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퇴를 앞둔 통상 원로로써 최근 급변하는 세계 통상환경에서 몇 가지 우려스러운 현상을 보고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싶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유례없는 전방위 통상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이는 중국과 유럽 연합의 무역보복을 촉발하고 있다. 또한, 미중 무역 전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낳고 있으며, WTO 또한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소 출혈이 있었으나 이미 한미 FTA 개정협상을 잘 마무리한 바 있다. 앞으로도 수많은 위기와 기회가 있을 것이지만 통상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유능한 인재들이 잘 대처해 나가리라 믿고 있다.
---「1부 통상의 길」중에서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통상체제는 최근까지 무역자유화의 큰 흐름 속에서 세계 경제성장과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왔다. 몇 번에 걸친 경제 위기와 침체기마다 보호무역이 부활하고 통상공세가 거칠었던 적은 있지만 대체로 자유무역이 큰 흐름이었고, 세계 무역은 세계 경제 성장세보다 세 배 가까이 신장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무역 환경은 심상치 않은 위기를 맞았다. 과거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통상공세가 있었지만, 그 대상이나 강도 면에서 지금 펼쳐지는 통상환경의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무역 의존성이 높은 우리나라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는 모든 지혜를 동원해 이를 헤쳐 나가야 하며 세계 무역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의 선두에 서야 할 것이다.
---「1부 통상의 길」중에서
나는 슈퍼 301조 협상의 수석대표로서 정부의 협상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미국에서는 후에 제네바 미국 WTO 대사를 역임한 피터 알가이어Peter Allgeier 대표보가 국무·재무·상무·노동부의 대표를 이끌고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나는 전체 협상을 책임지고 국산화 소그룹과 기타 소그룹의 협상을 맡았다. 협상 경험이 풍부한 선준영 외무부 통상국장이 외국인투자 소그룹을 맡아 협상을 진행했고, 소협상 그룹의 협상 결과는 전체회의에서 다시 확인했다. 일부 치열한 협상에서는 한국대표단 사이에 의견충돌로 고성이 오고 가기도 했다.
---「3부 정부에서」중에서
나는 1990년 3월 특허청장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기관장이 되었다. 내가 부임할 당시에는 국내기술의 발달로 특허 등 지식재산권 출원이 급격히 증가할 때였다. 출원은 매년 평균 10%의 증가율을 보였고, 1989년에 이미 지식재산권 전체 출원이 십만 건이 넘었다. 따라서 3년 2개월이 넘는 심사 기간부터 줄여나가야 했다. 이 상황에서 나는 특허행정의 목표로 첫째, 특허 심사 심판 능력의 향상, 둘째, 특허행정의 전산화, 셋째 지식재산권 관련 국제기구와의 협력 강화, 넷째, 선진국 특허청과 정보교환 심사기법 등을 위한 협력 강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지식재산권 관련 이슈의 연구 강화를 내세웠다.
---「3부 정부에서」중에서
나는 1994년 4월 12일 마라케시협정 체결을 위한 각료급 무역위원회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을 통해 강화된 다자간 무역원칙이 한국 경제 개발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동력이 될 것이므로 협정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하는 WTO가 진정한 WTO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시 진행되고 있는 지역주의 현상이 다자주의에 위반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부 WTO에서」중에서
다가오는 21세기에는 국가 간 경쟁과 협력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주목받던 레스터 서로Lester Thurow 교수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21세기 경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경쟁의 게임뿐만 아니라 경쟁-협력의 게임을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기를 원하지만, 게임이 이루어지려면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연설 끝에 평소 국제 무역에 가지고 있던 애착과 신념을 전했다.
---「4부 WTO에서」중에서
나는 한중일 3개국 간의 FTA가 체결되어야 한다고 처음 주장했다. 그리고 2002년 5월 신아시아 경제기술연맹창립총회에서 ‘21세기 동북아지역 경제협력 방안’을 주제로 기념강연을 하며 이 주장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 강연에서 나는 3국 간 경제통합이 어느 한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닌 참여국의 공동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3국 간 경제통합은 어떤 형태로든 WTO 규범과 조화를 이루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3국 간 경제통합은 무역장벽만을 철폐하는 일반적인 FTA 형태보다는 투자, 서비스처럼 아직 WTO 규범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분야까지 확대하여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부 공직을 떠나」중에서
나는 적십자사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내가 이사회의장으로 있는 에쓰오일이 적십자사에 기부금을 낼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나는 기업의 CEO에게 협의했고, 그가 흔쾌히 응해주어 큰 액수를 기부 하게 됐다. 2018년에도 기부를 이어나갔고 집사람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2019년, 아내의 은퇴를 앞두고 나로서는 적지 않은 기부금을 그의 명의로 내도록 도와주었다. 적십자사는 아내에게 큰 의미를 가진 단체이고 어머님도 관여하신 기관이기도 하다. 아내의 표현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체’라는 적십자를 알게 돼 나도 기쁘다.
---「6부 이어지는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