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는 한 특별한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62세 일 때, 뇌 안의 동맥꽈리가 터져 쓰러진 후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고나서 27일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의식이 돌아왔던 환자다. 그 후 재활치료를 통해 보행은 어느 정도 가능해졌지만 후유증으로 양 쪽 눈의 시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필자가 인도하는 병원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 나는 그가 원래 오래전부터 신앙생활을 해오던 성도인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4년 전에 그 병을 겪은 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목요일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자리를 정돈하고 있는데 그가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였다.
“목사님, 오늘 설교 중에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공감합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목사님께서 교인들의 머릿속에 더 분명히 박히도록 그 심판에 대해 좀 더 강조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특별히 제게 그렇게 말씀하실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예, 사실은 저는 실제로 심판대에 서 있다가 왔습니다.”
나는 약간 황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쾌히 승낙하였다. 며칠 후 그는 내 사무실에 내려와서 자신이 혼수상태에 있을 때 겪은 내용을 소상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대략 중요한 것만 추리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아득한 광야에 넓은 길이 나있었습니다. 그 길을 세계 각처에서 온 수 많은 사람들이 꽉 채우며 어디론가 걷고 있었습니다. 저도 작업복 차림으로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걸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떤 희로애락의 표정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커다란 성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그 성문은 겉모습이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과 비슷했습니다. 앞에 가던 사람들이 그 성문으로 들어가기에 저도 뒤따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그곳은 심판이 행해지는 장소였습니다. 성에 들어서자마자 삼거리로 갈리는 곳이 나왔는데 그 곳에는 군의장대 복장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팔 척 거인 한명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오른 편 쪽에는 깨끗한 흰색 와이셔츠들과 신사복들이 가지런히 한 줄로 길게 걸려있었고, 그의 왼 편에는 더럽기 짝이 없는 누더기 옷들이 높이 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인 바로 앞에는 검은 대리석이 깔린 단이 있는데, 그 단 위에 한 사람씩 올라서게 되면 그 거인이 지휘봉으로 오른 편 혹은 왼 편을 가리켰습니다. 그 거인의 얼굴은 아무도 감히 직접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위엄이 가득하였고, 그는 입으로는 어떤 말도 말하지 않고 오직 지휘봉으로만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에는 그 거인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예수님에게 직접 지시를 받고 심판업무를 시행하는 천사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 거인이 지휘봉으로 오른 편을 가리키면 어디선가 안내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타나 심판대 위에 선 사람에게 구김살 하나 없이 잘 다려진 깨끗한 신사복으로 갈아입힌 다음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거인의 지휘봉이 왼 편을 가리키면 그 안내인은 이번에는 심판대 위에 서있던 사람에게 더럽기 짝이 없는 누더기 옷으로 갈아입힌 후 왼쪽 방향에서 저 아래 쪽으로 까마득하게 보이는 지하세계로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지하세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루한 누더기 차림으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보는 순간 저는 그곳이 바로 지옥임을 직감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제 앞의 앞 사람이 검은 대리석 단 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원래 허름한 노동자 복장을 하고 걷던 사람이었는데, 거인이 오른 편을 가리키자 순식간에 깨끗한 신사복으로 갈아입혀진 다음 안내인에 손에 이끌려 사자졌습니다. 다음은 제 바로 앞 사람 차례였습니다. 그는 원래 신사복에 중절모까지 말쑥하게 차려입었던 사람인데, 거인의 지휘봉이 왼편 아래쪽을 가리키자마자 누더기 옷으로 갈아입혀졌고 안내인 손에 이끌린 체 눈물을 흘리면서 왼쪽 지하 세계로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끔찍하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죠. 저는 덜덜 떨면서 검은 대리석 단에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13년 전에 죽은 제 아내가 작은 구름 같은 물체를 타고 제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너무나 반가웠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잠시 제 곁에 서있더니 다시 어디론가 훌쩍 떠나려고 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여보, 나랑 같이 가요!’라고 외치며 급히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아빠, 아빠! 가시면 안돼요. 아빠는 우리랑 살아야 해요!’라고 소리치며 내 손을 잡아끄는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제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놔라!” 외치며 팔을 휘둘러 그들의 팔을 뿌리쳤습니다. 그 순간 눈을 떠보니 저는 하얀 병원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제 딸 녀석이 제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딸은 제가 쓰러진 지 27일 만에 깨어난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휘두른 손에 맞아 이마가 벌겋게 부어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겪은 체험은 근래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애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짐짓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겪으신 일이 혹시 그냥 꿈이나 환상은 아닐까요?”
그러자 그가 정색을 하고 대답하였다.
“목사님, 그것이 꿈이나 환상이라면 제가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모호한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 그 일은 제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에 일어난 일처럼 너무도 분명해서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잊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집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노선생님, 한 가지 죄송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양해하시고 솔직히 대답해주십시오. 만일 지금 누군가가 선생님의 목에 총을 들이대고, 그 때 그냥 꿈속에서 헛것을 본 것 같다고 하면 살려주겠고, 그것을 진짜 현실로 믿는다고 계속 우기면 죽이겠다고 위협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그 것을 현실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변함없이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물론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겐 지금 목사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 현실이 진짜인 것처럼 그 현실도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