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놀라운 일은 20년 전에는 중국의 명목GDP가 일본의 약 10%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지금의 일본이 별것 아니라는 거만함을 품고 있다. 최근 중국의 행동에서는 본래 중국에 속해야 하는 섬이 지금까지 부당하게 일본령이었으므로 센카쿠열도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의기양양함도 묻어난다. 그것이 바로 센카쿠열도 영유권주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일본에서는 중국은 국력이 강해지니까 거기에 힘입어서 어처구니없게 영토요구를 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 p.97---98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부 훈령은 일본의 주권은 ‘4개 주요 섬과 쓰시마, 북위 30도선 이북 류큐열도를 포함한 약 1천 개 섬으로 하되, 독도, 치시마열도, 하보마이열도, 에토로프군도, 시코탄섬을 제외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은 패전 후 이 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1951년 8월 17일 요시다吉田 총리는 중의원 본회의에서 ‘영토 포기 조항은 이미 항복문서에 적혀 있다. 즉, 일본영토는 4개 주요 섬과 부속도서로 한정되어 있다. 즉, 다른 영토는 포기한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 --- p.111
미국은 일소 간 접근을 경계하여, 일본이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을 주장하여 소련과 갈등을 벌이도록 했다. 미국은 한때 ‘소련이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을 영유하는 것은 지나치다’라고 심각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냉전시대에 소련은 미국의 적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소련과 전략핵무기 등에서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소련한테 약속을 지키는 않는 나라로 낙인찍히기 싫었다.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약속했던 얄타협정 등이 무효하다고 어떻게 말하는가? 당연히 말할 수 없다.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약속한 얄타협정이 버젓이 살아 있었다. 미소 간 얄타협정이 유효하다면, ‘일본영토는 앞으로 결정될 주변 도서로 한정된다’는 내용 속에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이 포함되는 일은 없었다. --- p.115
영토문제는 국민감정에 호소한다. 내셔널리즘을 고양한다. 한번 타오르면, 불을 끄기 어렵다. “북방영토 문제의 핵심은 포츠담선언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주장도 ‘일본 고유의 영토를 수호한다’는 국민감정 앞에서 무력해진다. 미국은 ‘일본과 소련의 관계개선에 일정한 장애물을 집어넣겠다’는 목적을 확실하게 달성했다.
지금도 미국은 똑같은 수법을 써서, 센카쿠열도 문제를 중국 견제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안전보장에서 최대 과제는 중국이 되었다. 미국 국내 여론은 중국을 껴안으려는 비둘기파와 대결하기를 바라는 매파로 나뉜다. 전자는 금융과 산업계이다. 후자는 군산복합체이다. 둘 다 미국 내에서 기반이 단단하다. 어느 일방이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對中정책은 앞으로도 협조와 대결노선 사이를 끊임없이 오갈 것이다. --- p.142-143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북방영토 시찰도 마찬가지이다. 미일동맹의 균열을 꿰뚫어 본 러시아와 중국의 노골적인 흔들기 전략이다. 이 모든 것은 외교안보전략의 기축인 미일동맹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일본 국내에서 널리 확산해 있다. 그만큼 집요하게 선전해 대면, 대다수 일본인은 여기에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진실일까? 주일미군이 일본방위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그것을 규정한 것이 미일안보조약으로, 제5조는 다음과 같다. ‘각 체약국은 일본국 시정하에 있는 영역 내에서 일방에 대한 무력공격이 자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고 인식할 경우, 헌법상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행동한다.’ --- p.153
러스크 미 국무차관보의 발언 내용에 따르면, 한국 내 외교당국이나 학자들의 노력으로 미국 지명위원회는 독도를 한국령 표기로 수정했다. 미국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간 무력분쟁이 발생하면, 미군이 일본을 지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본은 북방영토, 독도, 센카쿠열도를 안고 있다. 영토 수호를 위해 강고한 미일관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북방영토와 독도는 미일안보조약 제5조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 p.163
셸링 교수의 주장을 전제로, 국가에 있어 영토문제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 목표에서 ‘국민이 평화롭게 번영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영토문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토를 확보하는 것은 당연히 국가 목표 중에서도 중요한 목표다. 그러나 역사를 검증해 보면, 영토 확보가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이 평화롭게 번영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과 상반될 때도 있었다. --- p.209
2차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에서 배울 점이 많다. 중일 양국은 ‘복합적인 상호의존 관계’를 만들어낸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고 본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경제 효율을 높이는 것에 있지 않다. 본래 공동체 구상은 매우 정치적이다. 중일 양국 국민이 영토분쟁의 씨앗을 극복하고 경제협력을 토대로 ‘집단적인 상호의존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독불 양국이 석탄철강공동체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중일 양국은 영토분쟁을 초월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