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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일식

: 1999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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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도서]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저/양윤옥 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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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2쪽 | 430g | 152*225*20mm
ISBN13 9788982811722
ISBN10 898281172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 99/6/19 조창완(chogaci@hitel.net)
참 우습다. 우리 독서문화와 언론계의 수준이 이것 밖에 되지 않았다. 그저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랑 비슷한 소설을 이렇게 대우해야하는 우리 문화계의 협소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내 판단의 근거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일식'의 붐이다.

난 언론에서 열이 올라 칭찬하는 이 소설을 애써 무시했다. 출판이라면 기를 쓰고, 달라드는 내가 이 소설을 무시한 것은 나보다 어린 친구가 쓴 소설이 히트한다는 것에 대한 카인컴플렉스와 내가 요즘 일본 소설을 너무 읽었다는 자기통제기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차여차해서 이 소설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 친구에게 내가 준 소설은 이미 독서일기를 쓴 현기영씨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였고, 난 이 소설을 받아서 읽었다.

정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현기영씨의 그 좋은 소설은 무시되는(2판이나 찍었나) 상황에서 이런 소설이 장안의 지가를 좌우할 만큼 팔려나갔다는 것이 우습기 그지 없다. 우선 소설에 대해 말하기 전에 앞에서 언급한 두가지를 짚고 넘어간다.

우선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현실에 관한 내 소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김진명이나 양귀자의 소설이 히트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드래곤라자'나 '용의 신전'같은 소설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당연히 이해가 간다. 나도 좋아하는 장르를 찾아 읽으니까. 하지만 히라노 게이치로의 이 애매한 소설이 히트라는 우리 독자들의 취향은 무엇인가. 일본문화가 들어오고, 그것에 민감하지 못하면 뒤떨어진다는 강박관념이 빚어낸 현실은 아닌지. 사실 이 소설은 우리 독자의 취향에도 맞지 않고, 그리 흥미롭지도 않다. 더군다나 흥미를 자극하는 앞부분에 있어서는 조잡하기에 그지없는데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언론이다. 언론사들은 이 책의 출간 소식을 거의 대서특필했다. 저널리즘의 성격에 맞추어 보자면 신세대 젊은 작가가 의고체로 중세문화를 다뤘다는 특성, 일본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상을 탔다는 점, 일본 문예지 사상 처음으로 데뷔작가의 소설을 전제했다는 점, 거기에 작가가 23살의 명문 교토대학에 다니는 재원이라는 점은 충분한 저널리즘적인 가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문학한다는 기자들로서도 애매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이미 2번이나 배출할 만큼 세계 문학계에서 인정받는 일본에서 그 정도의 상을 받았는데, 뭔가 있지 않을까. 졸라 떨떠름했지만 그래도 뭔가 있을 것 같아, 졸라 보도자료를 베껴 기사를 썼다. 그 근거는 내가 이 책에 관련기사를 뒤져 봤을 때, 자기 특색이 있는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판단한 것이다.

다행히 얼마전 이남호 선생이 한 신문에 뭔가 의심스럽다는 글을 썼다. 그나마도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들어온 이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 없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럼 그리 잘나지도 않는 내가 이 소설의 가치를 폄하하는 이유가 뭔가를 여유가 있는 이들은 찬찬히 들어보기 바란다.

우선 소설의 가장 주된 기둥은 서사구조다. 이 책의 가장 주된 줄거리를 살펴보자. 연금술사 피에르 위페는 플라톤이 꿈꾸던 자웅동체의 이상적인 안드로큐노스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안드로큐노스를 마녀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신실한 성직자 자크에게 걸려 처형된다. 그리고 그 처형의 순간에 일식이 일어난다. 소설은 기독교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던 중세에 유일하게 신과 인간의 경계가 혼돈스러웠던 1482년 시점을 배경으로해서 이 안드로큐노스라는 인물을 상정했다.

이게 어떻다는 것인가. 마녀사냥을 그리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의 이원론적인 사상의 부정성을 그리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피에를 위페를 중심으로 한 학문의 자유를 그리겠다는 것인가. 물론 이 모든 것을 그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저급하게 쓰여진 판타지 소설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고 보여진다. 마녀사냥의 계기가 되는 간헐열병이 퍼지는 과정등 작품이 가지고 있어야할 구성적인 치밀함은 거의 없다. 또한 등장하는 인물 들 역시 각자가 생명력을 갖지 못하고 수 없이 분산되어 있는 엉성한 수준이다. 특히 소설의 중심이어야할 피에르와 안드로노큐스의 관계 또한 애매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인 일식이 생기는 과정과 전체 이야기의 연결 또한 그저 상징적인 애매함을 가져다 붙이기 위해 만들어낸 기제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일식과 기독교의 맹목적인 신관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지만 그게 무에 그리 크단 말인가.

이 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 중에 하나는 의고체라는 문체다. 난 의고체라는 문체의 정확한 특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역자나 해설등으로 유추하건데, 의고체라는 문체는 긍정적으로 볼 때,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에 근거해서 어떤 상황이나 사물에게 가장 적절한 단어는 하나 밖에 없다는 사고 아래 죽어라고 그 단어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긍정적인 면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독자들을 무시하고 죽어라고 어려운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도대체 뭔가. 당연히 쉽고, 적절하게 풀어서 쓸 수 있는데, 정말 죽어라고 어려운 단어를 찾아서 쓴다. 역자도 밝히지만 사전을 찾아가며 소설을 읽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한다. 도대체 사전을 찾아가면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그럼 보자 그가 얼마나 뛰어난 지식과 고도의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소설의 첫머리는 정말 독자들이 혼돈할 만큼 어려운 개념들이 많이 나온다. 중세의 학파가 어떻고, 마니교가 어떻고 저쩌고. 하지만 이것은 한 장을 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는 소설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작가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장부터는 이야기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데, 죽어라 어려운 단어를(의고체라 포장된) 찾아서 쓴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이것은 이 젊은 작가의 지식체계가 그에게 비유되어지는 에코에 전혀 미치지 못함을 가르킨다. 게이치로의 지식체계 역시 문학을 좋아하데, 중세나 신화에 관심이 많은 문학청년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로 언론이나 출판사 특유의 상혼으로 무장된 마케팅 전략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무협지나 판타지소설이 팔리는 것을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무협지나 판타지소설이 최고의 문학작품인 것처럼 위장되어 팔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소설은 내가 보기에 치기어린 문학소년의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들도 내가 이렇게 무식하구나 자학하면서 어려운 단어를 찾아가며, 이 소설을 읽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시종일관 난 이 책에 대한 비판을 일삼았다. 긍정적인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작은 긍정을 인정하기 위해 큰 부정성을 간과하는 것 처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중세 기독교의 절대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빚어진 폐단 역시 이런 특성 때문에 벌어졌던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교관련 논쟁 역시 궁극적으로 보면 이전에 무시했던 '텍스트'들의 부정성에 관한 유효한 논쟁이 없었던 탓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말한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며, 한없이 짜증이 났다. 고작 이 정도의 소설이 언론과 독자들에게 대우받고, 내가 보기에 좀더 넓게 읽혀야 할 글들이 무시되는 이 독서계의 풍토가 우스울 뿐이다.
--- 99/5/15 이상구(flypaper@yes24.com)
'배경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의 중세, 니콜라라고 불리우는 수도사가 나래이터로 등장해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젊었을 적 한때의 기억을 회고한다. 토마스주의자인 이 견실한 수도사가 이교도의 이단을 상대하기 위한 논리로서 연금술의 원리를 쫓게 되고, 그러다 시골의 한 마을에서 피에르라는 연금술사를 만나 영혼과 육체의 합일이라는 체험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

얼핏 줄거리를 스쳐 보기만 해도 어렵지 않게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할 수 있는 - 실제로 이 책에는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와 맞섰던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 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 이 작품은 99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75년생 일본 법과 대학생의 처녀작이다. 무척 신나고 스릴넘칠 것 같은 이 작품을 읽은 후의 느낌은......휴! 정말 어렵사리 무협지를 한권 읽은 느낌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지금까지 무협지를 읽어 본 적이 없는 난 그저 '무협지를 읽으면 이런 느낌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게 있다. 전혀 접해 본 적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으면서 왠지 그냥 꺼려지는게 있다. 뭐, 정 어쩔 수 없다면 다가 서 보기는 하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싶은게 있다. '감수성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싫고, 좋고, 그런데 일일이 이유를 붙이다간 정작 자기가 싫어하는 거 싫어할 시간도, 좋아하는 거 좋아할 시간도 없다'는 둥의 궁색한 이유나, 자기변호도 필요치 않다. 그냥 거리감을 유지하고픈...그런게 있다. 내 안에 있는 그런, 괜한 심술 중의 하나가 바로 무협지이다.

그렇게 낯설기만 한 무협지라는 쟝르를 머리 속에 띄운 채 진행된 독서인진 몰라도, 솔직히 그 모든게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라는 이 말에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라는 뜻과, 이 작품에 쏟아진 일본문단의 전례없는 찬사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뜻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양보해도 '내가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라는 추측에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쉽게 잘 읽히는 책도 아니다. 요컨대 적당히 난해한 이유로 쉽게 잘 읽히지 않는 책인 셈인데, 그런 이유로 난 어느때와는 달리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몰입할 수는 없었다. 장대한 스케일이니, 심오한 사고이니 하는 사내적 스타일과는 좀 동 떨어져 있는 나였기에..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본 언론의 저널리스틱한 찬미 속에 담겨 있던 '긴장감과 스릴이 스토리를 전개하는 장중한 힘' 같은 것도 난 발견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나한테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을까?에 대한 실마리는 역설적이게도 그 호들갑의 원인을 제공했던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서 드러났다. 일본의 중견 소설가인 미야모토 테루는 이 작품을 두고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붙였다.

'이 소설은 기성품의 범주로부터 튀어 나와 손발을 쭉 뻗고 있다. 요즘의 신경증적인 폐쇄된 작은 소설들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이렇게도 말했다.

'요즘 소설들이 보여주는 분위기일 뿐인 비현실감이나 자폐나 파괴충동, 그리고 종말의식 같은 단조로움에 나는 싫증이 난다. 그에 비해 소설의 정통에 서고자 하는......'

10여명에 이르는 심사위원들의 대부분이 언급한 이 작품의 수상 선정 이유는 장대한 스케일, 주제의 심오함, 의고체 문장의 장중함 등이다. 말하자면, 일본은 왜소함, 나른함, 선병증적인 나약함에 지쳐 있었던 것이다.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소설이 일련의 군을 형성했던 일본 문학계에서 <일식>과 같은 작품은 극히 이례적인 것, 이단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해야 하는 일본은 25살의 이 야심찬 신인작가에게 문단의 미래를 맡긴 것이다. 일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한민국에선 아니다. 여기와 일본은 문단의 흐름이 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이보다 훨씬 재밌고, 짜임새 있는 소설이 한국에서도 몇 있었다. 소재면에서 찾아보면,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이나 구효서의 <비밀의 문>같은 작품들이 있었고, 지적 박식함이나, 사유의 깊이, 문체 등으로 치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나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같은 작품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런 호들갑은 없었다. 점잖은 나라여서인지, 아님 아사이 신문의 일면은 항상 책광고가 차지한다는 일본에 비해 문학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서인지는 몰라도 요란스런 호들갑은 없었다.

분명 여기에는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숨겨진 이면이 있다. 국민성 같은거 뭐..그런 거겠지...하는 느낌이 들지만, 뭐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런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일본에 있어서의 현대문학의 지향점은 '미시마 유키오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중간쯤이어야 한다'는 오에 겐자부로의 재미있는 카멘트가 생각난다. 미시마 유키오에게서 문학을 배웠다는 이 야심찬 작가는 유키오와 하루키의 그 어느 지점에도 서 있지 않다. 어쨌든 아직까진 그만의 독자적인 영역에 서 있다. 그러나 난 그 영역에 쉽게 발을 들여 놓지 못했다. 왠지 앞으로도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좀 허전한 느낌을 안겨 준 책. 보고 싶은 사람은 동네 책방에서 빌려 볼 것을 권한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태양은 점점 더 줄어들고, 하늘은 돌연한 어둔의 예감에 떨고 있었다.북쪽으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남쪽에서도 똑같이 바람이 일었다. 두 방향에서 불어온 바람은 형장의 기둥에거 서로 부딪치며 화염을 이끌고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불의 기세는 한층 치열해졌다. 불은 끝내 수형자를 완전히 덮었다 육체는 떨며 고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사나운 불길 때문인 것 같지 않았다. 그 열기 때문인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은 무언가 초월의 계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하늘을 향한 저 건너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안드로규수는 갑자기 턱을 앞으로 내밀고 두 눈을 하늘로 향했다. 목줄기를 달리는 핏줄이 머리를 떨어뜨린 뱀처럼 비클려 이마로부터 흐르느 한줄기의 혈흔과 서로 엉켜 있었다.
--- p.
이 안드로규노스는 젊음이라는 것이 가지는 어떤 명쾌함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젊음 그 자체는 아마도 몇백년, 몇천년이라는 광물적인, 느릿하기 짝이 없는 성장을 통해 말하자면 '늙음'으로써 얻어진 것이리라. 그것에 드러난 명확함에는 벌써 이면(裏面)으로부터 노회한 회닉(晦匿)이 다가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23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이변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아무 일 없이 빛나고 있었던 태양이 천천히 검은 그림자에 침식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태양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를 가진 검은 그림자, 또하나의 검은 태양. -- 일식이었다.
--- p.162
나중에 알게 되 것이지만, 내가 마을에 머물던 동안 피에르는 소위 알베드[백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이것은 연금술의 대 작업 중에서 니그레드[흑화]라 불리는 최초의 과정에 이어지는 두번째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작업을 끝내고 다음단계인 루베드[적화] 과정에 성공하면,목적하던 현자의 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백화와 적화 사이에 키토리니타스[황화]라 불리던 또하나의 과정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에르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 p.69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인간이 행하는 바 어떤결과가 오직 한가지의 원인에 귀착된다고하는 낙관주의를 점점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하나의 결과가나오는것은 우리기 생각하는것보다 훨신더 많은 미묘한 카오스에의한것이며, 대부분의경우 우리가 찾아낸 원인이라는것은 유기적인 카오스로부터 조금떼어온 한조각에 지나지않는다
--- p.
나는 안드로규노수이며, 안드로규노스는 나였다. 나는 불게 번쩍이는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불기둥이 되어 하늘 끝을 뚫고 올랐다. 빛은 골고루 세계를 비추어, 질료를 초월하여 형상을 현현시키고, 물질을 확실하게 '존재'하게 했다. 그 순간, 세계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던가, 얼마나 생생하게 반짝였던가! 앞으로 일어날 운동은 송두리째 이 순간에 일어나고, 과거의 운동은 이 순간에 무한히 반복되었다.

모든 것은 영원으로 예감되고, 일어나고, 회고 되었던 것이다. 영은 육을 떠나려 할수록 점점 더 깊이 육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나의 영은 육과 함께 승천하고, 육은 영과 함께 땅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육과 영은 융합하였다. 나는 세계의 모든 것을 단 한 지점으로서 내려다보았고, 그것을 만졌다. 세계는 나와 너무도 익숙했다. 나는 세계를 포옹하고, 세계는 나를 감쌌다.
--- pp. 167-168
나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어둠에 침물하려는 한 낮의 하늘에 희미하게 떠오른 거인은, 풍설에 들리던 그대로 남녀 두몸으로 나타나, 짐승과도 같이 뒤로부터 교합하고 있었다. 그 거대함은, 도무지 잴 수 없을 정도였다. 땀을 줄줄 흘리며 번들거리는 사내의 처구는 파도처럼 몇 번이고 습격을 거듭했다. 여인은 그것을 받아 삼켰다. 그 격렬함은 하늘을 삐것거리게 할 정도였다. 율동은 구름을 찢고 산야를 울렸다. 나는 그것을 귀로써 들은 것이 아니었다. 소리는, 육체의 깊은 곳에서, 그 가장 어두운 심연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의 박동이 아무리 격앙된다 해도, 그 소리가 내려치는 한 박자 한 박자는 결단코 변함이 없는, 불길한 완만함으로 물결치듯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었다.
--- p.164-165
나는 수도자이며 또한 이단자였다. 남자이며 여자였다. 나는 안드로규노스이며 안드로규노스는 나였다. 나는 붉게 번쩍이는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불기둥이 되어 하늘 끝을 뚫고 올랐다. 빛은 골고루 세계를 비추어, 질료를 초월하여 형상을 현현시키고, 물질을 확실하게 '존재'하게 했다. 그 순간, 세계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던가, 얼마나 생생하게 반짝였던가!
--- p.167
그 풍경에, 나는 일순 전율했다. 소년은 할 수 있는 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소리도 없이 웃고 있었다. 그네를 힘껏 구를 때마다 소년의 머릿결은 놀란 듯이 춤을 추었다. 눈은 둥그렇게 흡뜨고, 목에는 가느다란 핏줄마저 돋아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기쁨이라는 것이 전혀 담겨져 있지 않았다. 아니, 기쁨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으로부터 기묘하게 격리된 곳에서, 그저 웃는 얼굴만이 물에 뜬 달처럼 불쑥 떠올라 쾌활하게 번득이고 있는 것 같았다.
--- p.75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작품은 무모하다. 그러나 아무튼 해버렸다. 나 같은 사람은 감탄 이전에, 내던져진 그 시도가 별로 유난 떨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맵시 있는 포물선을 그리는 것을 아연 바라보았을 뿐이다.
후루이 요시키치(소설가)
작품 구성의 크기와 사고의 심오함이 낳은 인상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일식』을 읽으면서, 천장 높은 건축물에 발을 들인 듯한 인상이었다. 이교 철학의 위협을 느끼는 15세기의 젊은 수도사가 신학과 철학의 총합을 목적으로 하는 이상, 이단 철학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는 일이리라. 그 위험한 행위에 의한 긴장감과 스릴이 스토리를 전개하는 장중한 힘을 이루고 있다. 참으로 스케일이 큰 신선한 작품이다. - 쿠로이 센지(소설가)

쿠로이 센지(소설가)
이 소설은 기성품의 범주로부터 튀어나와 손발을 쭉 뻗고 있다. 요즘의 신경병증적인 폐쇄된 작은 소설들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커다란 기대감을 갖게 하는 강하고도 풍부한 힘이다. )

미야모토 테루(소설가
요즘 소설들이 보여 주는 분위기일 뿐인 비현실감이나 자폐나 파괴충동, 그리고 종말의식 같은 단조로움에 나는 싫증이 난다. 그에 비해 소설의 정통에 서고자 하는, 히라노의 <일식>을 나는 추천한다. 이 소설이 의식적인 문어체의 격조를 마지막까지 잃지 않고 지켜나간 것도 참으로 대단했고, 주인공의 영혼의 통합 체험도 공감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소설 공간이란, 스쳐 지나는 잡다한 일상으로부터 `영혼의 현실`의 결정(結晶)을 만들어가는 연금로이며, 창조적 작가는 연금술사가 아닌가. 히라노라는 이 젊은 연금술사의 행로에 은총이 있기를 빈다.

히노 케이조(소설가)
기독교만이 아니라 종교는 육체와 영혼이라는 두 가지 국면에서 추구되곤 하지만, 이러한 이원론적인 택일로는 궁극의 초월성을 포착할 수 없다는 점을 이 작가는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남녀의 육체를 상징적으로 결합시킨 존재를 화형에 처하는 광경에서, 일순 지고의 극치를 전개하여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젊디젊은 야심과 힘이라 할 것이다.
다쿠보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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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지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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