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경험에서 얻은 용기와 신념을 갖고 있다면 거친 세상을 홀로 헤쳐 나갈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시기에 방황하지 않으면 언젠가 험난한 벽에 부딪혔을 때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책임질 가족도 그동안 쌓아온 경력도 없어서 무엇이든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이 허용되는 소중한 시기에 우리는 하릴없이 세상의 경쟁으로 휘말려들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년식과 같은 절차다. 구애의 이벤트나 상업적 성격의 성년의 날이 아닌, 원시 부족의 할례나 사자 사냥과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한 관문. 현대 사회에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나서는 여행은 모든 것 하나하나를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져야 하는 과정이기에 그렇다. 거기서 얻은 경험이 훗날 사회라는 정글에서 꿋꿋이 살아가게 해줄 버팀목이 될 것이다.--- 「길 떠나는 세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출발한 캠핑 트럭은 2주 동안 먼 길을 달려 오카방고 델타에 도착했다. 무려 3,600킬로미터를 달리는 대장정 동안 커다란 트럭을 운전한 길리엄은 에토샤 국립공원과 오카방고 델타에서 동물 가이드 노릇까지 했다. 그는 처음 면허를 취득한 스무 살 때부터 트럭 운전을 배웠고, 8년 동안 아프리카 전역을 누비며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공부했다. 운전할 때나 가이드를 할 때도, 텐트를 치거나 쉴 때도 언제나 맨발로 다니는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꿈이었고, 장래의 꿈도 평생 그것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길리엄이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상당히 부러웠다. 만일 나도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면 같은 꿈을 가졌을지 모른다. 미 대륙을 횡단하는 그레이하운드 버스 운전사, 인도의 릭샤 운전사, 안데스의 해발 3,500미터가 넘는 도로를 넘나들고 우유니 소금 사막을 가로지르는 운전사 등 많은 운전사를 보았지만 길리엄만큼 멋진 풍경 속에서 일하는 운전사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벌써 자신의 꿈을 이루지 않았는가.--- 「데자뷰 인 보츠나와」
산에 오르던 어느 저녁, 스님과 앉아서 이야기할 때 내 여정을 듣고 스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우짤라꼬 그래 많은 데를 혼자서 여행하는교? 도라도 구할 낍니꺼?”
“그런 대단한 걸 찾으려고 떠나 온 건 아니에요. 그저 세상이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스님이 나이를 묻습니다. 스물일곱 살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참말로 댕기믄서 배우기 좋은 나이입니다. 그란데 사람들이 시간 낭비한다꼬 머라 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반응이 다양합니다.”
“승가에 입적할라카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큰 투자를 하는 셈이네. 나이 드는 거 겁내지 마소. 나중 가면 별 차이도 없는 기라. 마, 꿈이 있는데 무슨 걱정인교? 사람들이 한 살 두 살 먹어 간다고 걱정하는 거는 미래가 안 반가우니까 그런 기제. 내일이 궁금한데 한 살 더 먹는 게 뭐 대수라꼬.”
스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주 공평하게 한 살씩 먹습니다. 그대로인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우리는 나이가 더 들었다고 한탄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그려 놓은 꿈에 한 발 더 다가간 셈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꿈꾸고 치열하게 걸어온 사람에게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베이스캠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친구들은 모이면 연봉이나 재테크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언젠가부터 그런 자리에 끼는 것이 불편했다. 재미도 없거니와 변변한 벌이가 없는 상황에서 괜히 끼어 술이나 축내는 느낌이었다. 약간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매일 새로운 감성을 만나고 끊임없니 본능과 싸우는 작업을 지켜본다. 바로 곁에서 삼각대를 짊어지고 뒤뚱거리며 고독한 길을 따라 나선다. 그 길에 르네 마그리트와 르 클레지오, 김점선과 데미안 라이스 등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세상의 예술가들이 동행한다. 그러니 세상의 홍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원래 순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삶에서 가장 세속적으로 변해 갈 시기에 선생님이라는 커다랗고 든든한 울타리를 만났고, 그 덕에 본연의 작은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학교를 무료로 다니고 있으면서 괜히 움츠러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동행, 배움의 길」
“다들 스펙, 스펙 하는데, 그게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의 약자잖아? 너도 기계를 전공했으니까 알겠지만, 원래 그게 사람에게 적용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건 알지?
“그렇죠. 원래는 기계나 자동차의 사양을 뜻하는 단어잖아요. 스펙 좋다고 하는 건 성능 좋은 차에 많이 쓰던 말이었는데.”
“그래, 바로 그거야. 나는 스펙이라는 약어의 쓰임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 스펙이라는 말이 ‘스페시피케이션’의 약어가 아닌 ‘스펙트럼Spectrum’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거지. 다양성을 존중하고, 구성원이 가진 여러 경험과 생각을 잘 아우를 수 있는 회사가 건강한 기업이라는 거야. 사회나 국가, 나아가 전 지구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대단한 이상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있어야 하니까.”
젊음은 점수를 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목표를 찾는 데 청춘을 바쳐야 한다. 많은 것을 바치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젊으니 다시 해도 된다.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한국에서 생텍쥐베리, 반 고흐, 밥 말리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청춘, 즉 푸른 봄은 따로 정해진 나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최대치로 살아가면서 그것을 즐기는 모든 시기가 청춘일 것이다.
--- 「스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