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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570g | 152*224*25mm
ISBN13 9791185393827
ISBN10 118539382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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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할아버지는 저를 정말 사랑하세요. 키트도 알아요.”
키트가 빵과 고기를 잘라서 입에 칼까지 마법사처럼 넣으며 허겁지겁 먹어대다 이 말을 듣고 멈추어, “주인님이 그러시는 걸 모르는 바보는 어디에도 없어요”라고 소리치곤 입으로 빵을 잔뜩 깨물어 더는 못 말하자, 노인이 여자애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애는 지금 가난하지만, 내가 다시 말하는데, 언젠가는 부자가 되는 날이 꼭 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야겠지만 결국엔 꼭 옵니다.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꼭 와요. 사치와 낭비를 일삼으며 빈둥대는 사람한테도 그런 날이 오니까요. 나는 그런 날이 언제 오려나!”
“저는 가난해도 행복해요, 할아버지.”
여자애가 말하자, 노인은 “쯧쯧! 너는 몰라…… 네가 어떻게 알겠니!”라 하더니, 다시 이를 악물고 중얼댔다.


뚱뚱한 아낙 한 명이 안타깝고 걱정스럽단 표정으로 퀼프 선생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며 말문을 여는 순간, 퀼프 장모가 날카롭게 낚아챘다.
“아! 사위는 잘 지낸답니다. 특별히 문제 될 게 없으니까요. 잡초는 나쁠수록 무성하게 자라는 법이라서요.”
그러자 모든 아낙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고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퀼프 부인을 쳐다보고, 뚱뚱한 아낙은 퀼프 장모에게 말했다.
“아! 부인께서 따님한테 조언 좀 해주시면 좋을 텐데요, 지니윈 부인. 여성이 취할 행동을 부인만큼 아는 사람도 드물잖아요.”
그러자 지니윈 부인은 “당연하죠, 부인! 불쌍한 남편이, 저 아이 아버지가 살았을 때, 행여나 험한 말이라도 했다간 나한테 단번에……” 하고 대답하다, 중간에 입을 다물고 새우 머리를 단호하게 비틀어 당겨서 자신이 어떻게 할지 보여주었다.


“당연하죠. 장모님이 그러는 것도 싫은데…… 그러면 정말 멋있겠지만!”
“우리 딸은 자네 부인이라고, 퀼프. 자네가 결혼한 부인.”
지니윈 부인이 말했다. 부인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비꼬려는 거였다.
“당연하죠, 당연해.”
난쟁이 말에 지니윈 부인은 화도 나고 잔인한 사위가 두렵기도 해서 덜덜 떨며 말했다.
“우리 딸도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어, 퀼프.”
“그야 물론이지요! 맙소사! 그것도 모르셨어요? 이제 아신 거예요, 장모님?”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건 알았지.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면 그리 살았을 거고.”
장모가 말하자, 난쟁이가 몸을 돌려서 부인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지 그랬소? 당신 어머니를 쏙 빼닮지 그랬소? 당신 어머니는 최고로 훌륭한 여성이라오. 당신 아버지도 살아생전에 그렇게 말했을 거요. 그럼, 당연히 그렇고말고.”
“저 애 아버지는 축복받은 분이셨네, 퀼프. 다른 사람보다 이천 배는, 아니, 이천만 배는 훌륭하게.”
장모 말에 난쟁이가 대답했다.
“나도 장인어른을 만나면 좋았을 거예요. 당시에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정말 축복받은 게 확실하거든요. 다행히 풀려났으니까, 오랫동안 시달리다, 그죠?”
장모는 숨을 헉 들이마실 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퀼프는 눈빛을 사악하게 번뜩이며 정중한 혀로 다시 빈정댔다.
“안색이 안 좋네요, 장모님. 체력도 약하신 분이 너무 많이 말해서 흥분한 거예요. 그만 주무세요. 그만 주무시라고요.”
“알아서 하겠네, 퀼프. 지금은 아니야.”
“그래도 지금 그러세요. 지금 당장 주무시라고요.”
난쟁이가 재촉하자, 지니윈 부인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바라보다, 난쟁이가 다가오는 만큼 물러서고 또 물러서더니, 사위가 문을 쾅 닫는 순간에 아래층에 모여있던 아낙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오늘은 유난히 예뻐 보이는구나, 넬리, 정말 매혹적이야. 힘들지 않니, 넬리?”
“아니에요, 아저씨. 급히 돌아가야 해요. 내가 없으면 할아버지가 불안해하시거든요.”
“서둘 필요 없어, 귀여운 넬리, 서둘 필요 조금도 없어. 둘째 마누라가 되는 건 어떻겠니, 넬리?”
“둘째 뭐요, 아저씨?”
“둘째 마누라, 넬리, 내 마누라.”
여자애는 겁먹은 표정일 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 같아, 퀼프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바라보다 집게손가락을 구부려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며 조금 더 확실하게 설명했다.
“나한테 와서 둘째 마누라가 되는 거야, 첫째 마누라가 죽으면, 귀여운 넬리. 뺨은 체리 같고 입술은 앵두처럼 어여쁜 마누라가 되는 거야. 가령, 첫째 마누라가 오 년, 아니, 딱 사 년만 산다면 너도 나한테 시집올 나이가 되겠지. 하하하! 예쁘게 자라렴, 넬리, 예쁘게 자라. 나중에 ‘타워 힐’로 시집오려면.”


“도……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사무실에서 중요한 물건이 사라졌어. 자네가 모르는 일이면 좋겠어.”
“모르는 일이요? 맙소사, 브라스 변호사님! 설마 제가……”
키트가 소리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덜덜 떨자, 브라스가 재빨리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너를 의심하지 않아. 네가 그랬다는 게 아니잖아. 우리랑 조용히 돌아갈 수 있겠어?”
“당연하죠. 못 그럴 이유가 뭐겠어요?”
“맞아! 못 그럴 이유가 뭐겠어? 나도 못 그럴 이유가 없는 거로 드러나면 좋겠어. 오늘 아침에 내가 자네를 편드느라 애먹은 걸 안다면, 키트, 미안한 마음이 굴뚝처럼 솟구칠 테니 말이야.”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를 의심해서 변호사님 역시 미안한 마음이 굴뚝처럼 솟구칠 거예요. 가요. 빨리 돌아가자고요.”
“그래, 빠를수록 좋아. 스위블러…… 괜찮다면 그 팔을 잡게. 나는 이 팔을 잡겠네. 셋이 나란히 걷는 게 쉽진 않겠지만 현 상황에선 어쩔 수 없어. 다른 방법이 없거든.”
두 사람이 양쪽 팔을 잡는 순간, 키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 빨갛게 변하다, 빨간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게 순간적으로 저항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을 재빨리 가다듬어, 행여나 자신이 반항한다면 사람이 가득한 거리에서 목덜미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나중에 크게 후회할 거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두 사람에게 잡혀가는 굴욕을 감수했다.


“아하! 어딜 가는가, 브라스? 지금 어딜 가? 샐리도 함께 가나? 어여쁜 샐리! 스위블러도? 유쾌한 스위블러! 키트도! 정직한 키트!”
그러자 브라스가 마부에게 말했다.
“저분은 유쾌한 분이라오! 엄청나게! 아, 나리…… 슬픈 일이에요! 정직한 모습은 앞으로 절대로 믿지 마세요, 나리.”
“왜? 왜, 변호사 악당? 왜 믿지 말라는 거야?”
퀼프가 묻자, 브라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사무실에서 은행권 지폐가 사라졌답니다, 나리. 그런데 이 아이 모자에서 나온 거예요…… 사무실에 혼자 있었거든요…… 확실해요, 나리…… 증거가 완벽하게 이어져요…… 빠진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어요.”
난쟁이가 상체 절반을 창문으로 빼내며 소리쳤다.
“뭐라고! 키트가 도적놈! 키트가 도적놈! 하하하! 땡전 한 닢 주고 구경하는 도적놈보다 못생긴 도적놈이군. 그치, 키트? 하하하! 키트가 나를 때릴 기회를 잡기도 전에 도적놈으로 잡힌 거야! 그치, 키트?”
그러다 폭소를 터트려서 마부가 공포에 질리게 하더니, 근처에 있는 염색 집 장대를 가리키는데, 그곳에서 대롱대는 옷들이 교수대에 매달린 사형수처럼 보이고, 난쟁이는 두 손을 마구 비비며 소리쳤다.
“너도 저렇게 되는 거야, 키트! 하하하하! 어린 제이콥도 사랑하는 어머니도 얼마나 실망할까! 베델 목사한테 데려가서 위로받도록 하게, 브라스. 그치, 키트? 어서 가게, 어서 가. 잘 가게, 키트. 좋은 일이 가득할 테니 기운 내고, 갈랜드 노부부한테도 안부를 전해줘. 노부인과 노신사가 사랑스럽거든. 내가 안부를 묻더라고 전해, 알겠지? 노부부한테, 너한테, 모두한테 은총이 가득하길, 키트. 온 세상에 은총이 가득하길!”


투우도 안전한 관중석에서 구경해야 재밌고, 불난 집도 근처에 안 살아야 재밌게 구경하듯, 그 장면도 멀찌감치 안전한 자리에서 구경하면 재밌을 것 같긴 한데, 퀼프가 쇠꼬챙이를 마구 휘두르는 광경을 재밌게 구경하기에는 돈놀이 사무실이 약간 비좁은 데다, 주변에 자기네 두 사람밖에 없다는 것도 브라스는 불안했다. 따라서 난쟁이가 그러는 동안 최대한 멀리 떨어진 채 울먹이는 소리로 힘없이 칭찬하다, 퀼프가 완전히 지쳐서 의자에 앉을 때 비로소 다가가며 여느 때보다 비굴하게 아첨했다.
“훌륭하십니다! 헤헤헤! 대단하십니다, 나리.”


오래된 회색 현관, 고풍스러운 창문, 녹색이 짙은 교회 묘지에 점점이 장엄하게 박힌 묘비, 고풍스러운 탑, 그 위에 달린 닭 모양 풍향계, 나무 사이로 보이는 농가와 헛간과 부속건물의 갈색 초가지붕, 멀리서 도는 물레방아와 잔물결 이는 개울, 저 멀리 파란 웨일스 산맥…… 모든 게 아름다웠다. 매연은 짙고 사람은 많고 모든 게 비참한 공장지대에 질린 사람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여자애는 잿더미에 누워서도, 숨 막히는 공포에 시달리며 힘겹게 걷는 사이에도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을 꿈꾸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가만히 떠올릴 때마다 그 풍경은 점차 희미하게 변하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여자애는 그 풍경을 더욱더 사랑하며 갈망했다. 그런데 여기는 그보다 아름다웠다.


교도관은 짧게 “면회”라 대답하고, 하루 전에 경관이 그런 것처럼 팔을 움켜잡은 채 굽이치는 길과 튼튼한 문을 여럿 지나서 복도로 들어서곤 격자창 앞에 놓고 돌아섰다. 격자창 너머에, 약 1m 50cm 거리에, 똑같은 격자창이 또 있었다. 그 사이에 교도관 한 명이 앉아서 신문을 읽고, 그 너머 쇠창살에서 어머니는 아기를 품에 안고, 바버라 어머니는 변함없이 우산을 들고, 불쌍한 꼬마 제이콥은 열심히 들여다보는 게 새나 맹수를 찾을 뿐 쇠창살 안에 사람이 있으리란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린 제이콥은 형을 보고 쇠창살로 두 팔을 찔러서 형을 안으려 하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까마득한 거리에 물끄러미 서서 쇠창살을 움켜쥔 팔에 머리를 기댄 채 비참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건물 한쪽에 남작 무덤이 있어, 전사 조각상 여럿이 돌침대에 누워서 두 손과 두 다리를 겹쳐, 십자군 전쟁에서 싸운 모습으로 갑옷 차림에 칼까지 찼다. 이런 기사 가운데 일부는 무기와 투구와 쇠사슬 갑옷까지 착용한 채 녹슨 고리에 걸려서 벽에 달라붙었다. 망가져서 초라하지만 대체로 예전 형태를 지니고, 일부는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사자가 죽어서 땅에 묻혀도 폭력적인 행동은 여전하고, 전쟁을 일으켜서 사람을 죽인 당사자가 흙으로 돌아가도 학살 흔적은 애처로운 형상으로 오래도록 남았다.


아! 햇빛은 갑자기 찬란하게 쏟아지고, 들판과 숲은 사방으로 내달리다 새파란 하늘과 맞닿는 풍경이 더없이 상쾌하고, 소 떼는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나무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푸르른 땅이 내뿜는 것 같고, 아이들은 아직도 아래에서 뛰노니, 모든 게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죽었다 되살아난 것 같았다. 하늘에 그만큼 더 다가선 것 같았다.
아이들이 사라진 다음에 여자애는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잠갔다. 학교를 지나는데 아이들 목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렸다. 착하디착한 친구가 첫 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더 커져서 고개를 돌리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장난치고 떠들며 흩어지는 게 보였다. 여자애는 ‘아이들이 교회를 지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멈춰서 교회 안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 얼마나 부드럽게 사그라지는 느낌으로 다가올까 상상했다.
여자애는 그날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낡은 교회로 살그머니 들어가, 처음 앉은 자리에서 똑같은 책을 꺼내 읽거나 똑같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땅거미가 깔리고 까맣게 다가오는 밤이 주변을 한층 더 엄숙하고 고요하게 만들 때조차 두려움도 없고 일어날 생각도 없는 모습이 그 자리에 못 박힌 사람 같았다.
마침내 사람들이 여자애를 찾아 집으로 옮겼다. 여자애는 얼굴이 창백해도 행복한 표정이니, 사람들이 돌아갈 때, 불쌍한 교장 선생은 허리를 숙여서 창백한 뺨에 뽀뽀하다, 얼굴에 닿는 눈물을 느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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