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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하룻밤에 읽는 역사 시리즈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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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598g | 148*210*30mm
ISBN13 9791196793524
ISBN10 119679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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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현장을 헤치고 간 끝에 매켄지가 만난 의병은 초라한 누더기 한복을 입고 피로에 찌들었지만 의연함만은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의병이 지닌 무기라야 총신에 녹이 잔뜩 낀 조악한 구식 총이거나 그만도 못한, 총알이 나가지도 않는 장난감 같은 총 정도였다. 한 젊은 의병은 매켄지에게 자신
의 결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일제 36년을 견디게 한 위대한 패배」중에서

이듬해인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본은 통감부를 설치하고 초대 통감에 이토 히로부미를 파견했다. 이토는 “조선의 안전과 부원富源 개발에 차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또다시 1,000만 원이란 거액을 연 6.5퍼센트의 이율로 들여왔다. 그것도 사채를 쓰는 것처럼 소개료 100만 원을 빼, 조선에 들어온 돈은 900만 원뿐이었다. 이러한 차관은 조선 정부가 필요해 들여온 것이 아니었다. 조선을 병합하려는 일본의 치밀한 계획 아래 식민지화에 필요한 자금이었다.
---「금연하고 반찬값 아껴 일제의 빚을 갚자」중에서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효시가 된다는 이 소설의 작가 이인직은 사실 이완용의 비서로서 한일병합을 추진하는 비밀공작을 수행했던 인물이었다. 관비유학생으로 1900년부터 3년간 동경 정치학교에서 공부한 뒤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성 한국어 통역생으로 종군한 바도 있다. 1906년에는 대표적인 친일파 조직인 일진회一進會 기관지 『국민일보』의 주필을, 1907년에는 친일신문인 『대한신문』의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애국계몽 시기에 철저히 친일파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완용의 비서 이인직이 최초의 신소설을 쓰다」중에서

그 결과 조선의 삼림은 크게 황폐화되었다. 1912년만 해도 전체의 70퍼센트에 이르는 산들이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보기 흉한 민둥산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일제는 그 원인을 조선의 난방구조 탓으로 돌렸다. 조선인이 온돌을 덥히기 위해 땔감을 마구 채취한 결과 산이 헐벗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민둥산이 온돌 때문이라고?」중에서

1920~25년 사이에 일본으로의 쌀 유출은 97.7퍼센트나 증가했다. 생산은 늘지 않는데 반출은 많으니 조선인이 먹을 쌀이 줄어든 건 당연했다. (...) 농민들은 식량부족만이 아니라 또 다른 수탈에도 시달려야 했다. 일제가 산미증식에 들어가는 수리조합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고스란히 조선 농민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웃는 자들은 나타났다. 쌀 수출로 돈을 벌게 된 지주들이었다. 이들은 자작농, 소작농과 중소지주들의 몰락이 가속화되자 그 토지를 수용하면서 더욱 배를 불렸다. 일제 통치의 버팀목 중 하나였던 친일 지주의 양산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조선 농민이 일본의 호구인가」중에서

예산의 60퍼센트 이상을 쏟아 부으며 역점을 두었던 외교 활동의 실패는 임시정부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 외교론의 파탄으로 도드라지기 시작한 내부의 분열과 노선투쟁은 서서히 임시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더욱이 1919년 2월 이승만이 미 국무부에 국제연맹에 의한 조선 위임통치를 청원하는 문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임시정부는 치명타를 맞고 말았다. 이승만은 ‘제2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격렬한 성토의 대상이 됐다. 숭미사대주의자로서 그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러나 좌파 쪽에도 문제가 많긴 매한가지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민주공화제를 선포하다」중에서

임시정부가 한인애국단을 조직한 데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 국민대표대회 이후 임정은 오랜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1931년 만주사변이 발생하고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면서는 존폐의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임정의 국무령 김구는 결사대원 80여 명을 주축으로 한인애국단을 창설했다(1931년). 이들의 의열투쟁을 통해 침체된 임정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구상이었다. 1932년 도쿄 사쿠라다몬 앞에서 일어난 이봉창 의사의 천황 폭살 시도는 그 첫 번째 거사였다.
---「최고의 현상금이 걸린 사나이, 김원봉」중에서

그런데 이 분단은 원래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얄타 회담에서는 패전국 독일의 동?서 분단을 결정했었다. 만약 아시아에서 분단될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전범국가 일본이었다. 그러나 대소 봉쇄전략에서 일본의 가치를 인정한 미국은 조선을 희생양으로 선택했다.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조용한 확대전략을 추진하던 소련 역시 이에 대해 이의가 없었다. 일본이 맞아야 할 매를 조선이 대신 맞았던 것이다.
---「38선과 민족분단, 그리고 미소 군정」중에서

미군정을 맞아 살판을 만난 것은 한민당 세력이었다. 미군정을 이끈 하지 중장의 정치고문 베닝호프는 당시의 정국을 분석하면서 “유일하게 고무적인 요소는 서울의 나이 들고 교육받은 사람 중에 보수분자 수백 명이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고등교육을 받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 ‘수백 명’이야말로 숙청1 순위로 꼽히던 친일배들이었다. 그러나 통치의 효율성을 꾀하던 미군정에게 이들의 친일 경력은 문제되지 않았다.
---「왜곡되어 가는 해방 정국」중에서

문제는 반탁운동의 순수성이었다. 반탁운동을 주도한 우익에는 음양으로 일제에 협력해온 친일 세력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반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을 민족 세력으로 둔갑시켰다. ‘반일이냐 친일이냐’로 갈라지던 민족-반민족의 경계가 ‘반탁이냐 찬탁이냐’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반탁운동을 친일 경력을 세탁할 절호의 계기로 활용한 것이었다. 놀라운 변신술이 아닐 수 없었다.
---「남북 분단의 갈림길, 친탁이냐 반탁이냐」중에서

단독선거와 정부 구성에 반대의 뜻을 밝히던 메논은 이후 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바꿨다. 1948년 3월 12일에 벌어진 한국임시위원단 표결에서 단독선거에 찬성함으로써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에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인도의 반대에 의해 3대 3 동수로 단독선거가 부결될 상황이었다.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메논은 왜 입장을 바꿨던 것일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것은 이승만과 모윤숙의 ‘미인계’ 때문이었다.
---「축복이 되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중에서

1972년 10월 17일 광화문 앞에는 난데없는 탱크가 등장했다. 오후 7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박정희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유신 선언이었다. 날치기로 밀어붙인 3선개헌으로도 모자라 종신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수립하겠다는 선언. 그것이 박정희의 대답이었다.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을 가진 ‘유신維新’은 박정희에게는 그 뜻과 달리 자신의 권력 유지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일소하라는 특명에 불과했다.
---「해결책은 또 한 번의 쿠데타였다」중에서

2011년 장남 김정남을 제치고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이 28세의 나이로 3대째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김정은 체제가 붕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특히 일본 극우파는 198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 정권의 붕괴, 중국 각 성의 독립과 분열을 예측했다. 예측과 달리 2011년 김정일 사망 때까지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고, 중국은 G2국가로 급부상했다.
---「3대 세습체제는 어떻게 완성되었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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