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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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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8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150*223*30mm
ISBN13 9791156343561
ISBN10 1156343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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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도마는 칼날에 무수히 맞아 제멋대로의 빗금 모양의 상처가 낭자하다. 흉물처럼 보이는 몰골처럼 보인다. 나무 도마의 사명은 쉼 없이 칼날에 맞으면서도 칼을 보호하고 무사히 작업을 끝내야 하는 일이다. 칼날이 상하 운동을 하며 생선을 자르는 동안 나무 도마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매서운 칼날을 견뎌내고 있다. 우직하게 칼을 맞는 나무 도마가 장하다. 날 선 칼날이 도마의 몸을 가르듯이 오갈 때 두려워 모른 척 두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칼날이 꽂혀 자국이 남아도 함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도마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쓰다가 닳으면 버린다는 생각으로 마구 칼질을 해댄다. 불쌍한 도마는 누구 하나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다. 하찮아 보이는 나무 도마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마가 될 자격이 주어지는 나무는 특별히 모질게 살아가는 놈이라야 한다. 재질이 단단한 나무에 음식물이 끼이지 않는 느티나무가 많이 선택된다. 모질게 견뎌내는 도마 같은 사람이 많다. 도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때 아버지는 옻칠 소나무로 도마를 만들었다. 통나무로 만든 도마라 나무의 결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고, 두드리면 청명하고 목탁처럼 맑은소리가 나고 가볍다. 세균 번식을 막아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많은 종류의 나무 중에서 문양, 색깔, 모양, 질감 등 도마의 모든 조건을 갖춘 느티나무를 따라올 나무는 없다. 토종 느티나무는 못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단단하고 질기며, 물기가 쉽게 제거되어 빠르게 건조되는 최상의 재료다. 칼자국이 잘 남지 않기 때문에 이물질이나 세균의 침투를 예방하고, 곰팡이도 잘 끼지 않으며 독성도 없다.

제대로 된 도마는 토종 느티나무로 죽은 고사목으로 만든다. 적어도 5년 이상 길게는 10년 동안 자연 건조를 거친다. 혹독한 건조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나무라야 도마로 만들어진 뒤에도 무수한 칼질을 버텨낼 수 있다. 자른 나무는 사포를 이용해 갈고 닦기를 반복하면 나뭇결이 선명해지고 모서리 곡선이 살아난다. 여기에 정통 방식으로 들기름을 바른다. 막이 생겨 불순물이 잘 묻지 않도록. 조직이 단단한 느티나무는 들기름을 머금고 고운 빛깔이 배로 살아난다. 죽었던 느티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다. 도마는 지내 온 세월과 함께 숱한 사연을 담고 있다. 도마는 조리를 위한 도구를 떠나 인생의 교과서로 의미심장한 물상이다.
--- 「나무 도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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