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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피아노

길 위의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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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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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08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148*210*20mm
ISBN13 9788963275796
ISBN10 8963275795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눈은 차가운 얼굴로 달빛을 품었고, 바람이 울면 눈은 몸부림을 치며 얼음장을 쓰다듬었다. 강은 내장이 보이도록 투명하게 얼어붙었다. 달빛이 강을 스칠 때마다 강줄기가 환하게 빛났다.
그녀는 얼음장 위에 손가락을 댔다. 찌릿한 통증이 온몸을 타고 흘렀지만 곧 무감해졌다. 두 마리의 은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가 이내 흩어졌다.
--- p.7

이미 새벽에 한차례 적막을 뒤흔들었던 벨 소리가 이른 아침부터 또다시 악을 쓰며 울어댔다. 머리가 지근거렸다. 세 번째 벨이 울리고 있었다. 전화기 앞에 섰을 때, 벨 소리가 멈췄다.
--- p.21

궁궐 같았던 집과 초라한 장례식장 사이에서, 정은이 기억하는 지유와 지유 언니가 말한 지유 사이에서,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았던 예쁜 입매와 지유의 죽음, 그 사이에서 정은은 멈칫거렸다.
--- p.42

철공소에서 일을 했던 김영태는 손수 조율공구를 만들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피아노 조율공구는 김영태의 손에서 태어났다. 정은은 그날 분명히 봤다. 철공소에 화재가 났던 날, 김영태 손에 달라붙어 있던 쇠막대를.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고집스럽게 꼭 쥐어져 있던, 김영태의 손에서 태어나던 그것을.
--- p.61

어떤 아이가 정은과 김영태를 보고 있었다. 정은과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입매가 예쁜 아이, 지유였다. 다섯 살 지유가 오도카니 서서 부모를 잃은 아이의 표정으로 정은과 김영태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했다.
--- p.105

처음부터 지유 집에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은의 뇌리에는 내일 꼭 와. 꼭이야, 하고 말을 했던 지유의 말이 끊임없이 재생되었었다. 지유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애달프게 찾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절박함, 그런 것이었다.
--- p.187

학교 건물을 막 나서려고 했을 때였다. 지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일부러 그랬지? 너 진짜 일부러 그랬지?’ 지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복도에서 쩌렁쩌렁 울리며 메아리로 돌아왔다.
--- p.230

그립다는 명훈의 말이 정은의 마음에 하얀 눈처럼 스며들었다. 정은은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양지에 내린 눈처럼 한 줄기 햇살에도 녹을 듯 가볍고 쉽게 느껴졌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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