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른 살을 이립(而立)이라고 부른다. 이립은 기초를 세운다는 뜻으로 서른 살이 되면 가정과 사회의 기초를 다진다는 의미이다. 2019년은 아동권리협약이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 나이로 치면 서른 살이 된 아동권리협약은 우리의 가정과 사회의 기초로 자리 잡은 것일까?
유엔은 1959년 아동권리선언을 채택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10개의 원칙으로 구성된 이 선언문은 30년 후 국제법인 아동권리협약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협약이 채택된 지 30년, 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 p.5
2011년 4월의 어느 날,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의 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이해와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작은 조직이 시작되었다. 바로 국제아동인권센터이다. 국제아동인권센터는 아동과 그들의 인권을 보호, 증진하고 효과적으로 이를 보장할 수 있도록 아동을 포함한 정부, 민간조직, 개인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역량과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적 기준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널리 알리고 교육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교육훈련에 주목한 이유는 아동을 위해, 아동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결코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6
세상에는 사랑과 열정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아주 많다. 협약은 아동은 누구이며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아동인권의 원칙은 무엇인지를 담고 있다. 협약을 통한 아동과 아동인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아동권리증진을 위한 우리의 사랑과 열정에 더하여 아동의 삶에 웃음꽃이 피어나게 할 수 있다. 협약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 p.25
지금도 아들이 실수를 해서 내 몸을 건드리면 아들은 화들짝 놀라 “엄마 괜찮아요?”라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마음에 얼마나 깊은 후회와 아픔이 파고드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아파서라기보다는 많은 좌절과 고통의 표현을 악을 쓰며 표현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던 그 어린아이의 가슴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꽉 차올랐다는 것을 몰랐다. 이틀 전 나는 아들에게 그 일에 대해 사과했다. “엄마가 정말 미안했다. 너에게 그게 얼마나 두려움이었는지 몰랐어. 엄마가 힘든 시기와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 미숙한 행동을 했어. 너를 보호해야 했는데…” --- p.35
국제아동인권센터의 교육훈련은 철저하게 아동을 중심에 두며, 이론과 경험의 조화를 위한 성찰의 과정을 중요시한다. … 이론과 지식에 앞서 우린 각자의 아동기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경험을 회상하며, 그러한 경험이 성인이 된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백해본다.
어린 시절의 즐겁고 행복했던 경험을 나눌 때면 교육장이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신나는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니 흥분되고 목소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슬프고 아픈 경험을 나눌 때면, 목소리가 격양되기도 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우리의 아동기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 기억은 옛 추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 p.36
배움에 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몇 살이건, 뭐든 한번 해 보겠다고 마음 정했으면, 누가 뭐라든 자기만의 뜻을 펴나가면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다. 나는 나답게 살면 된다. 빨리 시작했다고 반드시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나이나 살아온 경륜이 참고사항은 될 수 있겠으나, 그것이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성인만이 아니라 아동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p.49
그 당시에 24개월 미만의 아이를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규정을 설명했지만 은지 엄마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사정했다. 결국 우리는 그날부터 은지를 맡기로 했다. 은지는 어린이집 선생님들뿐 아니라 복지관 직원과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은지는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자립심이 대단한 아이로 성장했다. --- p.54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어른들에게 ‘우리 부모님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를 정말 사랑하고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데, 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라고 꼭 물어보고 싶다고 합니다. 생각할수록 그때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을 못 했는지 안타깝다고 합니다. --- p.59
세계인권선언을 작성하기 위한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보편적 인권은 어디서 시작될까요? 우리 집, 가까운, 아주 작은 곳, 너무나 익숙하고 보잘것없어서 세계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을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이는 누군가의 세계이자, 그가 사는 동네, 다니는 학교, 일하는 공장, 농장, 사무실입니다.”
인권은 분쟁 지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은 독재 정권이나 공산 정권에서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우린 인권을 느낄 수 있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든지 관계없이 말이다. --- p.67
아들은 차분하고 진지하게 엄마에게 반응한다. 아들의 그 한마디는 엄마에게는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되었다. 아직 어리고 의존적일 것 같았던 아들, 엄마의 소유물로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았던 아들에서 독립된 인격체, 권리의 주체자이자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는 아들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엄마는 아들을 대하던 관점의 완전한 변화를 경험한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식 변화는 아동인권을 실천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 p.86
아동인권교육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진행자와 참여자가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다. 진행자가 참여자에게 경험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전문용어나 전문지식이 아니라 함께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행자와 참여자 모두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협력해야 한다. --- p.93
방법을 찾는 교육은 참여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 ‘타인’이라고 한다. 그보다 바꾸기 쉬운 것이 ‘자신’이고 ‘환경’이다. 문제 아이는 없다. 단지 내가 문제 상황에 처해있을 뿐이다. 이러한 신념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방법을 찾는 지혜가 넘쳐나길 기원한다. --- p.105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는 부모교육 코스를 밟는다고 한다. 의무적이진 않지만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교육받는다. 우리도 부모가 되기 전, 보육교사가 되기 전, 학교 교사가 되기 전, 사회복지사가 되기 전에 아동과 아동의 권리에 대하여 지식과 기술과 태도를 자발적으로 배우고 훈련받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면 좋겠다.
---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