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가 뭐하는 곳이에요?” “불을 피워 신호하는 곳이지.” 별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근교 중학교에 부임한 후, 학교 건너편이 봉화산이라는 말을 듣고 학생들과 나눈 대화다. 봉홧불을 피워 올리는 산? ‘왜, 언제, 어디로, 어떻게’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봉수에 대한 호기심만 커져 갔다. 학기가 바뀐 후 동아리를 만들고, 지역 탐방과 아울러 봉수대도 조사하기로 했다. 몇 차례의 지역 탐방과 함께 학교 건너편 봉화산에도 올랐다. 휴게 정자가 들어선 산정이 봉수대라는 말에, 듣는 아이들과 말하는 자신도 유서 깊은 문화재에 대한 감흥은 없고, 그저 발아래 펼쳐진 그림 같은 낙동강에 넋을 잃을 뿐이었다.
관련 도서와 자료를 모으고, 『한국의 봉수』 저자인 김주홍 박사를 초청해 강의도 들었다. 관심의 시간이 흐를수록 봉수대 설치 이유와 시기, 전국의 노선, 운용 방법 등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약간의 지식을 바탕으로 인근 봉수대를 찾아갔다. 세월의 흔적만 남은 봉수대에서 석축 흔적과 몇 개의 기와편, 도자기 조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오래된 얘기를 조금씩 들을 수 있었다. 호기심은 점점 커져 논공 소이산 봉수대를 시작으로 말응덕산·성산·마천산을 찾고 남녘으로 태백산·여통산·안곡산을 탐방했다.
부산 가덕도 천성보봉수를 찾아갔다. 현풍·논공 지역을 지나는 제2횃불 간봉6노선의 시작점이다. 광활한 시야, 아득히 보이는 대마도, 임진란 왜적을 첫 발견한 천성보봉수의 보고……. 운명의 그날에 국토의 불침번으로서 봉수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처음 관심 둔 노선의 시작점, 천성보봉수대를 찾은 후, 나 자신의 각오를 새로이 하고, 횃불의 길을 따라가는 ‘불길순례’가 시작되었다.
제2거(횃불) 직봉 노선 외에 10개의 간봉 노선 봉수대 220여 곳, 제5거 직봉과 간봉 80여 곳, 자료 수집과 현장 탐방, 노선이 끊길 때는 꿈속에서 찾았다. 휴일과 휴가를 활용한 등산, 혹서와 혹한기의 산행, 홀로 걷기, 봄가을 행복한 산행, 간첩으로 오인받던 일, 수많은 만남과 옛 이야기……. 봉군들의 애틋하고 가슴 저린 사연, ‘승목산·광산·송읍리의 봉할매’, ‘엿동산·용점산 봉수군 전투’, ‘마골산의 오해’, 동족상잔의 흔적……. 모든 것이 성숙과 자람의 시간이었다.
을미개혁(1895)으로 봉수제도가 폐지돼 제 기능을 잃은 봉수대는 간난신고했던 겨레의 근대사와 수난을 함께했다. 세월의 풍화를 겪고, 잦은 발길과 무지에 훼손되고, 전쟁과 군사시설로 파괴되면서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져 갔다. 오랜 시간 봉수군의 한숨과 땀이 밴 문화재가 한 조각의 청자편·자기편, 깨진 기와·옹기편이 되어 땅 속에 묻혀 갔다. 800여 년이나 제자리에 서서 밤낮을 지키던 국토의 불침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국토의 구석구석을 경유하며 나라님 바라보는 곳까지 평안의 불을 전하던 위대한 여정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현실에서는 잊히고 묻힌 봉수의 노선을 기록대로 복원해 보고자 하는 의무감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이 ‘불길순례’가 ‘봉수’를 이해하는 조그마한 바탕이 되었으면 한다.
앞뒤의 불을 살피고, 행인들에게 귀 기울이고, 불과 연기를 올리고 궂은 날에는 직접 뛰어가 알리던 곳, 국토 어디에 세상 어느 곳에 이처럼 각성된 곳이 있었던가! 산천이 얼어붙은 겨울산정과 온 나라에 기근이 들 때는 어떠했고, 국토가 전란에 휩싸일 때는 어떠했을까?
수백 년을 밤낮으로 눈 부릅뜬 곳 아니던가! 급할 땐 처와 딸까지 대신 세웠고, 봉할매가 죽어서도 지키는 봉수대다. 일상에 지친 고단한 이들에게 먼 변방의 소식을 평안의 불(하나의 횃불)로 알리기 위해서다.
학생들과 대화 중에 봉수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 해 동안 전국 봉수대를 찾아 헤맸다. 하나의 봉수대가 지닌 의미보다, 출발과 도착의 노선을 가진 봉수대니, 묻히고 잊혀 끊겨 버린 곳에 더 관심을 가졌다. 오랜 역사 속에 폐치와 신설, 위치 이동과 노선 변동, 끊기고 이어졌던 불길을 완전히 찾아낼 때마다 무한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내의 깊은 배려가 있었고, 궁금할 때마다 친절히 답해 주신 김주홍 박사, 지인들의 격려, 마을의 이장님과 어르신들, 군·면의 문화재 담당관……. 수많은 도움이 있었다. 전문서적이 되어야 할 내용을 독자들과의 거리를 메우기 위해, 여행기로 출판하겠다는 제의를 쾌히 승낙해 준 행복에너지 권선복 사장님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뭔가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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