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민대표대회나 중국 공산당 각급 대표기구에서 노동자·농민 출신 대표는 감소했으며, 이에 따라 노동자는 정치 영역에서 배제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 노동자의 위상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은 중국 정치체제가 직면한 위기를 보여주는 가장 심각한 징후다. 왜냐하면 국가 영도계급은 노동자계급이라는 헌법적 원칙의 토대가 완전히 와해됐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 오늘날 “노동자의 정치적 상태는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 즉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표명하는 국가 또는 공산당과 노동자계급 간에 존재하는 심각한 단절에 놓여 있다. 즉 공산당의 성격이 ‘계급적 정당’에서 ‘전면적 대표’의 방향으로 전화되었다. 따라서 공산당은 정치 영역에서 노동자계급의 대변인 지위를 상실했고,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대표를 만들 수도 없게 된 것”이다. --- p.61-62
중국 노동체제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 노동시장의 이중적 이원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구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른 것처럼, 노동시장의 특성과 고용체제도 나라마다 다르다. 노동시장 내 행위자들의 행동방식은 경제적 합리성이나 이른바 ‘자본 축적 논리’에 의해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나 가치·규범, 권력관계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중국 노동시장의 이중적 이원구조 형성에서도 제도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며, 정부가 추진한 여러 제도와 정책이 노동시장 분할을 조성한 근본 원인이었다. 특히 계획경제 시기에 추진된 중공업 중심 발전 전략과 이에 부응한 고용제도, 분배제도, 호적제도 등으로 인해 중국 특유의 도농분할, 부문별 분할, 지역적 분할구조가 체계적으로 확립됐다. --- p.64-65
중국이 세계적 현상인 ‘노동의 위기’를 넘어 지구적 노동운동의 새로운 진원지가 될 것인지는 훨씬 더 다층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분석해야 한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노동체제의 일반적 특징인 노동계급 내부 분화(정규직/비정규직 등) 외에도 중국 특유의 국가 통제 시스템 및 지방정부와 기업의 유착, 노동시장의 분절적 구조, 노동자의 세대교체로 인한 생활세계 차이는 중국 노동운동의 전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민공의 세대구성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중국 ‘신노동자’의 주요 구성원이자 노동운동의 주체로 자리 잡은 ‘신세대 농민공’의 집단적 저항과 조직화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신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공이라는 ‘이중적 신분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신노동자’로 호명하며 집단적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다. --- p.72-73
현재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제 개혁과 사회 영역의 활성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개혁 이후 변화된 다양한 요구와 개혁이 낳은 문제는 더 이상 기존 체제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중국이 최근 제시한 새로운 정책이 실질적으로 관철되려면 체제 자체를 바꿔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이러한 구조 개혁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 권력층과 기득권 엘리트의 반발과 저항을 어떻게 타개할지가 관건이다. 주지하듯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정치체제 개혁은 방치한 채 경제편향적 개방만이 진행됐고, 권위적 정치체제와 결탁한 ‘시장경제’가 ‘권력귀족 시장경제’를 낳았으며, 이에 따라 ‘권력귀족 자본가계급’이 형성됐다. 또한 사영기업가 대부분이 공산당 간부나 그들 자제로 충원됐다. 이는 다시 당내 권력귀족 자본가계급과의 결탁으로 이어졌으며, 권력과 재력 세습이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즉 개혁의 이익이 ‘권력귀족 자본가계급’에만 집중되고, 개혁의 위험과 대가는 오로지 노동자에게 전가된 것이다. --- p.81
호적제도에 대한 정부의 정책 변화는 도농 간, 지역 간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시주민과 농민의 통일된 노동시장을 구축하고, 농민공의 사회적 차별을 해소해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조치는 지방정부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그대로 실현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특히 농민공에 대한 사회보장 및 공공서비스 부담은 기업 투자뿐만 아니라 지방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중앙정부 정책이 지방정부의 실천으로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예컨대 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광둥성에서 사회보험 미가입 노동자가 여전히 717만 명에 달하고, 이들의 90%가 소규모 기업에서 일하는 농민공이며, 이로 인한 노동쟁의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 p.93-94
중국 현행 노동계약제도는 도시 경제체제 개혁에 따라 생성과 발전의 과정을 거쳤으며, 기본적으로 국유기업의 자주권 확대와 기업의 고용 자주권 확대라는 더 큰 개혁의 틀에서 이뤄진 것이다. 또한 국유기업의 ‘당-정’ 관계 개혁이 외자의 추동에 영향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계약제 시행도 우선 외자 경제 부문에 한정됐고, 이후에 비로소 국유기업으로 확대됐다. 특히 1982년부터 선전특구에 입주한 홍콩과 마카오 계통 기업에 노동력 고용제도가 개방됐으며, 외자기업에 노동자 채용과 해고 권한이 부여됐다. 이와 동시에 국유기업에서 노동계약제도가 시범적으로 시행됐다. 1982년 7월 1일 선전시 정부는 일부 시범 지역에서 나타난 성과를 바탕으로 선전특구 내 모든 기업단위에서 노동자 채용 시 일률적으로 노동계약제도를 실행해야 하며, 더는 계획경제 시기에서와 같은 ‘고정공’을 모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84년 5월 말에는 선전시의 303개 기업단위에서 노동계약제가 실행됐고, 계약제 노동자의 고용 규모도 1만4500여 명에 달했다. --- p.109
중국 정부는 시장화 개혁을 거치면서 노동관계 제도화를 통해 단일한 노동시장을 형성하려고 노력했으나 현실화되지 못했다. 2008년 〈노동계약법〉이 시행되면서 법률적으로는 농민공도 노동자에 포함됨으로써 단일한 노동시장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농민공의 노동계약 체결률은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대부분이 단기계약 형태라는 점에서 여전히 이원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노동계약법〉 시행 이듬해인 2009년을 기준으로 농민공 중에서 노동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집단의 비중이 63%나 되며, 노동계약을 체결한 농민공 중에서도 장기계약은 15%에 불과하고 임시계약이 22%를 차지한다. 또한 농민공이 재계약을 맺을 때 파견고용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도 중국 노동시장의 이원화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국유기업에서 퇴출당한 노동자들과 농민공이 비정규 부문으로 취업하는 현상이 증가하면서 비정규 고용이 확대되고 있다. --- p.137
신중국 성립부터 개혁·개방 이전까지 중국에서 ‘노동자’는 하나의 개념어로 존재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현재까지의 격변 속에서 과거의 ‘노동자’는 소멸했다. 새롭게 출현한 노동자 집단이 바로 저임금 노동력으로 간주되는 품팔이들이었으며, 이들은 주로 ‘농민공’으로 호명됐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민공의 세대구성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신세대 농민공’이 점차 농민공의 주력이 되고, 노동운동의 주체로 자리 잡은 것과 함께 이들의 새로운 특성이 주목받고 있다. (...) 최근 신세대 농민공을 주축으로 한 신노동자는 자신들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공이라는 ‘이중적 신분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신노동자’로 호명하며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 p.15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