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베타, 빌어먹을 베타.
언니로 사는 게 지겨워지고 있다. 하지만 니노는 내가 죽은 보스의 아내 베타라고 믿고 있다. 내가 실은 쌍둥이 동생이라고 털어놓으면 상당히 위험해질 것이다. 일단 내 목숨부터 걸어야 한다. 그는 암브로조의 죽음에 내가 관여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그러니 베타로 사는 편이 낫다. 일단 그 장단에 맞추자.
‘아, 우리는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후 얼마나 촘촘하게 거짓말을 이어나가는가!’ 나는 진짜 블랙 위도다.
--- p.16
난 싸움에 대비해야 한다. 니노가 언제 나를 공격해 올지 모른다. 유도나 주짓수 동작 같은, 살인청부업자다운 몸놀림을 몇 가지라도 익혀야 한다. 화면 속 남자가 거짓말쟁이 시칠리아 놈이 공격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주먹질이나 박치기, 발길질이나 사타구니 걷어차기가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또 보며 동작을 외운다. 남자는 계속해서 말한다. ‘간단하죠.’ ‘쉬워요.’ 순 헛소리. 동작을 너무 빨리 해서 눈이 따라가지 못한다. 연습을 해봐야 익힐 수 있을 텐데.
--- p.49
나는 놈의 머리를 잡고 벽에 처박는다. 손이 떨렸지만 제대로 박은 것 같다. 마치 큰 망치로 바위를 친 것처럼, 놈의 머리통에서 묵직하게 쿵 소리가 들린다. 둔탁하지만 깔끔하고 우렁찬 소리다. 놈은 헝겊 인형처럼 맥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감자 부대처럼 힘없이, 거름 부대처럼 묵직하게. 나는 가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가슴을 내려다본다. 목이 탄다. 젠장. 이번엔 거의 죽을 뻔했다. 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놈도 니노처럼 나를 엿 먹이려 했다. 꼴좋구나, 새끼야. 그의 머리에서 기름처럼 매끄럽고 번들거리는 피가 흘러내려 웅덩이를 이룬다. 아, 맙소사. 나…… 이 남자를 죽인 건가?
--- p.72
야트막한 벽에 올라앉아 아래로 다리를 달랑거린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다. 왜 이렇게 괴로울까? 난 무엇을 이루려고 했던 걸까? 아빠는 나를 아빠는 나를 버렸다. 니노도 나를 버렸다. 그리고 방금 전 레인도 나를 내쫓았다. 내 쌍둥이 자매는 나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엄마는 내가 죽었다니 좋아라 한다. 듣고 있다면 말해 봐요, 하느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평생 내가 원한 건 누군가 나를 받아주는 것이었다. 사랑? 사랑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늘 다른 사람들 몫이었다. 베스라든지 학교에서 잘나가는 애들. 소설 속 주인공들. 괜찮은 외모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 우리 할머니의 개.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왜 난 안 되는 건데?”
--- p.206
앞으로 살인에 집중해야겠다. 그쪽 방면으로 경력을 쌓아야 한다. 고용’으로 검색해 보니 수천 개까지는 아니지만 수백 개의 글이 뜬다. 전부 살인청부업자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올린 글이다. 이렇게 웹사이트를 만들고 결제 프로그램만 깔아놓으면 되는 것이구나. 누군가를 내 ‘상관’으로 모실 필요도 없다.
난 나만의 상징을 만들 거다. 일종의 명함처럼. 스프레이 페인트로 나만의 표시를 써 갈기는 것도 멋지겠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면 좋겠다. 익명으로 남고 싶지 않다. 아무도 모르게 살인을 하다니, 왜 그런 짓을 하지? 나라는 걸 드러내도 어차피 경찰은 나를 못 잡는다. 분명하다. 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악명을 떨칠 것이다.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범죄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논픽션 책의 주제가 될 것이다. 어떤 표식이 멋질까?
눈에 확 띄어야겠지? 희생자의 가슴에 립스틱으로 웃는 얼굴을 그리는 건 어떨까? 손톱에 네온 녹색 매니큐어를 칠해 줄 수도 있다.
나 말고는 아무도 그런 멋진 생각을 못 할 거다…….
--- p.222~223
창문을 넘으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고꾸라지고 만다. 무릎의 상처가 다시 터졌다. 피가 양말로 주르륵 흐른다. 면양말이 빨갛게 변했다. 손바닥에 묻은 모래를 치마에 비벼 털고 교문으로 달려간다. 교문을 밀고 밖으로 나간다. 아빠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혹은 공원에 축구를 하러 가는 아이들 곁을 지나, 죽어라 달려간다. 저들은 영화를 보러 가는 중일까? 금요일 저녁이다. 아빠와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 나는 속도를 늦추고 멈춰 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집으로 가서 베스나 엄마를 보고 싶지는 않다. 길 한가운데 서 있는데 심장이 쿠쿵 쿠쿵 뛴다. 어디로 가야 하지?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제일 큰 나무로 달려가 그 위로 올라간다. 나뭇잎 사이에 숨는다. 어두워질 때까지 그곳에 있을 거다.
손톱으로 나무껍질에 ‘앨비’라고 새긴 뒤 그 옆에 ‘제기랄’이라고 덧붙인다. 나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그날 밤 나는 나무 위에서 잠을 잤고 아빠를 찾아다니는 꿈을 꿨다.
--- p.261
니노는 수천 파운드짜리 다이아몬드를 남겨두고 나를 리츠 호텔에 버렸다. 이번에는 내가 새로 만난 섹시한 데이트 상대를 총으로 쏴 죽이고 나를 유치장에 처박았다. 더러운 짓도 정도가 있다. 지금까지는 심하게 화가 났다면 이제는 아주 미쳐 날뛸 지경이다. 여기서 나가고 말 것이다. 나가서 그의 엉덩이에 폭탄을 던질 것이다. 그의 성기를 터뜨려버릴 것이다. 최후에 웃는 자는 바로 앨비다. 나는 유치장 안에서 서성인다. 이쪽으로 갔다가 다시 저쪽으로 돌아간다.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경찰들은 자기네가 사람을 잘못 잡아왔다는 걸 알고, 곧 니노를 쫓을 것이다. 저들도 진짜 살인범을 잡고 싶을 테니까. 그만한 인력과 기술이 있는 만큼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낼 것이다. 다이너마이트가 죽었으니 나는 이제 목줄 풀린 미친개나 다름없다.
--- p.366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피로 얼룩져 있다. 속이 뒤집힌다. 구역질이 난다. 나는 파란 타일 바닥에 계속 구토를 한다.
‘내가 복수하겠다고 했잖아.’
“안 돼, 안 돼, 안 돼.”
아, 맙소사, 베스. 이년을 다시 죽이고 싶다. 망할 어릿광대 같은 년. 베스는 죽고 나서도 줄곧 나한테 붙어 다닌다. 베스는 나를 증오한다. 나를 미워한다. 나는 이런 짓을 한 나를 증오할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는 죽었다. 세상을 떠났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뭘 한 거야? 나는 온기가 남아 있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뜨끈한 쇠 맛, 그의 피 맛이 난다.
--- p.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