모든 것은 영원으로 예감되고, 일어나고, 회고 되었던 것이다. 영은 육을 떠나려 할수록 점점 더 깊이 육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나의 영은 육과 함께 승천하고, 육은 영과 함께 땅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육과 영은 융합하였다. 나는 세계의 모든 것을 단 한 지점으로서 내려다보았고, 그것을 만졌다. 세계는 나와 너무도 익숙했다. 나는 세계를 포옹하고, 세계는 나를 감쌌다.
--- pp. 167-168
나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어둠에 침물하려는 한 낮의 하늘에 희미하게 떠오른 거인은, 풍설에 들리던 그대로 남녀 두몸으로 나타나, 짐승과도 같이 뒤로부터 교합하고 있었다. 그 거대함은, 도무지 잴 수 없을 정도였다. 땀을 줄줄 흘리며 번들거리는 사내의 처구는 파도처럼 몇 번이고 습격을 거듭했다. 여인은 그것을 받아 삼켰다. 그 격렬함은 하늘을 삐것거리게 할 정도였다. 율동은 구름을 찢고 산야를 울렸다. 나는 그것을 귀로써 들은 것이 아니었다. 소리는, 육체의 깊은 곳에서, 그 가장 어두운 심연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의 박동이 아무리 격앙된다 해도, 그 소리가 내려치는 한 박자 한 박자는 결단코 변함이 없는, 불길한 완만함으로 물결치듯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었다.
--- p.164-165
나는 수도자이며 또한 이단자였다. 남자이며 여자였다. 나는 안드로규노스이며 안드로규노스는 나였다. 나는 붉게 번쩍이는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불기둥이 되어 하늘 끝을 뚫고 올랐다. 빛은 골고루 세계를 비추어, 질료를 초월하여 형상을 현현시키고, 물질을 확실하게 '존재'하게 했다. 그 순간, 세계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던가, 얼마나 생생하게 반짝였던가!
--- p.167
그 풍경에, 나는 일순 전율했다. 소년은 할 수 있는 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소리도 없이 웃고 있었다. 그네를 힘껏 구를 때마다 소년의 머릿결은 놀란 듯이 춤을 추었다. 눈은 둥그렇게 흡뜨고, 목에는 가느다란 핏줄마저 돋아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기쁨이라는 것이 전혀 담겨져 있지 않았다. 아니, 기쁨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으로부터 기묘하게 격리된 곳에서, 그저 웃는 얼굴만이 물에 뜬 달처럼 불쑥 떠올라 쾌활하게 번득이고 있는 것 같았다.
--- p.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