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겐트 출신인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는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침묵과 죽음 및 불안의 극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겐트의 자연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어가 모국어였고 가정교사에게 영어와 독일어를 배웠으며 8살 때 셰익스피어를 접했다. 하지만 이후 7년 동안의 생트 바르브(Sainte-Barbe) 기숙학교 생활은 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며 그곳에서 발견한 신은 사랑의 신이 아니라 공포로 군림하는 독재자였다. 반면 그곳에서 르 루아(G. Le Roy), 반 레르베르크(Ch. Van Lerberghe), 로덴바흐(G. Rodenbach) 등의 친구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베르아랑(E. Verhaeren)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생트 바르브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했으나 글쓰기를 계속했고, 당시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실었던 ≪젊은 벨기에(La Jeune Belgique)≫에 시를 기고하기도 했다.
마테를링크가 변호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든 것은 몇 달 동안의 파리 체류(1885년 가을∼1886년 봄)와 그곳에서 만난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Adam)의 영향 때문이다. 특히 빌리에와의 만남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자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빌리에를 통해 마테를링크는 신비(le myst?rieux)와 운명(le fatal)과 저세상(l’au-del?)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말렌 공주·멜리장드·아스톨렌 같은 인물들은 빌리에와의 만남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시기에 그는 14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신비주의자 뤼스브루크(Ruysbroeck)를 발견했고 또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상징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노발리스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후에 이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
1886년 3월 마테를링크는 파리에서 만난 젊은 시인들과 잡지 ≪라 플레이아드(La Pl?iade)≫를 창간했고 여기에 자신의 첫 산문 작품인 <무고한 자들의 학살(Le Massacre des Innocents)>(1886년 5월)을 발표한다. 이것은 플랑드르 출신 화가인 브뢰겔(Breughel)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또 파리에 체류하며 쓴 일련의 시를 모아 ≪온실(Serres chaudes)≫(1889)을 발표하는데 마테를링크는 이 시집이 베를렌, 랭보, 라포르그, 휘트먼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어 그의 첫 희곡 <말렌 공주(La Princesse Maleine)>(1889)를 발표했으며 셰익스피어, 포, 반 레르베르크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옥타브 미르보의 ≪피가로≫ 기사를 통해 유명해진다. 1896년에는 수필집 ≪빈자의 보물(Le Tr?sor des humbles)≫을 발표했고, 1908년 스타니슬랍스키가 연출한 <파랑새(L’Oiseau bleu)> 공연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어 1911년 노벨상을 수상해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이용복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2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파리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강사로 있다.
옮긴 책으로는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말렌 공주≫, ≪파랑새≫, 로제 비트락의 ≪빅토르 혹은 권좌의아이들≫, 야스미나 레자의 ≪스페인 연극≫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로제 비트락의 극작품에 나타나는 비구술 언어에 대한 연구>, <이오네스꼬의 희곡에 나타나는 비트락의 반향>, <주네의 “발코니”에 나타나는 이미지에 대한 연구>, <샤를르 페기의 “잔 다르크”에 나타나는 잔 다르크 이미지>, <자크 오디베르티의 “동정녀” 연구?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현실과 허구>, <극중극 구조 속에 나타난 연극과 삶의 상호 연관성?야스미나 레자의 “스페인 연극”을 중심으로>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