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 인식의 영역을 두루 섭렵했다. 유기체론은 자연과학에서 최상의 형식이다. 이 유기체론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정신과학들이다. 정신과학들이 인간 정신에게 요구하는 객 체에 대한 태도는 자연과학들의 요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연과학에서 정신이 수행하는 역할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정신에 부과된 과제는 말하자면 세계 과정Weltprozeß 자체를 완 결하라는 것이다. 정신이 결여된 채 현존했던 것은 현실의 반쪽일 따름이었고 모든 점에서 불완전했다. 그때 정신은 정신의 주관적인 개입 없이도 효력을 발휘할 현실의 가장 내적인 추동력을 현상으로 드러나는 현존이 되도록 했다. 인간이 정신적인 이해 능력을 갖추지 못 한 감각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면, 비유기적인 자연 또한 인간에 못지 않게 자연법칙에 종 속될 테지만, 자연법칙들은 결코 그렇게 현존하는 것으로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작용을 받는 것(감각 세계)을 지각하는 존재는 있을지언정 작용하는 것(내적 법칙성)을 지각하는 존 재는 없을 것이다. 한갓 감각적 존재에 있어서는 자연의 외적 측면만이 현존하는 반면, 인 간 정신 속에서 현상으로 드러나는 자연은 정말 본래적이고도 참된 형태다. 여기서 학문은 세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학문은 창조의 완결이다. 창조는 자연이 자기 자신과 나누는 토론이며, 이 토론이 인간 의식에 반영된다. 사유는 자연을 형성하는 과정의 최후에 나타나는 부분이다.
정신과학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정신과학에서 우리의 의식은 정신적 내용 자체와 관계가 있 다. 즉, 개별적인 인간 정신, 문화의 창조물인 문학,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학문적인 주장들, 예술의 창조들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은 정신을 통해 파악된다. 여기서 현실 안에는 이미 관념적인 것, 합법칙적인 것이 들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의 합법칙성은 정신적인 이해 속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자연과학에서는 대상들에 관한 추사유의 결과인 것 이, 정신과학에서는 정신에 이미 내재한다. 학문은 각기 다른 역할을 떠맡는다. 또한 본질은 이미 객체 속에서 학문 활동 없이도 현존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인간의 행위, 창조, 이념들이다. 이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토론이자 인류와 나누는 토론이다. 여기서 학 문은 자연에 대한 것과는 다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 임무는 먼저 인간의 욕구로 다시금 등장한다. 자연의 현실에 관한 자연의 이념을 발견 해야 할 필요성이 먼저 우리 정신의 욕구로서 등장하는 것처럼, 정신과학의 과제는 먼저 인 간의 열망으로서 현존한다. 주관적인 욕구라고 알려지는 하나의 객관적인 사태가 다시금 존 재한다.
인간은 비유기적인 자연의 본질과는 달리 외부의 규범들에 따라서, 즉 인간을 지배하는 법 칙성에 따라서 다른 존재에 영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간은 보편적인 유형의 개별 형식이 아닐뿐더러, 자기 활동과 현존의 목적과 목표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행위들이 법칙의 결과라고 한다면, 이 법칙들은 그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 자체가 무엇인지, 인간이 인간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가와 역사 속에서 어떤 존재인 지는 외면적인 규정으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통해서만 자기 존재가 되 어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세계라는 구조에 편입되는가는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세계의 운행에 참여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해야만 한다. 여기서 정신과학 들에게 과제가 주어진다. 인간은 정신세계를 알아야 그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부분을 규정할 수 있다. 이로부터 심리학, 민속학, 정신과학 등을 충족할 임무가 발생한다.
법칙과 활동이 분리되고, 활동이 법칙에 지배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의 본질이다. 이와 반대로 자유의 본질은 법칙과 활동 양자가 일치한다는 점이며, 작용하는 자가 작용 속 에서 직접 살아 숨쉬고 작용 받는 자가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점이다.
정신과학들은 따라서 비상한 의미에서 자유의 학문이다. 자유의 이념은 정신과학의 중심점, 정신과학을 지배하는 이념이어야 한다. 미학에 관한 실러의 편지들이 대단히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그것들이 미의 본질을 자유의 이념 속에서 발견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자유 란 미를 관통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보편성 안에서, 즉 세계 전체 안에서 정신이 차지하는 위치는 개별자로서 정신이 스스로 에게 부여하는 위치에 지나지 않는다. 유기체론에서는 항상 보편자 즉 유형 이념을 놓치지 않고 있어야 하는 반면, 정신과학에서는 인격성의 이념이 확보되어야 한다. 보편성(유형) 속 에서 살아 숨쉬는 이념과 같은 것이 아니라 개별 존재(개체) 속에서 등장하는 이념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인격성의 이념에서 결정적인 것은 우연적인 개별적 인격성 이거나 이러저러한 인격성이 아니라 인격성 자체다. 그러나 인격성 자체는 자신으로부터 출 발하여 특수한 형태들로 전개되어 감각적인 현존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며 자신 안에서 완결되어 있으며 자신 안에서 그 규정을 발견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유형은 개체 속에서 비로소 현실화된다는 규정을 갖는다. 인격을 가진 개인die Person은 이미 관념적인 것으로서 실제로 자기 자신 안에 깃들여 있는 현존재를 획득하라는 규정을 갖는다. 보편적인 인류는 보편적인 자연법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연법칙에서는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을 통해 조건 지워지지만, 인류라는 이념에서는 보편성이 특수한 것을 통 해서 조건 지워진다. 우리가 역사에서 보편법칙들을 찾아낸다면, 그 보편법칙들은 역사적인 인물들에 의해 목적과 이상으로 미리 정해진 한에서 보편법칙들이 된다. 이 점이 자연과 정 신의 내적인 대립이다. 자연이 요구하는 학문은 제약된 것으로서 직접 주어진 것에서 제약 하는 것으로서 정신 속에서 파악 가능한 것으로까지 상승하는 것이다. 정신이 요구하는 학 문은 제약하는 것으로서의 주어진 것에서부터 제약된 것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특수한 것이 동시에 법칙을 정립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정신과학들의 성격이고, 법칙을 정립 하는 역할이 보편적인 것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에서는 통과지점으로서만 우리에게 가치 있는 특수한 것이, 정신과학에서는 유일하 게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된다. 자연과학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보편적인 것은, 정신과학들 에서는 특수한 것에 관해 우리에게 해명할 경우에만 고찰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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