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길에 동참해 온 것도 그렇거니와 문학과 예술, 그리고 동서양의 많은 현자들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불가의 선禪에 관심을 쏟은 것도 자유인으로서 ‘인간의 교사’로 존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인 ‘인간의 교사로 살다’는 내겐 민망한 것이다. ‘인간의 교사’는 내가 ‘탐구’하고 사랑하고 존경했던 선생님들께 헌사하고 싶은 이름일 따름이다. 그렇긴 해도 또 하나의 ‘교사를 위한 변명’으로서 이 책은 ‘인간이고자 하는 교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공부를 하며 사는지 그 한 속내를 보여 주기는 할 것이라 믿는다.
--- 「책머리에」 중에서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중에서
선사의 대답은 ‘알 수 없어요’지만 이것은 대답이랄 수도 없고 대답이 아니랄 수도 없는 무엇이다. 요컨대 내게 만해 선사의 질문은 단 하나로 수렴되는데 나는 그것을 종내 외면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렇다.
지금 여기,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인가?
--- 「이 ‘알 수 없음’은 어찌할 것인가」 중에서
올해가 불기 2562년. 이 같은 긴긴 세월이 흘렀지만 결국 모든 중생을 구제해 주진 못했다고 말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도-진리란 무엇인가? 거기로 가는 길이 있기는 한 건가……? 푸르스름한 새벽하늘, 샛별이 반짝 빛나는 것을 보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는 싯다르타에게서 터져 나온 첫 일성은 다음과 같았다고 전해진다.
“기이하도다. 모든 중생이 이미 부처의 덕성을 고루 갖추고 있구나!”
이미 당신은 부처다……! 이 선언이야말로 붓다가 우리에게 전해 준 가장 아름답고 자비롭고 강력한 복음이다. 어떤 뛰어난 전륜성왕도 어떤 위대한 부처도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해 줄 수 없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진정 붓다가 걸었던 깨달음의 길은 아무도 가 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길, 자신도 깨닫기 전에는 몰랐던 길이었다. 그러기에 그도 “기이하도다” 놀라며 찬탄했으리라. 내일도 모레도, 1시간 후도 1초 후도 아닌 바로 ‘지금’ 당신이 부처임을 확인하지 못하는 한 부처도 구원도, 역사조차도 영영 없으리라는 것이다.
--- 「일본의 하이쿠가 가리키는 ‘그것’과 함께」 중에서
그는 우주의 축처럼 그날 그 방 그 자리에 좌정해 있었고 가끔 묻는 말에만 답 할 뿐 종내 조용히 경청할 뿐이었다. 나와 내 반 아이들은 그를 중심축으로 천천히 운행하는 별과도 같았다. 나는 승려 친구에게 논쟁을 걸곤 했었다. 이 굶주리는 세계에서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수많은 중생 이 고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이 세계에서 도-깨달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질문에 친구 승려가 딱히 뭐라고 대답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그 자리의 나는, 혹은 우리는 무언가를 어렴풋이나마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수박을 먹는 동안만큼은 나의 질문은 달리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내 질문은 어쩌면 해가 뜨면 절로 사라지는 새벽안개와도 같이 허망하다면 허망하고 아름답다면 아름다우며, 무겁다면 무겁고 가볍다면 가벼운 무엇이라서 결국 아무래도 좋다는 것을.
--- 「무, 자유, 사랑, 도를 동무 삼아」 중에서
지난 5월 18일 나는 광주를 갔다. 마침 토요일이었고 ‘민들레’라는 부산 시민단체의 전세 버스에 동승할 기회를 얻었다. 5.18 민주묘지. 그곳에 도 작은 것들의 세상은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 가기 전 한동안 나 홀로 일련의 지옥도를 순례해서였을까? 꽃과 바람과 비구름과 무덤과 비석들. 그 비석에 새겨진 이름과 헌정된 짧은 추모의 글들은 왠지 더없이 환하게 살 아 거기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날은 간간이 비도 내렸지.
죽은 이를 마음속에 살리며 사는 사람들은 밝고, 죽은 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어둡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이렇게 말을 한 이는 일본 오키나와의 한 섬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한 아름다운 ‘작은 것’으로서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 나는 그를 묘소와 비석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한 번씩 떠올렸다. 산 자와 죽은 자, 빛과 어둠, 학살의 역사라는 큰 것의 엄연한 진실과 작은 것들의 소소한, 실재하는 진실에 관하여.
--- 「5월이여, 오라」 중에서
당신을 멀리서, 멀리서, 멀리서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내가, 우리가, ‘희망버스’가 김진숙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김진숙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거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저 어둔 밤하늘에 박혀 빛나는 달이었습니다. 달이 있으므로 우리는 달을 봅니다. 아, 그 달은 낮이고 밤이고 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고공 크레인에 매달려 있었고, 겨울을 견디며 공중에 떠 있었고 봄이 가도 떠 있었고 여름이 와도 저토록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우리는 그것을 잊고서 마치 그 달이 없는 듯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데 당신은 내내 달이 되어, 달처럼, 그렇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 「35m 고공 크레인에 뜬 ‘달’을 궁구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