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나는 일찍이 기자를 꿈꾸었고, 그 꿈을 성취해 행복했다.
나는 언론인으로서 국가·사회에 가장 잘 봉사하는 길은 사회현상을 정확하게 감시하고 공평하게 비판하는 것이라는 전통을 기억했다. 지역 언론인으로서 삶의 텃밭 부산의 오 늘과 내일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과제를 잊지 않았다. 나는, 언론은 현대 민주국가 에 꼭 필요한 사회체제라는 믿음과 함께, 당대의 정치 지도자나 권력 기관에 절대적 신 뢰를 보낸 적이, 결코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그럼, 나도 자기 역사를 쓸 수 있겠는가? 이 부분, 내가 보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시대의 역사’를 반영한 쓸 거리를 차근차근 저장, 그 글을 효율적으로 써내려갈 단 락을 정해가며 숙성시켜 왔기 때문이다. ‘인생 60이면 자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인생 60에, 길든 짧든 자신의 삶의 역사를, 그 시대의 역사적 사 건과 함께 정리해 본다는 것은 나름 뜻 있는 일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어느 날, 담당 검열관과 언쟁 끝에 심한 격투를 벌였다. 굳이 문제 삼지 않아도 좋을 기 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시간을 끄는 통에 나도 쌓여 있던 울화가 폭발한 것이었다. “왜 그 기사 손대나?” “아, 국가를 위해 굳이 보도하지 않아도 괜찮을 기사라면….” “당신만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나?” 둘은 끝내 멱살을 잡았고 주먹이 오갔으며 회의실 바닥을 함 께 굴렀다. 계엄보도처장이 뛰어나와 둘을 떼어놓기는 했지만, 그 후폭풍은 만만하지 않 았다. 무엇보다, 가판경쟁시대에, 우리 신문의 최종교정 확인을 늦추는 앙갚음에 걸려 판매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 「1부 2장 부산일보 시절」 중에서
특히, 내가 MU(미주리주립대) 저널리즘 스쿨에 매혹당한 이유는 내가 집중하고 싶었
던 그 목표 때문이다. 나는 연수계획을 세울 때부터 그 목표를 찾았고, 우선 ‘Control of Information’, 언론의 자유와 ‘Investigative Reporting’, 탐사보도를 전문적 체계에 따라 공 부하려 했다. 이 목표대로라면, 그 최선의 선택은 단연 MU였다.(...)나는 훗날 ‘한국 탐사 보도의 전형’이라 할 보도특종을 기록하고, 언론자유를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을 썼으 니, 당시의 선택은 그저 운명적이었을까.
--- 「1부 4장 IVLP 초청과 Journalism School 연수」 중에서
어느 시대인 들, 언론의 책무는 권력을 견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며, 국민의 자유 와 권리를 지키는데 헌신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너는 반드시 죽는 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경구는 언론에도 예외일 수 없다. 정말이지 권위주의는 얼마나 참담하고 민주주의는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 탐사보도의 과정이 아무리 험난하고 위 험하다 하더라도 언론의 사명을 다할 불굴의 용기가 늘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 「2부 1장 탐사보도·사건기사」 중에서
동구 현장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개혁의 열풍은 굉장한 기세였고 정치적 혼란 역시 대단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루마니아에 사실상 계엄… 총격 계속] 같은 스트레 이트 기사를 송고하곤, 유고 탄유그통신(Tanjug)에서 루마니아의 격변하는 정세와 차우 세스쿠(Nicolae Ceausescu) 대통령의 처형 뉴스를 실시간 확인, 송고할 정도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보고, 동·서 베를린의 국경검문소 ‘체크포인트 C(Checkpoint Charlie)’ 를 통해 동독으로 입국, 민주화운동의 중심도시 라이프치히를 다녀오기도 했으니….
--- 「2부 3장 해외취재」 중에서
품격 있는 부산사람, 이분들은 대체로 그 세계에서 걸출한 삶을 유지하며, ‘인적이 드문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이분들이 걷는 길은, 그저 걸출하거나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그런 길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더듬으면 거기엔 도도히 흐르는 부산사람의 역사가 있다. 남다른 도전, 남다른 노력을 거쳐 자기만의 걸 출한 탑을 우뚝 쌓은 것이다. 그리고,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사회에의 배려에 결코 가볍 지 않은 공력을 쏟고 있다. 이분들은 정말 오늘의 시대정신에 당당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의 전형으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 「2부 5장 인물평전: 차용범이 만난 부산사람」 중에서
부장은 저녁상을 기다리며 늘 그렇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상 들어올 때까 지 고스톱이나 한판 치자”고. 고스톱을 쳤다. 그리고 좋은 술을 마셨다. 술이 좀 취했을 때 부장이 본론을 꺼냈다. 나의 기사는 부장보다 높은 상사의 로비에 걸려 ‘킬’ 당한 처지 였다. 취재할 때 관련 업체의 사장이 그 상사와의 친분을 내세웠으나 나는 단호히 “그런 말 말라”고 책망한 터였다.
부장은 덧붙였다. 그런 일에 기죽을 필요 없다, 부산사회는 좁고, 그런 일 또 있을 수 있 다. 그 정도 기사, 그리 중요하지 않다. 넓은 눈으로 사회를 보며, 좋은 기사 많이 써라…. 나는 부장의 은근한 배려, 그 인간다움에 감복했다.
--- 「3부 1장 ‘위대한 선배’ 이인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